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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주 로킹햄 카운티에 있는 브로드웨이 고등학교(BHS). 최근 이 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의 정학처분을 두고 학교 측과 학생 측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화제다.

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1면 머리기사로 배치해 비중 있게 다뤘고, 여론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사건 발생 1달이 지나도록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신문 독자란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의견이 아직도 실리고 있고 인터넷에는 수백 개의 불꽃 튀는 댓글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중이다. 이번 사건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대체 버지니아의 한적한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남부연합 깃발 꽂고 다닌 고교생 정학

지난달 9월 17일, 브로드웨이 고등학교 11학년생 폴 란츠(16)는 학교로부터 정학 징계를 받았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픽업트럭에 두 개의 깃발을 꽂았다는 게 정학 사유다.

 'DN-R(데일리뉴스 레코드)에 실린 고교생 정학 사건. 정학을 당한 란츠가 자신의 트럭 위에서 남부연합기와 비슷한 깃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DN-R(데일리뉴스 레코드)에 실린 고교생 정학 사건. 정학을 당한 란츠가 자신의 트럭 위에서 남부연합기와 비슷한 깃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 D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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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란츠가 꽂은 깃발은 예사로운 깃발이 아니었다. '남부연합기'(The Confederate Battle Flag)'라고 불리는 '색깔이 분명한' 깃발이었다.

남부연합기에 대한 해석은 아주 극단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깃발이 인종차별을 나타내는 '레이시즘(racism)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며, 이 깃발에는 노예로 부림을 당했던 흑인들의 분노와 슬픔이 배어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노예해방을 주장하던 북군에 맞서 당당하게 싸웠던 자랑스러운 남군의 '반란의 상징'이라면서, 자신들의 전통이고 계승해야 할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공식적인 국기는 일곱 개의 붉은 줄과 여섯 개의 흰 줄, 그리고 각 주를 나타내는 별 50개로 이루어진 성조기다. 관공서나 학교, 기업체 등에는 1년 내내 이 성조기가 걸려있다. 애국심을 발휘하는 가정에서는 자기 집 앞에 국기대와 국기봉까지 갖춰 성조기를 걸어두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일부에서는 '컨페더리트 플래그'(The Confederate Battle Flag)라고 불리는 남부연합기도 성조기와 같은 '국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깃발은 빨간 바탕에 대각선의 파란 줄이 있고, 남부연합을 구성했던 13개 주를 상징하는 별 13개가 파란 줄 위에 그려져 있다.

미국에는 국기가 두 개 있다?

 남부연합 정부의 공식 깃발인 남부연합기.
 남부연합 정부의 공식 깃발인 남부연합기.
ⓒ Flags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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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기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 소유를 인정했던 남부의 노예주(Slave state)로 구성된 남부연합(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the CSA) 정부의 공식 깃발이다.

남부연합 정부는 남북전쟁 초기인 1860년부터 1861년 사이에 남부의 7개 주(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가 공식 정부인 연방 정부(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e Union)를 탈퇴해 만들었다.

남북전쟁 발발 이후, 버지니아와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 4개 주와 노예 소유가 금지돼 있던 북부의 자유주(Free state) 인근의 미주리와 켄터키가 합류하면서 남부연합은 총 13개 주로 늘어났다.

노예주로 구성된 남부연합은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던 연방정부와는 별도로 이른바 반역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연방정부와 비슷한 체제를 갖추었다. 자기들만의 대통령(제퍼슨 데이비스)과 부통령(알렉산더 스티븐스)을 뽑았고 깃발도 새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남부연합기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구성했던 13개 노예주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구성했던 13개 노예주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 culturalresourc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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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링컨은 원래 약속한대로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처음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남군의 명장 로버트 리가 이끌던 남군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865년 4월, 남군은 버지니아의 애퍼머톡스 코트 하우스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다 투항을 하고 만다. 이들의 국기였던 남부연합기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여 사라졌다.

남부연합기는 이처럼 오래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군에는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대농장 대지주들이 많았다. 그런 만큼 이들은 흑인 노예들의 해방을 반대했다. 그래서 이들이 따로 세운 반역 정부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는 인종차별주의, 백인우월주의 등의 의미로 해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쉬어가기: 기자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는 용맹스러운 리 장군의 이름을 딴 <R. E. Lee 고등학교>가 몇 개 있다. 스탠튼을 비롯해 페어팩스, 스프링필드 등에. 흥미로운 것은 패장이었던 리 장군의 이름이 이곳 남부연합에 속했던 남부 주에서는 자주 보인다는 사실이다. 버지니아와 텍사스, 앨라배마 등에서. 그는 비록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지휘관으로서도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줘 전쟁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고교생 정학' 둘러싸고 팽팽히 맞선 찬반 논란

다시 브로드웨이 고등학교로 가보자. 이 학교 폴 란츠는 과연 정학까지 받아야 했을까.

폴 란츠는 자신이 타고 다니는 픽업트럭에 두 개의 남부연합기를 달았다. 란츠 외에 다른 학생도 똑같이 차에 깃발을 달았다. 학교 측은 이들 두 학생에게 깃발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거절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 이들은 정학 처분을 당했다.

그러자 이들에 대한 징계를 두고 언론과 지역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브로드웨이 고등학교를 관할하는 해당 로킹햄 카운티 교육청의 캐롤라인 펜 교육장은 이들에 대한 처벌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고, 브로드웨이 고등학교의 스티븐 리만 교장은 이들에게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반 동안의 정학을 선언했다.

 남부연합 깃발 사건으로 고교생이 정학당한 브로드웨이 고등학교.
 남부연합 깃발 사건으로 고교생이 정학당한 브로드웨이 고등학교.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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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학을 당한 란츠는 학교 측의 징계에 대해 항변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도 성조기 외에 다른 깃발을 달고 다닌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남부연합기를 단 것은 그것이 우리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양분되어 대립하고 있다.

"아니, 왜 아직도 이런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는 거지? 그런 깃발은 공립학교에서 달 수 없다고. 달고 싶으면 네 집에서나 달아. 차에 달고 싶으면 학교 아닌 다른 곳에서 달고 다니든가. 그 깃발도 몸에 걸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단 학교 밖에서 말이야." (STruth)

"남부연합기는 우리 버지니아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야. 정학을 당해야 할 사람은 그 학생들이 아니고 브로드웨이 고등학교 관계자라고." (Bill)

"'남부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왜 그게 인종차별주의나 협박이라는 거지? 그건 사실이잖아. 남부는 일어서고 있잖아. 둘러보면 알 것 아냐. 남부가 돈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고, 교통도 좋고 건강보험이나 주택 사정, 기타 다른 부문에서도 모두 뛰어나잖아. 캘리포니아를 보라고. 망해가고 있잖아. 미시간은 또 어떻고?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하잖아. 이러니 남부가 부흥하고 있다는 말을 어찌 안 할 수 있겠어? 이건 협박이 아니라고." (Gafftop)

사실 남부연합기 문제는 과거로부터 논란거리가 되었던 케케묵은 주제다. 그리고 최근에도 이와 관련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남군의 유산을 이어받은 원주민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어느 백인 노동자의 트럭. 트럭 뒷유리에 '남부연합기'가 세 개나 붙어 있다.
 남군의 유산을 이어받은 원주민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어느 백인 노동자의 트럭. 트럭 뒷유리에 '남부연합기'가 세 개나 붙어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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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테니스 스타의 시합거부와 남부연합기 도난사건

흑인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는 2000년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벌어진 '패밀리 서클 컵' 대회를 보이콧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사당 정면에 남부연합기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윌리엄스는 이 대회 참가를 오래 전에 결정했었다. 하지만 흑인 민권단체인 NAACP(유색인종의 발전을 위한 전국연합)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정부의 남부연합기 철거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자 윌리엄스도 이에 동참해 대회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또 지난 달 9월 14일,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부 몬태나 주의 몬태나 대학교(UM)에서는 이 대학 기숙사 발코니에 내걸렸던 남부연합기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깃발의 주인공은 버지니아에서 편입해 온 카일 존슨(20).

 공화당을 찍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만든 포스터. 이들은 남부연합기를 들고 있는 백인우월 단체 KKK 사진을 써서 "공화당을 찍으라"고 말하고 있다. 공화당에 대한 적대감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 처음 KKK를 구성한 단원들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 속했던 테네시 주 출신의 재향군인들이었다.
 공화당을 찍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만든 포스터. 이들은 남부연합기를 들고 있는 백인우월 단체 KKK 사진을 써서 "공화당을 찍으라"고 말하고 있다. 공화당에 대한 적대감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 처음 KKK를 구성한 단원들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 속했던 테네시 주 출신의 재향군인들이었다.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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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측은 존슨에게 깃발을 거두어 줄 것을 요구했다. 왜냐하면 이 대학은 어떤 깃발도 허용하지 않는 '노 배너'(No Banner) 정책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존슨의 깃발은 학교 정책에 어긋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었다. 깃발의 상징이나 의미와는 상관없이.

하지만 존슨은 남부연합기 철거를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 맞서며 학교 측의 지시를 거부했다. 존슨의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깃발이 인종차별주의나 광신도의 상징쯤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내게는 유산이고 전통이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의 상징이다. 특히 내 고향 버지니아의 상징이고 우리 가족의 역사를 나타낸다. 이 깃발을 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논쟁 중에 존슨의 깃발이 도난당한 것이었다. 물론 이 깃발을 훔친 범인은 다른 물건은 일체 손을 대지 않고 남부연합기만 훔쳐갔다. 존슨은 이 사건이 발생한 뒤 다시 새 깃발을 페덱스로 주문해 놓은 상태다. 깃발이 도착하는 대로 다시 걸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기자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에도 남부연합기를 게양한 집이 있었다. 4년 전의 일이다. 기자는 이 기사를 쓰면서 그 집이 떠올라 다시 찾아가 봤다. 그런데 그 깃발은 완전히 찢겨져 있었다. 그 잔해만 남아 국기대에서 펄럭거리고 있을 뿐.

 다 찢겨져 나간 남부연합기가 국기 게양대에 걸려 있다. 하지만 주인은 새로 남부연합기를 구입할 작정이다.
 다 찢겨져 나간 남부연합기가 국기 게양대에 걸려 있다. 하지만 주인은 새로 남부연합기를 구입할 작정이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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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기를 게양했다고 혹시 누군가로부터 테러를 당해 저렇게 된 것은 아닐까?'

많이 궁금했던 터라 주인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첫 방문에서는 실패했다. 기자는 며칠 뒤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이른바 레드넥(남부의 농장노동자, 혹은 블루칼라 노동자)으로 보이는 리처드(47)를 만날 수 있었다.

리처드에 따르면 그 집에 내걸렸던 남부연합기는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게 아니고 바람에 찢겨진 것이라고 했다. 싱거웠다. 하지만 그 집 주인인 자신의 사장은 새로운 남부연합기를 장만해 다시 걸려고 한다고 했다.

리처드는 최근 문제가 되었던 브로드웨이 고등학교가 있는 브로드웨이에 살고 있다. 그에게 논란이 되고 있는 남부연합기에 대해 물었다.

"왜 그게 문제가 되나? 악명 높은 KKK가 같은 깃발을 썼기 때문에? 사실 그 깃발은 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 집에도 남부연합기가 걸려 있는데 나는 그 깃발이 자랑스러운 우리 버지니아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브로드웨이에 사는 리처드(47). 리처드는 자신의 집에 남부연합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걸어 두었다. "남부연합기는 자랑스러운 버지니아의 유산이에요. 왜 이 깃발이 문제가 되는 거죠?"
 브로드웨이에 사는 리처드(47). 리처드는 자신의 집에 남부연합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걸어 두었다. "남부연합기는 자랑스러운 버지니아의 유산이에요. 왜 이 깃발이 문제가 되는 거죠?"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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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논쟁, 감정을 떼어 놓고 생각하라

남부연합기를 둘러싼 이런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적 차별의 상징인가, 아니면 자랑스러운 남부의 풍부한 유산인가.

깃발과 관련된 이 논쟁은 그동안 아무런 해답 없이 평행선을 달려 왔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비교적 차분하고 냉정한 해법을 제시한 역사학자가 있다. 바로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있는 남부연합 박물관 관장인 존 코스키(John M. Coski).

그는 지난 2005년에 자신의 저서 <남부연합기: 미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표상>(The Confederate battle flag: America's most embattled emblem)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 코스키가 쓴 책 <남부연합기: 미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표상>.
 존 코스키가 쓴 책 <남부연합기: 미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표상>.
ⓒ 존 코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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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기에 관한 논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감정적이거나 관념적인 시각 그 어느 쪽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남부연합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 유산이라는 점만 강조하여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럽게 진실인 것을 왜곡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흑인들이 이 깃발에 대해 느끼는 고통이나 적의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누군가의 아픈 상처나 스스로를 기분 좋게 만드는 욕망이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공공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을 제시한다고 믿지 않으니까.

나는 상당한 고뇌의 시간을 거쳐 결국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깃발을 두고 벌어지는 이 논쟁에서 감정을 떼어놓는 것이야말로 '선'이라고."


#남부연합기#미국#남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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