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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게 됐다. 목숨을 건 25일 간의 공장점거 파업을 철회한 지 3개월, 노조 간부는 구속되고 조합원들은 대규모 징계됐다. 회사는 162억 원의 손배소를 청구해 조합원들의 통장은 가압류됐다. 노조 조합비 유용 사건마저 불거져 노조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이야기다. 4달 전인 2010년 11월 15일,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500여 명이 전격 공장점거 파업을 벌이자 전국이 들썩였다. 법원의 잇따른 정규직화 판결에도 회사측이 오히려 하청업체 폐업을 통한 조합원 해고를 단행하자 누구도 예상못한 현대차 비정규직의 공장 점거 파업이 이렇게 시작됐다.

 

"외부세력 개입" 보수언론 기사 쏟아져

 

당시 시민사회는 이 파업이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내며 파업을 이어가자 공장 담 너머 도로에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동조 농성을 하는 전국의 단체들이 쳐 놓은 천막이 넘쳐났다.  

 

공장 점거 파업은 25일간 이어지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 협상이라는 전제를 달고 철회됐다. 당시 야 5당 의원단의 대화를 통한 해결 권유도 큰 작용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구속과 해고, 정직, 통장 가압류다. 책임 지겠다던 야당 의원들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보수언론들은 날짜를 달리하며 비슷한 내용의 "외부세력으로 비정규직노조 방향상실"이라는 특집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12일 현재 울산공장의 해고자와 정직자들은 모두 340여 명. 여기다 정직1주의 징계자 200여 명을 포함하면 징계자는 540여 명에 이른다. 아산공장, 전주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5일 간의 공장 점거 파업을 이끌었던 이상수 노조 지회장을 비롯해 몇 몇 간부는 구속됐고, 회사측으로부터 제기된 162억 원의 손배소로 조합원들의 통장은 가압류됐다.

 

당시 공장 점거 파업을 해제하는 전제조건인 교섭안은 '고소고발, 손해배상, 치료비 등 해결, 농성자 고용 보장, 비정규직노조지도부의 사내 신변 보장, 불법파견 교섭에 대한 대책 요구' 등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게 없다.

 

회사와 보수언론은 비정규직노조가 교섭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조측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강요한 것이라고 맞선다.

 

현대차 회사측은 법원 판결에 대한 재항고를 진행중이며, 경영진은 "노동 유연성의 문제로, 전 산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전경련과 경총 등 경제단체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에 나가야할 것"이라고 누누이 밝혀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다 비정규직노조 전 사무국장이 "노조간부가 조합비를 횡령하고 외부세력 형님들이 파업을 부추긴다"고 폭로성 유임물을 뿌리면서 노조는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조는 지도부가 사실상 와해하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불법 파견 투쟁을 새롭게 진행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이들은 "금속노조와 노동사회단체를 외부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막고 고분고분한 종으로 만드려는 비열한 책동"이라며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현대차 정규직노조 임단협 변수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25일간의 점거 파업 때도 그랬지만 4만5000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움직임이다.

 

현대차노조는 올해 타임오프와 복수노조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임단협을 회사측과 치러내야 한다.

 

그동안 금속노조와 현대차노조는 복수노조와 타임오프가 금속노조의 최대 세력인 현대차노조를 겨냥한 것이라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관련기사: "현대차노조 타임오프 침묵하면 노조지옥시대 도래")

 

복수노조 허용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천 명에 달하는 현대차 내의 조·반장이 새 노조를 만들어 회사측과 유착하면 현대차노조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관련기사: "복수노조는 현대차노조 무력화 위한 것")

 

현대차노조와 회사측은 지난 임단협에 따라 올해 3월까지 타임오프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4월부터는 현대차노조도 타임오프제를 수용해야 할 기로에 섰다.

 

현대차노조는 공식적으로 조합원4만5000여 명에 유급 전임자가 220여 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4월부터는 현재의 10% 수준인 24명으로 전임자를 줄여야 한다.

 

현대차노조 힘이 사실상 이들 전임자에서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현재 현대차노조 집행부는 실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노조 내에서 "비정규직노조와 1사1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오는 9월 새 노조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있어 회사측과의 협상 결과와 그 과정을 아직 예측할 수는 없다.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비정규직노조와의 1사1노조' 등의 변수는 궁지에 몰린 비정규직노조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조는 "25일간 파업에서 얻은 것은 자주적인 역량만이 법에 따른 정규직화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대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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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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