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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진영이 대중문화예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지 멀어지는 것 뿐 아니라 얼마 되지도 않는 진보적 예술인들의 목을 조르기까지 한다. 이런 식이면 시민운동진영, 진보진영에 우호적인 대중문화예술인은 완벽하게 철수하게 될 것이다.

 

진보진영과 대중문화가 결별하게 된 데는 진보진영의 책임이 크다. 이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철저하게 기능적인 태도로 문화예술을 대한다. 이런 이들에게 대중이라는 개념과 대중문화에서의 스타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알고는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적지 않은 시민단체들이 그들 단체를 홍보해줄 홍보대사 선정을 위해, 각종행사와 집회를 위해, 대중예술인 섭외를 부탁해 오지만 그 어떤 곳도 그들이 원하는 스타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어떤 가수의 출연을 원하면서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연하게도 그 가수의 음반을 한 장 산다거나, 그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를 보았다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거나 없다. 단지 그가 유명하다니까 그래서 그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운동에 기능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참을 수 없는 천박한 속내를 보인다.

 

어렵사리 연결되어 단체와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스타의 속성이나 아티스트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지속적으로 이어가지도 못한다. 아니 어쩌면 어차피 일회용이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은 대중문화예술이 운동에 철저하게 복무해야 한다는 '쌍팔년도식' 사고에 멈추어 서 있는 것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그토록 기능적인 사고를 하면서 정작 제대로 활용도 못 한다는 사실이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예술인들을 불러내고 최소한의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대중들을 선동하라고 부추긴다. '이런 뜻 깊은 자리에 선 것을 영광으로 알아 이 딴따라들아'라고 말하는 식이다. 최소한의 양식도 갖추지 못한 보수 우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일천한 의식들을 가지고 있다.


이 시대는 대중문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정체성도 설명할 수 없는 시대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그리고 분명한 방법은, 내가 무슨 영화를 좋아하고 무슨 음악을 즐겨듣고 무슨 옷을 입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우리들의 낡은 사고 속에 있는 문화예술, 저 먼 피안의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과 생활에 구체적으로 맞닿아 있는 '무엇'이다. 


대중문화란 현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상상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대중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우리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는 고결한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세상과 우리를 좀 더 나은 곳으로, 좀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끌어다 줄 것이라는 믿음과 뜨거운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의 상상력이 일천해지고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멀어져 가면 세상은 위태해지고 살기가 죽기보다 어려워지게 된다. 세상이 바뀌길 원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기대한다면, 희망의 바람이 불길 바란다면, 그 바람은 찌들대로 찌든 일상 속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중문화예술의 아름다운 상상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진보진영이 이러한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는 예술인들이 고사하고 상처받고 결국은 떠나게 된다. 연대할 대상을 찾지 못해 소멸해 가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상상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운동단체의 잘못이다. 어느 가수는 '내가 계속 사회비판적인 활동을 하고 진보진영에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내 음반을 사라 '고 이야기했다. 또 어떤 배우는 '시민운동단체에서의 부탁은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연대가 필요한 시기다. 운동이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해서 문화예술인들의 참여가 절실한 시기기도 하다. 오늘날 세상이 이 따위로 망가져가는 가장 큰 원인은 어쩌면 MB나 한나라당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화가 상상력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희망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부탁한다. 진보진영이여 대중문화와 해후하라!

덧붙이는 글 | 탁현민은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이며 지난 6월 21일 노무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분다'를 연출한 연출가이기도 합니다. 


태그:#진보진영, , #대중문화,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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