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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 기자말

저는 다른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많이 합니다. 그때마다 처음 교무실에 들러서 연수 담당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만난 다음, 담당선생님의 안내로 교장실로 들어가서 교장선생님께 소개를 하고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누구보다 각 학교의 교장실 모습을 잘 압니다. 교장실을 어떻게 꾸몄느냐를 보면 그 학교가 어느 정도 보입니다.

교장실에는 왜 값비싼 가구들이 많을까요

대부분의 교장실이 화려한데, 어떤 곳은 웅장하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치장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교장실 가구들은 학교의 다른 곳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값비싼  것이 대부분입니다. 교장실 크기는 99.9% 교실 한 칸 크기 이상입니다. 더구나 학교에서 가장 볕이 잘 들고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습니다. 또 대부분의 학교들이 교장실 앞 복도는 아이들이 지나다니지 못하게 합니다. 교장실과 가까운 중앙현관도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교장선생님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는 게 학생 통행을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교장실이 크고 화려하다 보니 치장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장이 새로 바뀌면 새로 바뀌는 분의 취향에 맞게 교장실을 리모델링하기도 합니다. 서른 명, 아니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작은 교실에서 바글거려도 교장선생님은 큰 방에서 혼자 지냅니다. 교실이 부족해서 아이들 교육에 꼭 필요한 특별실은 없애지만, 교장실은 절대로 없애지 않고 크기를 줄이는 법 또한 없습니다. 교실은 덥고 추워도 교장실은 시원하고 따뜻합니다. 교실은 먼지 많고 지저분해도 교장실은 늘 깨끗합니다.

학교마다 교장실을 잘 치장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교장실의 모습이 곧 교장의 권위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또 그동안은 교장이 학교를 모시는 구조가 아니라, 학교가 교장을 모시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작고 소박한데다, 구석에 있는 혁신학교 교장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교장실이 교실 반 칸 크기입니다. 교장실 자리도 1층 가장 끝자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입니다. 가구도 다른 학교 교장실처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합니다.

많은 이들이 서울형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놀라는 건 교장실이 작고 소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고 소박한 우리 학교 교장실에 보내는 눈초리는 그리 곱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들려오는 말이 교장을 구석으로 처박았다느니, 교장실이 초라해서 교장의 권위가 떨어진다느니, 이 학교는 교장을 무시한다느니... 이런 것들입니다. 심지어 교장이 허수아비라는 말까지 들립니다. 그러면서 교장들 사이에선, '혁신학교는 하고 싶어도 교장실은 우리 학교처럼은 안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육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가 교장실이 작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오직 교장실 크기와 치장 정도로 교장의 권위를 재는 저급한 시각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 교장실이 작고 구석으로 간 이유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올해 신설학교로 출발한 우리 학교는 학교를 처음 설계할 당시 돌봄실 정책이 도입되지 않아서 설계도에 돌봄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마다 돌봄실을 하나씩 설치해야 합니다. 결국 설계도에 없었던 돌봄실을 어디에 만드나,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교장실 자리에 돌봄실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처음 마련된 교장실 자리를 그대로 두고 돌봄실을 1층 끝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려면 콘크리트 벽을 헐어야 했습니다. 벽을 헐려고 보니 벽만 헐면 끝나는 것이 벽 속에 들어있는 온갖 전선과 설비들을 모두 재시공해야 해서 견적이 천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그렇잖아도 개설비용이 적어서 학교기본 교육시설도 미비한데 벽 하나 허는 데 천만 원을 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학교를 둘러봐도 교장실을 한 칸 크기로 마련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도 "교장실 크기보다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또 벽 허는 데 들일 돈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습준비물을 더 사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교장실을 구석에 있는 자리에 두면 돈도 들이지 않고 돌봄실도 마련할 수 있으니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안 가시겠다고 하신다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교장실은 반 칸 크기에 구석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교실 줄이고 교장실 넓혀야 합니까?

그렇잖아도 우리 학교는 전입학생의 증가로 아이들 수에 비해 교실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기존에 마련된 특별실을 하나씩 줄여서 교실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년에는 학급수를 더 늘여야 하는 형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학교 교장실이 작은 것을 보고 뭐라고 하는데,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교장실을 늘일 수가 없습니다. 자, 이런 상황인데도 교장의 권위 타령이나 하면서 교장실은 좋은 자리에 크게 설치하자고 주장만 하실 것인지요?

우리 학교에 와서, 교장실이 구석에 있고 작다면서 이 학교는 교장이 무시당하고 있다느니, 교장의 권위가 낮다느니 하면서 우리 학교를, 아니 혁신학교를 싸잡아 무시하는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자신이 우리 학교 교장이라면, 아이들을 한 교실에 마흔 명 가까이 몰아놓고 콩나물 교실에서 지내게 하면서 혼자 편히 지내시겠습니까? 아이들 교육에 꼭 필요한 특별실인 과학실, 컴퓨터실, 미술실, 목공실, 음악실을 없애고 교장실을 크게 만드시겠습니까? 아이들 교육이 어떻게 되든 말든 무조건 교장실 크기를 키우면 교장의 권위가 높아지고, 교실이 부족해서 교장실을 작게 만들면 교장의 권위가 무조건 낮아집니까? 교장의 권위는 교장실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입니까?

교장의 권위는 교장실 크기와 비례하는 것일까요?

교장실을 작게 만든 우리 학교는 늘 좋지 않은 눈초리를 받지만, 사람들이 우리 학교 형편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려니하고 섭섭해도 그냥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6일 우리 학교에서 교육청이 주관하는 행사를 하면서 교육청에서 높은 직책을 가진 분이 오셨습니다. 하지만 행사가 다 끝나고 이 분이 돌아가시면서 제게 하신 말씀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높은 분은 혁신부장이라고 소개한 저를 나무라듯이 훈계하셨는데, 훈계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장실에 가보니 교장실이 너무 작더라, 교장실이 그렇게 초라해서 교장의 권위가 서겠느냐? 학교가 잘 되려면 교장의 권위를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

그래서 제가 그 와중에도 우리 학교가 교장실이 작고 구석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드렸는데, 그 분은 제 말은 안 듣고, 계속 교장실이 작으면 교장의 권위가 낮다느니, 교장의 권위를 세워주라느니...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 바로 전만 해도 학부모들 앞에서 "미래의 세계는 창의성의 시대,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고틀에 갇혀 살면 안된다, 아이들도 새로운 세상에 맞도록 새로운 방법과 지식을 배우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던 분이십니다.

교장실이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면 교장의 권위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일까요? 제가 그동안 전국의 수많은 학교 교장실을 돌아보면 느낀 것은, 교육적 철학과 내용이 빈약한 교장일 수록 교장실에 돈을 많이 들여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정 어린이를 생각하는 교장선생님들은 스스로 교장실을 아이들에게 내주고, 크기를 줄여가고 계십니다.

교장실이 작고 소박하고 구석에 있는 우리 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운영비가 아이들을 위해 쓰기에도 부족한 현실에서 교장실 크기와 값비싸고 화려한 치장으로 교장의 권위를 자랑하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장선생님들은 그리고 교육청 높은 분들은 이것을 모르고 교장실 크기만 문제 삼고 있는 것일까요?

혁신학교는 단지 추가 지원비로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을 많이 시키는 학교가 아닙니다. 교장실의 크기로 교장의 권위를 재는 생각을 먼저 버리는 것이 혁신학교의 시작입니다. 특히 교실이 부족해서 특별실이 없고, 한 교실에 서른 명을 넘어 마흔 명이 넘게 공부하는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는 혼자 넓은 곳에 계시지 말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울형혁신학교#교장실#교장의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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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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