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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종교 자유투쟁'을 벌인 바 있는 강의석씨가 최근 <태환아, 너도 군대가>라는 글에서 박태환 선수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거부하고 군대에 갈 것과 자신이 하고 있는 병역거부 운동에 동참할 것을 제안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해오고 있는 임재성씨가 강의석씨에 대한 비판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박태환 선수(좌). 그런 박 선수에게 병역특례 거부와 함께 군대 거부 운동을 제안해 화제가 되고 있는 강의석씨(사진은 2004년 6월 학내종교 자유투쟁 당시의 것).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박태환 선수(좌). 그런 박 선수에게 병역특례 거부와 함께 군대 거부 운동을 제안해 화제가 되고 있는 강의석씨(사진은 2004년 6월 학내종교 자유투쟁 당시의 것).
ⓒ 연합뉴스·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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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씨, 잘 지내셨어요? 재성입니다. 몇 번 만났으면서도 아직 존댓말을 쓰는 사이네요. 요즘 의석씨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의석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까 하다가 이렇게 글을 하나 쓰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 좀 망설였습니다. 지금 의석씨를 옹호하는 것이 맞을까, 그래도 나름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이 맞을까 하구요. 여전히 조금이라도 군대를 비판하면 생매장되는 한국사회의 상황. '강의석 군대보내기 서명운동'까지 진행된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의석씨를 비판하는 게 맞을까.

고민 끝에 제목을 '강의석을 위한 비판'으로 했습니다. 대상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를 '위한' 비판. 20대에 병역거부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의석씨의 지금 생각이 보다 잘 표현되도록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공적 논쟁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이런 공개글이 논의 지형에 조금이나마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구요.

그럼에도 남는 걱정은 이 글이 마치 어떤 훈수나 권위적 조언으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분명 아닙니다. 저 역시 전쟁과 폭력, 군대에서 대해서 많은 고민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의석씨의 문제의식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그 방식에 대해서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에 진솔한 토론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의석씨에게 인신공격이나 비아냥이 아닌 진심을 담은 비판이 절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가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강의석 군대 보내기 청원 운동을 하고 있는 다음 아고라의 게시판
 강의석 군대 보내기 청원 운동을 하고 있는 다음 아고라의 게시판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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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은 명료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가수 성시경은 <무릎팍 도사>에서 유승준 이야기를 했습니다. 깔끔한 이야기였습니다. 귀국해서 팬들에게 외면받으면 되지 입국금지까지 시키는 것은 유난을 떠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 발언으로 성시경은 모진 비난 속에 한동안을 지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의석씨가 쓴 <태환아, 너도 군대가>라는 글은 명료하지도 않았습니다. 전 그런 모호함이 더욱 큰 비난을 만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글 제목처럼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가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가 받은 병역특례 혜택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 오히려 운동선수가 더 잘 싸운다, 전장에서 승리한 이에게 주는 하사품 같다, 이승엽을 '병역브로커'라 칭하는 상황이다" 등. 글의 앞부분은 이런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완결되었다면 시기도 적절하고 논리적 일관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국제 경기에서 메달권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병무청장도 최근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에게 주어지는 병역면제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태환아, 너도 군대가>가 그런 내용이었다면 제목이 선정적이어서 그렇지, 사실 별 것 아닐 수 있었습니다. 박태환과 강의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조금 회자됐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의석씨가 주장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였지요? 저 역시 앞선 주장이었다면 동의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누더기 병역법에 대한 비판으로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병역특례를 꺼내는 것이 좋은 전략 일수는 있어도, 평화적 관점을 가진 이들은 다른 이에게 "군대 가라"고 제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석씨도 글에서 전쟁과 군대의 본질을 지적하셨습니다.

사실 의석씨의 핵심은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함께 갈 것과 국군의 날 반대 행사에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글 앞부분에서 형평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던 것과 상반됩니다. "군대를 없애기 위해 감옥에 가자"는 논리와 "누구나 이유 불문하고 군대에 가야 된다"는 논리는 서로 극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의석씨의 글은 그 극단의 논리가 같이 있습니다. 민감한 주제일수록 명확하고 차분한 글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이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한다는 것

전 박태환씨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하는 것은 좀 '난센스'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현실에서 병역거부는 감옥행을 의미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은 출소 이후에도 평생 전과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고, 그 가족들이 겪을 아픔은 참으로 처절합니다. 그랬기에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이들은 감옥행만은 막아야 한다고, 현역복무보다 길고 어려운 대체복무제라도 기꺼이 수행하겠다고 요구해 왔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은 가끔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의 문의를 받습니다. 그 분들은 오랜 시간 진지하게 스스로의 양심을 돌아보고, 병역거부를 택했을 때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문을 두드립니다. 일단 말리고 봅니다. 말리다 안 되면 차분하게 어떤 길이 앞에 있는가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도 선택한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고통은 온전히 그 개인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열하시는 그들의 부모님을 뵐 때마다 늘 가슴이 찢어집니다.

의석씨는 박태환씨에게" 군대 대신 감옥에 갈 100명을 모으고 있으며 그 중 한 명이 되라"고 했습니다. 전 의석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안은 한국사회에서는 아무리 짧아도 1년 6개월 이상의 감옥행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불이익을 견디면서도 감옥을 택할 만큼 지켜야 할 무언가가 상대방에게 있을 때에만 가능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전 아무리 기사를 검색해 봐도 박태환씨가 병역거부를 선택할 만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의석씨도 글에서도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서도 박태환씨가 병역거부를 택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벼운 제안, 그리고 이어지는 의석 씨의 이후 활동에 대한 설명. 혹시 박태환씨가 유명해서, 그 유명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였을까 의심해 보았습니다. 아니겠지, 그래도 어떤 이의 실명을 거론하며 자신의 활동에 동참을 호소하는 글인데, 그것도 감옥행을 동참하자는 내용인데.

원칙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등을 돌립니다

 군대 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강의석씨의 미니홈피
 군대 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강의석씨의 미니홈피
ⓒ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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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는 맞았습니다. 의석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태환씨가 국민 영웅이라서 그의 이름을 쓰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 그 글을 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의석씨는 성공했습니다. 의석씨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린 것 같습니다([직격인터뷰] '박태환 군대' 발언 강의석 만나보니).

하지만 의석씨, 의석씨는 군대를 없애는 운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운동이지요. 근대국민국가의 형성과 징병제는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군대를 없애는 운동은 근대국가의 근간에 대한 비판이며, 공포의 균형이라고 불리는 현실주의 안보관이 지배적인 지금 상화에서 비난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울수록 더욱 긴 호흡으로 목적과 수단의 일치를 추구하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의석씨는 조급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유명세에 기대어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홍보 효과는 있을 뿐,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의석씨는 글에서 박태환씨가 소중한 만큼 의석씨도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석씨의 홍보가 소중한 만큼 박태환씨 개인의 생각과 삶도 소중합니다. 같이 감옥에 가자고 한 이유가 그 사람이 유명해서라고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의석씨에게 등을 돌릴 것입니다. 많이 알려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고루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운동이라는 것. 사실 참 별 거 없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집행하지만, 우리는 그저 스스로의 진심을 보이며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조급해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군대를 없애는 운동을 하겠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군대 대신 감옥 갈 100명 모집? 매해 700명이 감옥으로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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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씨는 군대 폐지를 위해 군대 대신 감옥에 가는 이를 100명 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조금 갸우뚱했습니다. 이미 한국은 군대 대신 매년 700여 명의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00명이라는 숫자의 의미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숫자가 언론의 큰 주목을 끌 수는 있겠지만 한명이 감옥에 가든, 천명이 감옥에 가든 그것은 운동하는 이들에겐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들은 오태양 이후 지금까지 30명이 조금 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군대와 전쟁에 대한 반대의 신념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들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운동으로 집중했습니다.

한국의 여건이 너무 열악했고, 그러한 대체복무도입 운동이 한국사회의 군사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매개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체복무제 도입운동이 가진 한계 역시 명확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 그것조차 숨이 헐떡거릴 만큼 힘든 상황입니다.

의석씨는 활동 속에서는 앞선 병역거부자들의 오랜 노력과 경험과의 연관성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이벤트성 활동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5년이 넘게 병역거부와 관련한 모든 행사에 참여하면서 다큐를 찍고 있는 김환태 감독을 생각하면, 올해 중순에 시작해서 내년 초에 완성계획을 가지고 있는 의석씨가 찍고 있는 영화 역시 저의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합니다.

군대를 없애는 운동, 그 운동을 한국에서 한다는 것

아시다시피 일본은 평화헌법을 기초로 한 '군대 없는 국가'입니다. 물론 지금은 '눈 가리고 아웅'이 되었지만 암튼 원칙은 그렇습니다. 저는 지난 5월, 일본에서 그러한 평화헌법을 기리는 것을 주제로 한 '헌법9조 세계대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군대 없는 세상을 항하여'라는 세션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공군은 새이고, 우리의 육군은 개미이고, 우리의 해군은 물고기"라고 이야기하는 군대 없는 국가인 코스타리카의 법률가. 저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에서 군대폐지 국민투표를 해서 30% 찬성이 나온 것이 놀랍다, 어떤 논리로 운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군대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면 되지 않냐"라는 담담한 답변을 했던 스위스의 평화운동가.

놀랍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전 그 속에서 답답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명 한 명이 총을 들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알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부럽기도 했지만 쉽게 와 닫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석씨는 '군대는 없애야 합니다'라는 티를 입고 다니십니다. 멋지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앞선 코스타리카와 스웨덴 활동가들을 만났을 때와 같은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군대에 관한 평화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사회운동에는 진심도 중요하지만 전략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폐지합시다'라는 주장은 간명합니다. 하지만 계획도 힘도 없습니다. 국방예산을 낮추고, 사병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군대가 민간인들을 학살했던 역사를 발굴해서 알리고,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이 아닌 선택항이 있도록 조금씩 변화를 만드는 길. 어쩌면 그 길이 돌아가는 듯 보여도, 수년간 묵묵하게 노력해도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의석씨의 주장이 실현되는 가장 빠른 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차분하게, 과연 한국에서 전쟁과 폭력, 군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봤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현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강의석#박태환#병역거부#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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