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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연합뉴스>의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개정안은 ▲ 연합뉴스를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한 조항을 삭제하고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연합뉴스>와 구독계약을 체결하며 ▲ 지배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가 <연합뉴스>에 대한 경영 감독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대해 언론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연합뉴스가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스통신진흥법을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봐야할지 <오마이뉴스>가 특별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말]
[기사 대체 : 7일 오후 6시 50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연합뉴스> 사옥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연합뉴스> 사옥

"요즘 <연합뉴스>가 난리도 아니다. 국회 출입 기자들과 정당팀장은 물론이고 편집국장까지 우리 방에 찾아와서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 통과에 협조해달라'고 통사정하더라."

민주당 A의원의 한 보좌관이 전해준 3주 전 국회 의원회관의 풍경이다. 기자와 국회의원의 관계에서 먼저 손을 벌리는 쪽은 의원이기 마련인데, 최근 며칠 동안은 처지가 바뀐 것 같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또 다른 의원의 비서관도 "법안을 1차 심의하는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들에게는 <연합뉴스> 기자들이 3~4차례씩 찾아와서 '집중공략'을 했다"며 "내가 모시는 의원은 <연합뉴스>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던 터라 입장이 더 곤란했다"고 말했다.

뉴스통신진흥법의 유일한 수혜자, 연합뉴스

정부의 <연합뉴스> 지원을 명문화한 뉴스통신진흥법이 제정된 2003년에도 <연합뉴스> 기자들의 정치권 로비는 맹렬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30일 심의·의결한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은 6년간 효력을 갖도록 한 '한시적 지원'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연합뉴스>에 대한 정부 지원은 반영구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연합뉴스>가 지난해 10월16일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받은 국고보조금은 316억57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국고보조금도 뉴스통신진흥법이 제정된 뒤 <연합뉴스>가 '떳떳이' 받았던 정부 구독료에 비하면 적은 액수다.

<연합뉴스>가 정부 부처로부터 받는 구독료는 2003년만 해도 125억원 수준이었지만, 2008년에는 341억원이나 됐다. 뉴스통신진흥법 6조는 정부가 대통령령에 따라 뉴스통신사업자와 구독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유일한 매체가 <연합뉴스>다. <연합뉴스>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지원금 및 구독료로 받은 총금액은 약 1847억 원에 이른다.

1990년대까지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연합뉴스는 2003년 뉴스통신진흥법 통과와 무가지·포털 시장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단위 : 원)
▲ 2003~2008 연합뉴스의 실적 1990년대까지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연합뉴스는 2003년 뉴스통신진흥법 통과와 무가지·포털 시장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단위 : 원)
ⓒ 오마이뉴스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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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 2003년만 해도 <연합뉴스>의 총 매출 가운데 정부 지원금 및 구독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였지만, 2008년에는 31.6%로 늘어났다. 2003과 2004년은 적자를 봤지만 2005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흑자를 냈다. 안정적인 정부 지원이 계속되면서 <연합뉴스> 직원들(2008년 12월 현재 기자 533명 포함 총 750명)의 '주머니 사정'도 한결 나아졌다.

2004년에만 해도 <연합뉴스> 직원들의 1인당 급여와 후생복리비를 합친 금액은 약 4960여만 원에 머물렀지만, 2007년에는 5910만원에 이르렀다. '1억 연봉' 논란에 휘말렸던 방송사 기자들에는 못 미치지만, 신문·방송·통신·인터넷 등 모든 형태의 미디어를 통틀어 '톱 클래스'의 급여를 받는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 구독료와 언론사 전재료 등으로 근근이 손익을 맞췄다. 그러나 <연합뉴스>로부터 기사 공급을 원하는 무가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포털사이트들로부터 거액의 구독료를 받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 구독료와 언론사 전재료를 제외한 '제3의 수입'은 2003년 177억 원에서 2007년 338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그러나 연합뉴스 관계자는 "사업 다각화로 인해 '제3의 수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중에서 포털·무가지로부터의 수입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가 제도권 언론이라는 '뉴스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독자들을 포털 사이트에서 직접 만나게 되면서 언론사로서의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연합뉴스>의 한 중견기자는 "통신사 기자의 업무량은 초년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지만, 출입처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회사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라며 "뉴스통신진흥법과 포털 뉴스 공급이 <연합뉴스>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자평했다.

6년 한시적 지원에서 반영구 지원으로... 독점 논란 

하지만 <연합뉴스>의 영향력이 커지고 수익 구조도 다변화되면서 정부 지원을 영속화하는 뉴스통신진흥법의 필요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팀장은 "<연합뉴스>가 자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회나 청와대 등 정치권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뉴스 도매상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연합뉴스에 대한 면밀한 평가 없이 이해당사자(연합뉴스)와의 협의만으로 정부 안이 나온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2003년 국회가 뉴스통신진흥법을 통과시키며 "6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단서를 단 이유는 <연합뉴스>가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했다.

같은 해 4월28일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 과정에서 한나라당 간사였던 고흥길 의원은 "사장의 임기가 3년인데, 사장이 두 번 정도 바뀌면 기강이 잡힐 것 아니냐? 그때는 이 법이 폐지돼도 자립갱생이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6년 한시법으로 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연합뉴스>의 자생력을 갖추게 한다는 명분으로 한시적으로 만든 법이 정부지원을 영구적으로 받는 방향으로 개정될 경우 <연합뉴스>가 전주(錢主)인 정부의 영향으로부터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연합뉴스>에 '특혜'를 주는 뉴스통신진흥법으로 인해 특정 통신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언론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 6월30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전효숙 재판관)가 뉴스통신진흥법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합헌 이유는 "시행일로부터 6년 동안만 효력을 가지므로 경쟁제한의 효과가 영구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4년 전에는 헌재가 <연합뉴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연합뉴스>와 <뉴시스>라는 복수 통신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정사에만 정부 지원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된 다면 자유경쟁이라는 시장 원칙과 모순된다.

한편, <연합뉴스>의 10분의 1 규모 인력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 <뉴시스>는 말 그대로 요즘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 중앙부처가 <뉴시스>를 구독하기 위해 지불하는 대금은 연 1억 원. <연합뉴스>의 300분의 1에 불과한 구독료밖에 주지 못한다.

<뉴시스>의 김철훈 부국장은 "정부 부처에 단말기를 공급하려고 해도 '뉴스통신진흥법상 관련규정이 없다', '<연합뉴스>가 반대해서 안 되겠다'는 답변이 나오기 일쑤"라며 "요즘 같은 자유경쟁시대에 특정 회사에 세금을 퍼주고 타사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법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시스>는 <연합뉴스>(533명)의 7분의 1에 불과한 기자 70여 명으로 <연합뉴스>(하루 1200건)에 버금가는 1000여건의 텍스트 기사를 출고하고 있는데, 한 회사가 정부 구독료를 '독점'하는 한 사실상 '1국 1통신사'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예산 30%, 정부가 좌우... 국정홍보 도구 우려

방송 시장에서는 KBS가 방송 수신료라는 공적 자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KBS와 필적할 만한 규모의 MBC와 SBS가 있고 24시간 뉴스 케이블 채널들도 많기 때문에 KBS가 여론을 통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현재 정부는 <연합뉴스> 예산의 30% 가량을 좌지우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뉴스>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여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정부가 <연합뉴스>를 '국정 홍보의 유력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유혹도 강해질 것이다.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은 "포털 사이트가 배치하는 주요 기사들은 <연합뉴스>의 비중이 50%가 넘는다"며 "이명박 정부가 국정홍보처를 없앤 것을 매우 아쉬워하는데, <연합뉴스>가 이런 역할을 맡게 되면 앞으로 여론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반면,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법은 프랑스 AFP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며 "1국1통신사 체제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한다.

프랑스는 AFP와 5년 단위로 구독료 계약을 일괄적으로 체결하고 있고, AFP(39%)와 이탈리아의 ANSA(29%)·스페인의 EFE(45%) 등의 정부 구독료 비중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희용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기자협회 상근부회장)은 "미국에 AP와 UPI라는 양대 통신사가 있지만, 두 회사의 사세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영국(로이터), 프랑스(AFP), 독일(DPA) 등도 특정 통신사의 우위가 굳어지고 있다"며 "자율경쟁 속에 통신사가 성장한 사례가 없다. <뉴시스>는 뉴스통신진흥법 때문에 <연합뉴스>의 덩치가 커진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 선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연합뉴스, #뉴스통신진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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