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두 번째로 현시기의 특징은 전쟁의 자동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전쟁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돈 뿐 아니라 노동자들한테 시민권도 쥐어줘야 했었죠. 양보를 많이 하지 않고서는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다는 것이죠. 이런 문제 때문에 전쟁은 정당성 위기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전쟁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으니까요. 그 대표적인 예가 베트남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전쟁 이후에 전쟁의 형태가 자본집약적인 형태로 바뀝니다. 자본집약적인 형태가 극단화하면 전쟁이 '자동화'합니다. 자동화한다는 것은 전쟁 주도국의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죠. 죽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국 병사의 손실이 최소화하기 때문에 국내적으로 노동자의 이탈이 줄어들고, 국내 노동자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 양보를 늘릴 필요성도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이라크전쟁도 사실 그렇습니다. 이라크인은 수만 명 수준으로 죽었지만 미군은 몇 천 명 단위의 사상자만 발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초반과 많이 달라지는데,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앞서 아리기가 말했듯이 모든 노동자가 전쟁에 동원되지는 않기 때문에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동일성 형성 메커니즘은 약화되지만, 대신 전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에 대중적 저항이 전쟁 자체를 억제하고 노동자의 사회적 권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등장하지는 않게 된다는 것이죠.

 

-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중에서

 

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 그중에 굵직굵직한 것만 간추려도 서넛은 될 것이다. 전장(戰場)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발칸반도 등지를 종횡무진하며 거침없이 전선(戰線)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전쟁 주도국인 미국의 국민들은 지나치리만큼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 왔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전역에서 벌어졌던 극렬한 반전(反戰)시위를 떠올리면 지금의 미국인들은 자국이 벌이는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뮬라시옹

 

도대체 미국인들은 자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대해 왜 이렇게 무감각한 걸까? 이 의문점을 풀기 위해 먼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끄집어내야 할 것 같다.

 

지난 걸프전 당시 세계적인 석학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는데 간단히 말해서 "1년 365일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걸프전은 일종의 눈속임에 불과하다. 1년 365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마치 제한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만 전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거대한 감옥이자 정신병동이란 것을 은폐하기 위해 감옥과 정신병동을 만들었고,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만큼이나 유치하다는 것을(그리고 실제 미국이 디즈니랜드처럼 허구적이고 유치하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디즈니랜드를 창조했고, 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정치현실을 은폐하기 위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인양 워터게이트 사건을 부각시켰다고 그는 폭로한다.

 

이처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나중엔 가짜가 진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가 가짜를 모방하는 단계에 이르는 현상을 일컬어 시뮬라시옹이라 한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걸프전에서 CNN은 전쟁 실황을 온라인게임처럼 생중계한 바 있다. 그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는 온라인게임 속 가상공간으로 축소되었고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분할하던 경계선도 모호해졌다.

 

오늘날 대다수 미국인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자국이 수행하는 전쟁과 괴리된 채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일차적 원인은 가상과 현실의 동질화 현상, 즉 시뮬라시옹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언론사에 의해 거대한 전쟁이 파편화된 이미지로 전송되는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전쟁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폐허가 된 이라크를 가상공간으로 대체하는 언론의 기만적 횡포 앞에서 시뮬라시옹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진화하는 전쟁

 

그러나 시뮬라시옹 이론만으로 서두에 제기한 의문점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전쟁이 국민 경제와 직결되어 있는 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실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참혹한 전쟁과 평화로운 일상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현실은 전쟁이 현실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현저히 줄었음을 암시한다.

 

과거 전쟁이 인력(人力)에 크게 의존하던 시절엔 그만큼 많은 병력이 필요했고 그 대부분을 노동자들로 충원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동원된 전쟁에선 국가적, 민족적인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국가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이후 자본집약적 형태로 진화한 현대전(現代戰)에선 자동화, 기계화된 첨단장비들이 인력을 대신한다. 예전처럼 대규모의 노동자들이 전쟁터에 동원되지 않으므로 전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제한적이다.(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발췌 부분 참고) 종국엔 참혹한 전쟁과 평화로운 일상 중에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자국이 벌이는 전쟁에 대해 무감각한 것처럼 우리 역시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것이 우리 현실에 직접적인 위협이나 고통으로 다가오기 전까진.

 

그렇다면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무책임, 안일, 나태, 이기심부터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 2006.
가격 17,900원


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지음, 그린비(2006)


태그:#시뮬라시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