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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저녁 7시, <산타렐라 패밀리> 기자좌담회에 나선 영화평론가 전종혁(왼쪽)씨와 최현숙씨.
 19일 저녁 7시, <산타렐라 패밀리> 기자좌담회에 나선 영화평론가 전종혁(왼쪽)씨와 최현숙씨.
ⓒ 프레시안 선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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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추석이 돌아왔다. 과일류 가격이 상승하면서 올해 차례상 비용은 4인가족 기준으로 17만9000원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는 이번 추석을 계기로 상봉한 남북 이산가족들이 눈물의 재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족은 정말 그토록 소중한 걸까?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의 주인공인 막시, 그의 아이들 에두와 알바, 그리고 옆집의 호라시오에게 가족은 소중하다.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최현숙씨에게도 가족은 소중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족'은 두 남녀의 신성한 결혼과 그에 따른 핏줄로 얽힌 혈연 혹은 성적 결합의 집단이 아니다.

젊은 시절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던 막시는 게이로 커밍아웃하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이제 막 호라시오와 연애를 시작했다. 전처가 죽은 뒤 갑자기 주어진 아버지의 역할이 어렵기만 하고 커밍아웃하지 않은 채 자신을 숨기는 애인에게 서운하지만, 막시는 결국 이들과 화해한다. 이 '패밀리'가 사이좋게 소풍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최현숙씨는 24년을 큰딸로 살고 24년을 아내와 어머니로 살았다. 그러다가 마흔 넘어 이혼하고 여성 파트너와 살기 시작했고 지난 2004년 커밍아웃도 했다. 다행히 장성한 아이들은 엄마의 다른 정체성을 이해했다. 다시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왜 국가에 등록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게이 남편과 레즈비언 아내... 죄일까?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의 게이 커플 막시(오른쪽)와 호라시오.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의 게이 커플 막시(오른쪽)와 호라시오.
ⓒ 이미지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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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저녁 7시 서울 필름포럼 극장에서 영화평론가 전종혁씨와 레즈비언 최현숙씨가 만나 동성애와 가족에 대해 '썰'을 풀었다.

막시는 영화 속 허구의 인물인데다가 스페인에 사는 게이 요리사, 최현숙씨는 실제로 한국에 사는 레즈비언 정치인.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궤적은 많이 닮았다. 그래서 막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최씨에게 대신 물었다.

사실 궁금한 게 많았다. 진보적 입장에서 동성애자 결혼합법화는 찬성하지만,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 부모나 주변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자식한테는 무책임한 일 아닐까? 정말 막시처럼 위장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많은 거야? 아래 내용은 전종혁씨와 기자들이 최현숙씨에게 질문하고 들은 답변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동성애자들은 다 결혼을 하고 싶어하나?


탤런트 홍석천씨와 함께 찍은 최현숙씨의 인터뷰 사진. 지난해 4월 총선 직후 촬영했다.
 탤런트 홍석천씨와 함께 찍은 최현숙씨의 인터뷰 사진. 지난해 4월 총선 직후 촬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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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들의 요구는 각자 다르다. 반드시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리고 법적으로 인정받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저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든 그 관계를 국가에 등록하고 싶지 않다. (동성애자들의 결혼이) 이성애적 '가족'을 최종의 정상적 관계로 놓고 그 안에 편입해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구성하고 싶은 욕망은 인정해야 한다.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성적 결합이나 혈연을 넘어서 다른 관계들, 우정이든 사회적 필요든 그건 자신들 욕망대로. 진지하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된다.

합법적으로 결혼할 권리가 없는 것, 이것이 차별이다. 나라에 따라서 완전한 결혼으로 인정하기도 하고, 결혼이 아닌 '시민결합'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등록만 받아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등록조차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결혼은 사회경제적 관계다. 안 하면 세금도 개별적으로 지고 부담이 커진다. 비혼 1인가구나 장애인 자립공동체 역시 세금이나 연금 등에서 차별받는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시민이 개별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올바르다. 모여사는 사람들이 혈연이든 아니든, 성적 관계가 있든 없든, 돈을 어떻게 나눠갖든 지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 진짜로 등 떠밀려 결혼하는 경우가 많나.
"상당히 있다. 의사나 법조계 등 전문직 가운데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계약결혼도 많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서 인정받으려면 결혼이 필요하다. 원하지 않는 사람과 서로 불행하게 사느니 계약결혼을 하는 것이다.

성정체성을 결혼 이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성찰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냥 섹스하고 결혼했는데 그 이후에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혼을 깨지 못하고 숨긴다. 그것이 죄일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 개인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아빠'에서 '엄마'로... 혼돈이 가져다준 새 가족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의 한 장면. 아이들은 게이 아빠가 싫고, 갑자기 양육 책임을 맡은 아빠는 아이들이 어렵다.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의 한 장면. 아이들은 게이 아빠가 싫고, 갑자기 양육 책임을 맡은 아빠는 아이들이 어렵다.
ⓒ 이미지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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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자식들은 게이인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어떤가.
"특히 게이들의 경우 이성애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게이) 커뮤니티에서 관계를 만들다가 가족에게 들킨다.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정면으로 혼돈에 부딪혀서 성실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아는 '엠 투 에프'(MtoF :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경우) 성전환자의 경우 결혼하고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정체성을 확인했다. 결국 이혼을 결심했는데, 자신의 성전환 과정을 보여주면서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쯤 아빠를 엄마로 바꿔부르고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겪었다. 아이에게도 당사자도 혼돈스러웠지만, 새로운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녀 문제는, 거꾸로 생각해보자. 이성애자 남성이 20대에 애를 만들고 도망 나왔는데 아이들이 나타나면 도망가고 싶어 한다. 말로 하든 안 하든, 핑계를 댄다. 동성애자는 애정이 없냐? 그게 아니라 갑자기 오는 짐에 대해서 도망가고 싶은 거다."

- 동성애자들의 입양이 많이 어렵나.
"사실 한국의 법조항은 18세 이상 누구나 입양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는데 입양기관들이 까다롭다. 대부분 교회나 가톨릭단체가 운영하다보니까 보수적이다. 동성애자에게 어떻게 애를 맡기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모범 입양 사례로 꼽힌 것은 게이 공동체가 입양한 아이였다. 자유롭고 다양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게이 커플이 아이를 더 잘 키운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든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 호라시오는 커밍아웃을 놓고 고민한다. 여전히 힘든 일인가.
"대부분 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이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으로 독립할 준비가 안 된 어린 사람들은 더 그렇다. 이후의 삶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사회적 관계 만드는 데 왕따가 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호라시오가) 커밍아웃한 이후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을 뿐이지, 많은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커밍아웃하는 게 좋다. 이후 (커밍아웃 범위를) 차차 확대할 수 있다. 숨겨온 실존의 한 부분을 드러내고 내 존재 자체로 관계를 맺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동성애자를 미워하는 당신, 뭐가 불안하신가요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에서 호라시오는 결국 갈등 끝에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사랑을 밝힌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은 동성애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에서 호라시오는 결국 갈등 끝에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사랑을 밝힌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은 동성애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 이미지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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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사람들은 동성애자를 싫어하나.
"혐오의 근본 원인은 자신의 존재불안이다. 자존감과 자긍심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주변에 약하거나 특이한 사람을 차별하면서 허상으로 불안을 채운다. 예를 들어 60점을 맞는 아이가 자신의 점수를 긍정하면 50점짜리와도 놀 수 있다. 그러나 그 점수가 너무 창피하고 싫으면, 70~80점짜리를 미워하고 40~50점짜리는 무시한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이나 법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이성애자들도 '왜 내가 못 받아들이나' 자기성찰해야 한다."

- 가족주의가 싫은 거지, 가족이 싫은 것은 아니지 않나. 동성애자들은 어떤 가족 꿈꾸나.
"2006년쯤부터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위한 연구모임'이 만들어졌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여성·장애인 등도 포함된다. 목표는 이성애 혈연관계 공동체와 그외의 친밀한 공동체 사이 차별을 없애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다. 동성애만 인정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대선이나 총선에서 진보정당에서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구체적 공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영화는 동성애자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실제 상황을 모른 척 하는 것 아닌가.
"대체로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비교적 동성애 문제에 열려있고, 성(性)이라는 문제라서 이 코드가 소재로 적당하다. 문화예술에서 동성애자를 유쾌하게 다루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고통받는 현실은 그냥 넘어가고 인권은 나중 문제가 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 영화에서 섹스 장면이 나오면 평가는 '선정적이라서 싫다'는 쪽도 있고 '솔직하게 잘 드러냈다'는 쪽도 나온다. 그러나 잃을까봐 문을 닫으면 갇히는 것이다. 포기할 수는 없다. 단계적으로 목표를 두고 얻을 것은 챙기고 잃은 부분을 갈무리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태그:#산타렐라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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