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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행정구역 자율통합 건의서를 신청한 전국 46개 시․군을 대상으로 주민의견조사(10월 24일~11월 6일)를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안성호 대전대 교수는 "중앙정부가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자율 통합을 추진한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27일 오후 경남도의회 회의실에서 '지방분권과 지역발전을 위한 경남지역 연석회의'가 연 "행정구역 개편과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대안모색"이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17대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지방자치체제(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무성하고, 현재 국회에는 8건의 관련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통합지방자치단체마다 1000~4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며, 전국 18개 지역 46개 시․군에서 통합건의서가 제출된 상태다.

 

이런 속에 안성호 교수는 외국 사례를 들어가며 행정구역 통합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주요 선진국의 기초정부(자치단체) 규모(갯수-평균인구-평균면적)를 분석했다.

 

프랑스는 3만6763개-1743명-15㎢, 스위스는 2715개-2762명-15㎢, 스페인은 8109개-4998명-62㎢, 독일은 1만4805개-5452명-24㎢, 미국은 3만9006개-6623명-240㎢, 일본은 1772개-6만7313명-210㎢, 영국은 433개-12만8061명-560㎢다. 우리나라는 230개-21만870명, 423㎢로, 세계 최대 인구 규모의 기초정부를 갖고 있는 셈이다.

 

안 교수는 "국토 면적이 좁아 조밀하게 사는 우리나라의 기초정부 평균면적은 영국 다음으로 넓다"면서 "심지어 우리나라 기초정부의 평균면적은 광활한 국토를 갖는 미국 기초정부의 평균면적보다 1.8배나 넓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현행 2자치계층(시․군․구-시․도)은 대다수 국가들이 2자치계층을 채택하는 세계적 경향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정치권은 현행 시군구의 작은 규모 때문에 발생하는 '규모불경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을 몇 개씩 묶어 통합광역시를 만들어 '규모경제'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규모경제' 개념의 공공부문 적용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므로 매우 신중해야 하고, 지금까지 기초정부의 규모와 효율성 간의 관계에 관한 선행연구는 규모경제에 대한 정치권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큰 지방정부가 효율적이라는 가정의 오류 밝혀져"

 

그는 "통합론자들이 신봉하는 규모경제 원리의 노동집약적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해왔다"며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규모경제 개념이 함축하는 '큰 지방정부가 효율적'이라는 가정의 오류를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전국의 시군구를 몇 개씩 묶어 60~70개의 통합광역시를 설치해 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결국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주류 정치권과 정부의 지방자치체제 개편안은 유엔 해비타트(UN-Habitat)가 채택한 지방분권국제지침의 규정(정치적 지방분권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적절한 조합을 이루어야 한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권의 지방자치체제 개편안의 심각한 문제점은 지방민주주의의 파괴다"며 "무엇보다 시도 자치정부를 폐지하는 대신 중앙정부의 일선기관으로 국가지방광역행정청을 설치하려는 정치권의 개편안은 민주화 투쟁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쟁취한 광역자방자치단체의 대의민주주의를 일거에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대의민주주의 결손'도 우려했다. 안 교수는 "시군구 통합과 기존 광역시와 도의 폐지로 인한 직선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수의 감소가 초래할 대의민주주의의 결손도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면서 "주류 정치권의 의도대로 지방자치체제가 개편되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정수가 대략 1/4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장은 246명인데 60~70명으로 줄어들고, 지방의원은 3626명인데 크게 줄어들게 된다. 외국과 비교한 안 교수는 "6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프랑스의 지방의원 수는 무려 52만명에 달한다. 지방의원 한 사람은 기껏 120명의 주민을 대표한다"면서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도 지방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주민 수는 우리나라의 1/5 내지 1/8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만이 개혁이냐"면서 "60~70개의 통합광역시를 설치하게 되면 기초정부와 주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소규모 민주주의 상한선은 인구 10만명 넘지 않아야"

 

<자원민주주의의 딜레마>를 저술한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대규모 민주주의체제 내에서 소규모 민주주의체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소규모 민주주의의 상한선을 '10만명을 상회하지 않는 인구를 가진 단위'로 조심스럽게 가정했다"고 안 교수는 소개했다.

 

또 그는 "주류 정치권은 시군구를 몇 개씩 묶어 평균인구 60~70만명의 통합광역시를 만들고 도 자치정부를 폐지하는 대신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구분해 국가광역행정기관을 설치함으로써 무엇보다도 행정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정치권의 지방자치체제 개편의 내밀한 동기는 미래의 정치적 경쟁자들인 시장과 군수, 구청장, 시․도지사를 제거하려는 의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류 정치권의 지방자치체제 개편안에 동조하며 거들어온 청와대와 행정안전부의 고위공무원들도 이해 당사자의 범주에 포함된다"며 "시군구의 통합이 이루어져 도 자치정부가 유명무실하게 되면, 결국 도 자치정부가 폐지되고 국가광역행정기관이 설치될 경우에 이들은 가장 큰 인사(人事) 수혜자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치구역과 자치계층의 개편이 정치권의 이해관계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국가백년대계인 지방자치체제 개편을 졸속하고 성급하게 밀어 붙여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학계의 의견을 경청하여 헌법개정문제와 통일문제도 고려하고 충분한 공론화과정을 거쳐 선진국 수준의 지방자치체제 개편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토론... "제주특별도의 사례 살펴 봐야"

 

이날 토론회는 옥원호 경남대 교수의 사회로, 윤용근 경남도의원과 이정석 경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정원식 경남대 교수, 조유묵 지방분권운동경남본부 집행위원장, 허승도 경남신문 정치부장이 토론했다.

 

토론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윤용근 경남도의원(진주)은 "제주특별도와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합을 통해 효율성이 저하되고, 제왕적 도지사의 권한이 강화됐으며, 예산절감효과가 없고 지방도시의 소외현상이 극대화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합논의 이전에 지방분권 논의가 우선되어야 하고, 주민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주인인 주민이 찬성하지 않는 통합은 절대 안 된다"면서 "주민투표 이전에 행정통합에 대한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석 책임연구원은 "국회의원 법률안의 경우 행정통합에 대한 용어의 모호성과 부적절성이 나타난다"면서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조급하게 법률안이 상정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은 '선발표 후 법률제·개정논의 문제'에다 '지원 방안에 대해 법률이 통과되지 않았을 경우 문제', '지방자치훼손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식 교수는 "지방자치 형태와 규모는 다양해야 한다. 세계의 다른 국가와 규모만으로 단순비교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규모가 작아서 생기는 문제 또한 많고, 규모에 대해 국제적 비교는 참고용이어야 하고, 한국의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정책은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초광역권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수도권과 균형개발을 해나가도록 해야 한다"면서 "생활자치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유묵 집행위원장은 "규모와 효율성의 문제에 대해 외국사례를 잘 연구해서 참고로 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 행정구역 통합 추진에 있어 중앙정부가 전략을 잘 구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지역구의 파열구를 통해 전체 행정체계 개편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허성도 정치부장은 "마산, 창원, 진해의 경우 기초의회 의원은 한나라당이 공천하고 있는 속에, 추진 과정에서 지방의회의 의견을 묻는 것 바람직하지 않는 것 같다.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그:#민주주의, #행정구역통합, #지방자치체제 개편, #안성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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