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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사건 이후 병원으로 후송되는 기퍼즈 하원의원.
 총격 사건 이후 병원으로 후송되는 기퍼즈 하원의원.
ⓒ <뉴욕타임즈> 인터넷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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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8일, 이하 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시에서 40세의 가브리엘 기퍼즈(Gabrielle Giffords) 민주당 하원의원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중퇴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녀는 세이프웨이(Safeway)라는 식품점 앞에서 유권자와 만나던 중이었고, 이 자리에 참석한 미 지방법원의 존 롤(John M. Roll) 판사와 기퍼즈 의원의 보좌관이던 가브리엘 짐머만(Gabriel Zimmerman)은 사망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22세의 제러드 리 러프너(Jared Lee Loughner)는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정학을 당했으며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알려졌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러프너가 반자동 권총으로 기퍼즈 의원의 머리를 쏜 후, 주변 사람들에게도 총을 난사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모두 20명이 총상을 입었고, 이 중 6명은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2001년 9월 11일에 태어나 미국의 50개 주를 대표하는 "희망의 얼굴들(Faces of Hope)"의 하나로 뽑혔던 크리스티나 그린(9세)양도 포함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러프너의 범행 동기와 배후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나, 9일 현재 미 연방수사국(이하 FBI)이 피닉스 내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러프너가 기퍼즈 의원 암살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FBI의 토니 테일러 수사관은 소장에서 러프너의 집에서 "나는 미리 계획했다", "나의 암살", "기퍼즈" 등의 단어가 들어 있는 봉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FBI는 또한 2007년에 기퍼즈 의원이 러프너에게 '유권자와 만나는 자리에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적은 편지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한편, 기퍼즈 의원은 총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환자 중 유일한 생존자로 뇌 깊숙한 곳까지 총탄이 박혀 긴급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은 현재 그녀가 의사의 기초적인 질문에 응답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회복된 상태라며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주 수요일 새로 선출된 하원의장과 함께한 기퍼즈 의원.
 지난 주 수요일 새로 선출된 하원의장과 함께한 기퍼즈 의원.
ⓒ <허핑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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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주, 편견과 인종차별의 메카가 되고 있다"

2006년 처음으로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가까스로 3선에 성공한 기퍼즈 의원. 그녀는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 "보수성향의 민주당 의원"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해왔지만, 민주당이 주도한 의료 개혁안을 찬성하고 애리조나주의 강화된 이민법을 반대한 까닭에 그간 티파티 지지자를 비롯한 지역구의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많은 비판과 신변 위협을 받아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피마 카운티(투산시를 포함하는 더 큰 행정구역)의 클레런스 듀프니크 보안관은 기자회견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을 보면, 정부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의 혹평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인종적 편견이 점점 더 도를 지나치고 있다. (…) 그리고 불행하게도 애리조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모든 것들의 중심이 됐다"고 토로했다.

듀프니크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이 (나를 포함해) 모든 공무원들에게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정치인과 정부에 대한 악감정)이 중대한 결과를 수반할 수 있다. (…) 조만간 우리는 공직에서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 합리적이고도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흑인 인권 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짐 클라이번 하원의원도 건강보험 개혁 논의 때부터 생명의 위협과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여러 번 받았다. 그런 그가 이번 기퍼즈 의원의 비극 앞에서 "선량한 사람이라면 침묵을 지키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다"며 폭력적으로 변질돼 가는 미국의 분열된 정치와 언론에 대해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아직 정확한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현직 하원의원이 유권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총격을 당한 점을 감안해 이번 범행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라디오 토크쇼와 케이블 TV 등에서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이 매일 24시간 동안 폭력적인 수준의 정치적 언사들을 내뱉는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이런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범인과 관련해서 클라이번 의원은 9일 <폭스뉴스 선데이>에서 "(미국에서) 폭력적인 언사가 계속되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대담해졌다고 느끼는 상황까지 왔다. 이렇게 된 사람들, 정신적으로 약간 불안정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남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아, 결국 우리 모두 감내해야 할 일을 저질러 버린다"고 설명했다.

기퍼즈 의원이 "편견과 인종차별" 문제 때문에 총에 맞은 것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듀프니크 보안관도 "(총을 쏜) 이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문제 있는 사람들이 특히 폭력적인 언사에 잘 반응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바 있다.

갈 데까지 간 미국 정치의 분열, 폭력성, 그리고 무책임

작년 3월 의료개혁안이 통과되기까지 미국 전역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갈등이 증폭됐고, 일부 지역의 타운홀 미팅에는 총을 소지한 개혁안 반대론자들이 나타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공화당 정치인들과 많은 우익 언론인들은 그들에게 과격한 행동을 삼가라고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기에 바빴다.

문제의 포스팅 갈무리 사진, 빨간색 조준기는 은퇴를 발표한 의원들의 지역구를 의미.
 문제의 포스팅 갈무리 사진, 빨간색 조준기는 은퇴를 발표한 의원들의 지역구를 의미.
ⓒ 세라 페일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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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 중 대표적인 이가 바로 세라 페일린이다.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다 지난해 11월 중간 선거에서 세라팩(SarahPAC: Sarah Political Action Committee, 세라 페일린이 알래스카 주지사직을 중도하차한 후 정치 활동을 위해 2009년에 만든 집단)이 떨어뜨려야 할 민주당 현역 의원 20명이라며, 지도와 함께 그들의 이름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이 포스팅은 20명의 지역구 위치를 총의 조준기로 표시해서 문제가 됐고, 기퍼즈 의원도 그 조준기로 표시된 의원 중 하나였다.

당시 페일린은 페이스북에 "우리는 이곳 지역들과 다른 많은 곳을 조준할 것이다. 이것은 워싱턴에 상식을 갖고 올 사람들을 뽑으려는 전투를 위한 첫 발포에 불과하다. 세라팩닷컴으로 와서 나와 함께 전투에 나가자"고 적었다.

페일린은 또한 이 포스팅을 설명한다며 "상식 있는 보수주의자들과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후퇴하지 마세요, 대신 장전하세요(대문자로 강조)! 제 페이스북에 와서 보세요"라고 트윗을 보냈다.

<폴리티코>의 조나단 마틴은 작년 11월 중간선거 직후에 쓴 기사에서 페일린이 20개의 "표적(bullseye)" 중 18개가 패배했다며 기염을 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세라팩이 '명중에 실패한' 2개의 표적은 바로 기퍼즈 하원의원과 웨스트버지니아의 닉 레할 민주당 하원의원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문제가 일자 세라팩의 직원인 레베카 멘수어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결코 총의 조준기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선(망원경 등의 초점에 새겨진)을 의미한 것이다. 우린 이것이 폭력적인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총격 사건을 정치화하려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반격했다.

한편, <뉴욕타임즈>는 작년 3월 기퍼즈 의원이 이같은 세라팩의 '조준'을 알았고, 이에 대해 "우리가 세라 페일린의 리스트에 올라갔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 지역구를 총의 조준기의 표적처럼 묘사했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 그것이 어떤 중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페일린이 보낸 트위터.
 페일린이 보낸 트위터.
ⓒ 페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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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파의 반격

민주당 하원의원이 사경을 헤매고 진보 진영이 비난의 화살을 퍼붓자 티파티 지지자들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반격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일요일(9일) 오전, CBS의 'Face the Nation'에 출현한 애리조나의 존 카일 공화당 상원의원은 듀프니크의 사건 경위 발표가 "추정"에 근거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 발표내용이야말로 범인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 외에 우리가 이 젊은이의 범행동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나라에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며 사건의 책임을 개인의 정신상태로만 돌리려 했다.

또 애리조나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우익 방송인 존 저스티스는 듀프니크의 사퇴를 요구하며 "라디오 방송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듀프니크가 단순히 그의 주장만으로 라디오를 비난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면서 "이것은 권한 남용이고, 그는 이 도시의 TV와 라디오를 비롯한 모든 뉴스 미디어에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파티 네이션의 창립자인 저드슨 필립은 듀프니크를 "좌파 보안관"이라고 지칭하며 "극좌 세력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비난함으로써 티파티 운동을 잠재우려고 한다. (…) 우리는 단순한 진실로 더 세게 반격해야 한다. 범인은 좌파 미치광이다. 좌파 미치광이, 이 두 단어를 강조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반면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폴리티코>에 "오클라호마시에서는 너무했다고 생각됐던 일(기자 주: 1995년 오클라호마시의 한 연방 건물이 무정부주의 무장세력 미국인들에게 폭파된 사건으로, 16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중에는 6세 미만의 유아 19명이 포함됐다)을 이제는 사람들이 그러려니 한다.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한다. 타운홀 미팅, 케이블 TV, 라디오 토크쇼 등에서 모든 사람이 상대를 억누르려고만 한다"며 현재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한탄했다.

티파티 엑스프레스의 대표는 "이런 극악한 범죄는 미국에서 설 곳이 없다. 치열한 토론은 우리나라에 바람직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사상이 부딪히는 것에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애리조나 총기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애리조나 총기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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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원이나 애리조나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오바마 대통령 및 많은 정치인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사건을 강력히 비난하며 기퍼즈 의원의 회복을 기도하고 있다.

한편, 좌파 언론인으로 유명한 MSNBC의 키스 오버만은 자신부터 자극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는 언사를 중단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우리는 총을 내려놔야 합니다. 그와 함께 똑같이 중요한 것은 총을 떠올릴 수 있는 어떠한 은유도 중단해야 합니다. 좌파, 우파, 중도의 정치인들, 시민들, 건전한 분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분들! 폭력과 폭력에 의한 위협은 우리의 민주주의에서 설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과거에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폭력을 부추겼을지 모르는 어떠한 행동이나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우리 각자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우리는 모두 미국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태그:#애리조나 총격사건, #가브리엘 기퍼즈, #러프너, #페일린, #티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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