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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항목 가운데 동성 간 성 접촉 여부를 묻는 10번 질문
 문진항목 가운데 동성 간 성 접촉 여부를 묻는 10번 질문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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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6일 낮 12시 20분]

"최근 1년 이내에 불특정 이성과 성 접촉을 하거나, 남성의 경우 다른 남성과 성 접촉을 한 적이 있습니까?"

헌혈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답해야 하는 <헌혈기록카드> 문진항목의 10번 질문이다. 카드를 작성하는 것은 체혈 금지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과거 병력이나 현재의 건강상태 등을 묻고 체혈을 하기 부적격한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다.

헌데 위 항목에 '예'라고 답한다면 체혈을 할 수 없다. "HIV(후천성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한적십사자 혈액관리본부 직원은 23일 답했다. 혈액관리본부측은 이 문진항목은 혈액관리본부, 보건복지가족부, 학자, 시민들이 함께 작성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이 항목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며 관련 내용을 수정 또는 삭제 권고할 것을 지난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친구사이는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해당항목이) 남성간의 성행위는 무조건 위험한 것, 그래서 남성 간 동성애는 좋지 않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퍼트린다"며 "이 문항으로 인해 남성 동성애자들은 불필요하게 사회로부터의 거부, 위축감 등을 경험하게 되고, 헌혈할 자유 또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항목은 2004년에 개정된 바 있다.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문진항목 중 '최근 1년 사이에 동성이나 불특정 이성과 성 접촉이 있었다'는 질문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이에 인권위는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항목을 바꿀 것을 권고했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받아들여 현재의 안이 나온 것이다. 인권위는 당시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인 것처럼 간주되어온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차별'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도 '남성'을 지칭한 동성애자 차별 문제는 해소되지 않아 친구사이에서 다시 진정서를 낸 것이다.

'동성 간의 성행위 ≠ 위험'

혈액관리본부측은 해당 문진 항목이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혈액 안전이 우선시 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혈액관리본부에서는 혈액을 체취한 후 기본적으로 에이즈 양성 반응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성 간 성 접촉한 이의 체혈을 금하는 이유에 대해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잠복기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HIV에 감염되면 11일 이후에나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11일 이전엔 검사를 해도 음성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친구사이 활동가는 "그렇다면 11일 이후에 검사하면 되는 것을 왜 1년 동안의 경험을 묻는 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해당 문진 항목이 '남성'을 지칭하며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동성 간의 성행위 = 위험'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친구사이는 진정서에서 "HIV는 보통 혈액이나 질분비물, 정액 등으로 전파되고, 감염된 혈액의 수혈이나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등을 통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성간 성 접촉이나 동성 간 성 접촉과 관계없이 '안전한 성관계' 여부를 묻고 이를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통계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해 2월,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2008년 신규 HIV감염인 감영경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남성이 HIV에 감염된 경로로는 '이성 간 성 접촉'이 55.1%로 '동성 간 성 접촉' 44.9%보다 많았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이성 간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은 동성 간 성 접촉만큼이나 높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HIV 감염경로 통계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HIV 감염경로 통계
ⓒ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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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관광객도 헌혈을 금지하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23일 "남성 동성애자의 HIV 감염률이 더 높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만일 남성 동성애자가 10번 문항 답에 '그런 적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질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우 실장은 "이런 식으로 HIV 감염에 동성애자가 관련 있다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정책을 반복하다 보면 동성애 혐오증이 조장되어 동성애자들이 점점 숨어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태국·아프리카·인도 등의 나라는 HIV 감염자가 굉장히 많다"며 "헌혈에 의한 HIV 감염이 그토록 걱정되면 그 나라를 방문했던 사람들도 모두 헌혈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태그:#헌혈, #차별,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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