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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1주기 추모식. 이주용 화백이 1년에 걸쳐 그린 초상화가 놓여있다.
 18일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1주기 추모식. 이주용 화백이 1년에 걸쳐 그린 초상화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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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타계한 사람을 추억하면서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불러준다면 그 영혼은 결코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1년 동안 정성스럽게 그린 초상화를 영정으로 모셔놓고 전직 주한호주대사의 추모사를 듣는 것도 조금 특별하지 않은가.

그만큼 고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는 특별했다. 그래서 한국 경향 각지에서, 한국인이 살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 1주기 추모식이 거행되고, 각종 추모문화제가 열렸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드니 추모제는 조금 특별했다.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김 대통령 서거 이후에 1년 동안 제작한 초상화를 영정으로 모신 경우는 시드니가 유일할 것이다. 전직 주한 외국대사가 1주기 추모사를 바친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 더, DJ의 애창곡이었다는 '목포의 눈물'을 피아노로 연주한 추모식도 시드니 말고 또 있을까?

추모제를 공동주관한 시드니한인회, 호주한인복지회, 호주한인포럼, 시드니호남향우회 등은 1주기가 수요일인 것을 감안해서 사전홍보를 자제했다. 바쁜 한인동포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18일 저녁, '겨울비'가 흩뿌리는 한인회관에 약 100명 가까운 동포들이 모여서 추모제를 거행했다.

진양조 국악 선율이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호주한인포럼 회원들이 김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입장하면서 추모식이 시작됐다. 1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초상화를 완성한 호주동포 화가 이주용 화백은 단상에 모셔진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감회가 새로운 듯 망연히 앉아있었다.

[인터뷰] 이주용 화백 "MB가 '투사 김대중'을 부활시켰습니다"

브로이노브스키 전 주한호주대사의 DJ 회고

김대중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 추모사를 보낸 리처드 브로이노브스키 전 주한호주대사. 사진은 그가 한 한인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김대중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 추모사를 보낸 리처드 브로이노브스키 전 주한호주대사. 사진은 그가 한 한인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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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1주기 추모식의 색다른 풍경은 추모사 순서에서도 볼 수 있었다. 재야지도자인 DJ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의 가혹한 탄압을 받던 시기에 주한 호주대사를 역임한 리처드 브로이노브스키 교수가 추모사를 보내온 것.

그는 천안함사건 발생 이후와 동해안과 서해안에서의 한미합동훈련과 관련하여 기자와 장시간 인터뷰를 가진바 있다. 그의 부인 엘리슨 브로이노브스키 또한 외교관 출신의 현직 언론인이어서 인터뷰에 동참했다. 인터뷰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게재될 예정이다.

또한 그는 8월 15일자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극우파 언론인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의 기사 '의지의 전투(Battle of Wills)'를 정면으로 공박하는 칼럼을 발표했다. 쉐리단이 한반도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실시된 한미합동훈련을 강하게 지지한 것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칼럼이다.

한편 브로이노브스키 부부는 기자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서 DJ의 재야정치인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이후까지 각별하게 지내온 30년 넘는 우정을 회고하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느라 추모식장에 직접 오지는 못했다. 추모사의 간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야정치인 DJ는 용감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4년 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한 나의 좋은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재야정치인 시절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민주발전과 남북관계 긴장해소를 위한 한국과 호주의 대처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습니다. 그분은 민주주의 가치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고, 남북화해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만날 때마다 한국 정보당국의 감시를 당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야당 정치인 김대중의 꿈과 용기에 커다란 신뢰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정말 용감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지속적인 민주화투쟁을 펼쳤고,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국민들의 성원을 받아서 마침내 '민주 대한민국'을 이루어냈습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에도 그분은 국민화합과 남북화해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남북화해의 가시적인 결과를 얻어냈고 국제사회에서는 그 공로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이 그 증거입니다.

2009년 8월 18일에 김대중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 좋은 친구를 잃었다는 큰 상실감과 함께 국제사회의 큰 인물을 떠나보낸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김 대통령 서거 1주기에 다시 한 번 그분을 추억하면서, 그분을 사랑했던 한국인 친구들과 호주를 포함한 전 세계의 친구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18일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서 한인 교포들이 헌화하고 있다.
 18일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서 한인 교포들이 헌화하고 있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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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연주한 '목포의 눈물'

DJ의 상징색깔이었던 노란 넥타이를 매고 나온 김병일 시드니한인회장은 "수많은 성인들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DJ는 다르다. 김대중 대통령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분"이라면서 "그분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 야당지도자다운 야당지도자,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다"고 추모했다.

이용재 한인복지회장은 최근에 발간된 '김대중 자서전'을 소개하면서 호주를 방문했던 야당 지도자 DJ와 김대중 대통령을 애틋하게 회고했다. 지난 2002년 시드니를 방문한 김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장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 바 있다.

"물론 친정을 잊을 수는 없지만, 자꾸 친정 쪽만 바라보면 발전도 없고 자칫 눈 밖에 납니다. 친정은 친정대로 잘 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호주 주류사회로 나가서 맘껏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한 핏줄이라는 걸 늘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어서 동포 피아니스트 남원숙씨가 DJ가 즐겨 불렀다는 '선구자'와 '목포의 눈물'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런 다음 호주한인문인협회 이동일 부회장이 조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하다'를 낭송했다.

그 즈음에 시드니한인회관 창문을 적시던 겨울비도 멈추고 참석자 모두가 흰 국화 한 송이씩 바치는 헌화 순서가 이어졌다. 일부는 묵도로 일부는 기도와 함께 헌화를 하는 중간에 호주한인포럼 청년들이 큰절을 두 번 올려서 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영정 안의 '민주투사 김대중'은 잔잔한 미소를 짓는 듯 했고.

18일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김병일 한인회장, 이용재 한인복지회장, 그리고 추모시를 낭독하는 이동일 한인문인협회 부회장.
 18일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김병일 한인회장, 이용재 한인복지회장, 그리고 추모시를 낭독하는 이동일 한인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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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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