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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큰딸이 고민 중이다. 어느 대학으로 진학할 것인지를 두고. 딸은 지난 해 가을부터 원서를 쓰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원서 마감이 끝난 올 1월 이후부터 각 대학으로부터 속속 입시 결과를 통보받았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대기자 리스트에 오른 한 대학을 빼고는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 것도 잠시, 이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싼 등록금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원한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설명을 듣고 있다.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자신이 지원한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설명을 듣고 있다.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 한나영

 

대학 합격의 기쁨도 잠시...1년 비용 6500만원?

 

딸이 합격한 대학 가운데 대표적인 사립과 공립 대학의 등록금을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노스웨스턴대학교와 버지니아대학교 등록금 비교
노스웨스턴대학교와 버지니아대학교 등록금 비교 ⓒ 한나영

사립인 노스웨스턴의 경우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합하면 1년에 5만 달러 정도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낮은 소득을 보인 미시시피 주의 4인 가족 연 평균 소득인 5만 801달러와 맞먹는다. 그러니 4인 가족이 1년 동안 생활하기 위해 벌어들인 수입에 버금가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한 해 대학 등록금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거의 6500만원 정도. 그야말로 "억"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하다.

 

공립인 UVA는 현재 세금을 내고 있는 버지니아 주민인 만큼 '인스테이트(in-state)' 등록금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립의 1/3 정도 되는 1만 7381달러다. 우리 돈으로 치면 2300만원 정도. 버지니아의 다른 공립에 비한다면 3천 달러 정도 비싸지만 사립에 비하면 많이 싼 편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에 비싼 책값과 학교에 내는 기타 경비 및 개인 비용을 감안한다면 1년 등록금은 웬만한 가정의 소득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유한 가정이 아닌 일반 중산층 가정은 사립대학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주의 공립대학을 간다. 특히 올해는 경제가 많이 안 좋아 공립인 주립대학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졸업반인 웨스턴 레놀즈도 바로 이런 경우다. 웨스턴은 공부도 잘하고 학교 신문 <뉴스스트릭>의 편집장에 노래와 춤도 뛰어난 뮤지컬 스타다. 팔방미인형 수재인 웨스턴은 자신이 지원한 아이비리그의 코넬 대학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공립인 버지니아 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코넬 대학 역시 수업료(3만7954달러)에 기숙사비(1만2160달러)를 더하면 5만 달러가 넘는다.

 

웨스턴은 뒤늦게 버지니아 대학으로부터 대학 설립자이자 3대 대통령이고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제퍼슨 장학생'에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되어 한 시름 덜게 되었다.

 

 사립인 노스웨스턴 대학의 학비 내역. 5만 3608달러라! "억"
사립인 노스웨스턴 대학의 학비 내역. 5만 3608달러라! "억" ⓒ 노스웨스턴 대학교

 

아이비리그 합격한 수재도 등록금 때문에 공립으로

 

요즈음 우리나라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이 삭발을 하고 등록금 인하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비싼 건 우리나라뿐 만이 아니다. 미국은 오히려 그 이상이다.

 

<컬리지보드>가 발표한 2008-2009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4년제 사립대학 평균 학비는 기숙사비를 포함해 3만 4132 달러였다. 이는 전년보다 4.8% 인상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미국의 대표적 사립대학들의 연간 학비는 기숙사비를 포함해 5만 달러 이상이다.

 

반면 4년제 공립대학(인스테이트, 기숙사비 포함)은 지난해 보다 5.7% 인상된 1만4333 달러다. 아웃 오브 스테이트(주외 거주)는 전년보다 5.2% 인상된 2만 5200달러.

 

(*주-7천 달러(공립)에서 1만 2천 달러(사립)에 이르는 기숙사비를 왜 학비에 포함시키려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싼 아파트에 살면 되지 굳이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미국 대학 대부분이 신입생의 기숙사 거주를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으로 정해놓고 있다.)

 

딸이 합격한 아웃 오브 스테이트 대학인 인디애나 대학의 경우, 기숙사비를 포함해 약 3만3천 달러다. 공립이지만 아웃오브 스테이트 대학이기 때문에 비싼데 이 대학은 5천 달러 장학금을 딸에게 제의했다. 하지만 전체 등록금 가운데 겨우 1/6 정도여서 현재로서는 포기한 상태다.

 

 수업료 인상률이 3.6%로 40여 년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재정보조는 10%까지 올랐다고 보도한 노스웨스턴 대학교.
수업료 인상률이 3.6%로 40여 년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재정보조는 10%까지 올랐다고 보도한 노스웨스턴 대학교. ⓒ 노스웨스턴 대학교

 

하버드나 스탠포드는 '공짜수업료'라도 있지만

 

물론 일부 대학의 경우, 부모의 연 소득이 적으면 공짜로 다니기도 한다.

 

하버드나 스탠포드 같은 명문 사립대학의 '공짜 수업료'가 그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부모의 연 소득이 10만 달러 이하면 수업료를 안 낸다. 6만 달러 이하면 기숙사비도 공짜고.

 

공부는 잘 하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스탠포드 대학에 갈 수 없는 가난한 고3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대학은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1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가정에도 재정적인 보조를 늘리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에도 부모의 소득이 연 6만 달러 이하면 수업료가 공짜다.

 

하지만 이런 혜택이 미국의 모든 대학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는 극소수 대학들의 얘기일 뿐이다. 다른 사립대학이나 많은 공립대학의 경우에는 공짜 수업료 대신 학생 융자나 장학금과 같은 형태의 재정 보조를 통해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이렇게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부담하고 있을까. <컬리지보드> 자료에 의하면 연 1430억 달러 이상의 금액이 각 가정의 학생 재정 보조에 쓰이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 풀타임으로 등록한 학생 2/3는 바로 이런 학자금 보조를 받고 있고.

 

그러면 학자금 보조 신청은 어떻게 하는가. 대학에 갈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매년 1월이 되면 일찌감치 세금 보고를 서두르고 'FAFSA(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라고 하는 연방 학비 보조 무료 신청서를 내게 된다.

 

연방 교육부는 FAFSA에 나온 정보를 기초로 하여 각 가정이 부담할 수 있는 등록금 정도를 나타내는 'EFC(Expected Family Contribution)'를 산출해내고 이를 통해 각 가정의 소득 및 재산 정도 등의 재정 형편을 본 다음 학자금 보조를 결정하게 된다. 즉, EFC가 높게 나오면 학자금 보조가 적게 나오고 EFC가 낮으면 보조금이 많아지게 된다.

 

재정 보조는 학생이 지원한 대학을 통해 여러 형태로 지급되는데 학비 지원은 무상으로 지원되는 그랜트(Grant)나 장학금, 대학 졸업 후 갚아야 하는 융자(Loan),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워크 스터디(Work study)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등록금 전부를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아 그랜트나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도 융자를 얻거나 워크 스터디를 통해 학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비와 관련된 재정 업무를 보는 곳. BRCC(블루리지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학생들의 학비와 관련된 재정 업무를 보는 곳. BRCC(블루리지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 한나영

대부분 빚더미에...그랜트, 융자, 워크스터디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에 있는 사립대학인 EMU(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 1학년생인 크리스타 타운젠드도 바로 이런 경우다.

 

크리스타는 성적이 우수하여 입학할 당시 학교 측으로부터 장학금과 그랜트를 받았다. 하지만 학비를 대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FAFSA를 통해 학생 융자 1만 5천 달러를 받았고 도서관에서 워크 스터디도 하고 있다.

 

현재 기말고사가 끝나 대학은 이미 여름방학에 들어갔지만 크리스타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학교에 나가고 있다. 방학 중에는 학기 때보다 시간을 더 늘려 일할 계획이다.

 

조경사와 간호사로 일하는 크리스타의 부모는 자신들의 수입이 대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되지 않는 어중간한 수입이어서 학비 면제를 받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크리스타는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공부하느라 진 빚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졸업을 한 뒤 취업을 하게 되면 그 많은 빚을 6개월, 또는 9개월 뒤 부터 갚아 나가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고민이 많지만 크리스타는 일단 학업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2년제 및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재학중에 진 빚 현황을 보여주는 그래프.
2년제 및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재학중에 진 빚 현황을 보여주는 그래프. ⓒ 컬리지보드

 

하지만 크리스타와는 달리 등록금을 다 대준 부자 아버지를 만난 행운의(?) 자녀들도 있다. 현재 UCLA에 재학 중인 존 김. 존은 동부의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그의 누나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부모가 등록금을 다 대주고 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3년 전 졸업한 딸의 학비로 20만 달러 가까이 썼고 4학년에 올라가는 아들 등록금으로 이미 10만 달러 정도를 쓴 상태다. 존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이상 부모에게 손 벌릴 생각 말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는 존은 학생융자를 얻어 공부할 생각이다.

 

이처럼 많은 미국 대학생들은 빚을 얻어 공부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교사인 30대 중반 릭 선생님도 학부 때 얻은 빚을 지금도 다달이 갚아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졸업생 66% 빚 안고 졸업...1인당 1만9천 달러

 

 <컬리지보드>(2004) 연구는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이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보다 60% 이상 더 벌고 이를 평생으로 따져보면 80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은 받을 만하다는데 과연 그럴까.
<컬리지보드>(2004) 연구는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이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보다 60% 이상 더 벌고 이를 평생으로 따져보면 80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은 받을 만하다는데 과연 그럴까. ⓒ 한나영

그런 까닭에 일부 실속파 학생들은 등록금이 싼 2년제 커뮤니티 컬리지에 등록을 한다. 버지니아 주 웨이어스 케이브에 있는 '블루리지 커뮤니티 컬리지(BRCC)'의 경우 풀타임 학생이 들어야 할 12학점 수업료는 한 학기에 1071달러다. 4년제 공립인 JMU(3482달러)나 UVA(4836달러)에 비하면 1/3, 1/4 수준이다.

 

이들은 2년 동안 저렴한 학비로 공부를 한 다음 재정 계획을 세워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커뮤니티 컬리지에 다닐 때도 학생 융자를 얻는다.

 

'내 빚 갚는 것 좀 도와줘요(http://helpmepaymyloans.com)'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미국인들의 빚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경기불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실질임금이 감소한 데 따른 현상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학교 다닐 때 진 빚 때문이다.

 

<컬리지보드> 자료에 의하면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은 졸업할 무렵에 2/3 정도인 66%가 빚을 안고 졸업한다고 한다(2004). 1993년에 대학 졸업생의 50% 미만이 빚을 안고 졸업했던 것에 비하면 그 수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학생들이 지는 빚도 그 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금액을 10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학생 빚은 평균 9250달러에서 1만 9200달러로 108% 늘어났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58% 증가한 셈이다.

 

결국 미국에서도 대학 졸업장은 빚을 얻기 위해 써 준 차용증서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대학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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