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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으로서 문화재를 보호할 책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마을에 납골묘지가 들어오게 되면 자연경관 훼손은 물론 주민들이 정신적 피해가 가장 우려됩니다."

 

때묻지 않은 청정지역을 자랑하는 충남 논산시 벌곡 주민들은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 종교단체가 마을과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대규모 납골묘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단체가 납골묘지를 조성하려는 지역은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산 35-3번지 일대. 이 지역 내에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아들이자 충남도지정 문화재 자료 296호인 신독재 김집 선생의 묘소가 인접해 있다. 따라서 묘소 500m 내에서는 개발행위가 제한되어 있음에도 이 종교단체는 사업규모를 축소하면서까지 납골묘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최근에는 납골묘지가 들어서는 지역과 인접해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이장들이 주민들의 동의도 얻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단체와 양해증서를 체결해 주민들간 내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납골묘지 조성사업으로 인해 이를 추진하려는 종교단체측과 사업을 막으려는 마을 주민간에 갈등이 시작된 것은 지난 4월, 이 종교단체가 논산시에 납골묘지 조성사업에 대한 사전심사 청구를 하면서 부터다.

 

주민 동의 없이 양해증서 체결한 이장 5명 사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벌곡면 주민들은 곧바로 '납골묘지 반대 추진위원회(이하 반추위)'를 구성하여 반대투쟁에 들어갔고 지난 4월 28일부터는 집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주민 반발이 심화되던 5월 1일 논산시는 종교단체의 납골묘지 사전심사 청구에 대해 '조성지역에 문화재(신독재 김집 선생 묘원)가 등록되어 있다'는 사유로 허가 불가 판명을 내렸고 이에 주민들은 반추위를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는 종교단체측에서 사업 규모를 축소해 논산시에 사전심사 재청구를 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이에 주민들은 이장단 회의를 소집해 지난 6월 5일부터 납골묘지 설치에 관하여 적극 반대하기로 결의하고 힘든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반추위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납골묘지가 들어서는 지역과 인접하고 있어 직접 피해를 입어야 하는 양산 1,2리, 한삼천 1,2,3리의 5개 마을 이장들이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종교단체측과 양해증서를 체결하고 법원 공증까지 마친 것.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양해증서를 체결한 5개 마을 이장에 대해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5명의 이장은 이장직에서 사퇴했다.

 

"주민대표단, 5개 마을 이장이 임의로 만든 것"

 

이와 관련 벌곡면 바르게살기 위원장 전아무개(72)씨는 "납골묘지 반대투쟁을 하라고 이장에 뽑아줬더니 양해증서를 체결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이는 명백하게 벌곡을 팔아먹는 행위이며 주민들을 속이고 농락했으며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비분강개했다.

 

한편, 종교단체측과 양해증서를 체결해 이장직에서 사퇴한 한삼천리 정아무개(58) 이장은 기자와 전화를 통해 "납골묘지 허가는 논산시에서 내는 것인데 시에서 사업허가가 나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그 때를 대비해서 종교단체측에서 주민복지를 위해 10억원을 출연받기로 양해증서를 체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민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는데 반추위에서 주민대표단으로 우리를 선출해 주었기 때문에 이는 대표 자격을 위임받은 것이므로 주민 동의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 판단해 양해증서를 체결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씨의 말과는 달리 5개 마을 이장 사퇴 후 새로이 구성된 벌곡면 공동묘지 및 납골묘 반대추진위원회(위원장 정석기)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납골묘지가 들어서게 되면 가장 인접해 있어 직접적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양산 1리 김아무개 이장은 "지난 5월에 반추위가 해단식을 했는데 그들이 양해증서를 체결한 것은 6월 24일로, 있지도 않은 반추위에서 주민대표단을 선출해 줬다는 말은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양해증서 체결 당시)주민대표단은 5개 마을 이장이 임의로 만든 것"이라며 "10억원을 출연받기로 했다는데 어떤 명목으로든 10억원을 받게 되면 이를 빌미로 화장터 건립 등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후세들에게 욕먹을 짓은 하지 않을 것"라고 결의를 다졌다.

 

종교단체의 납골묘지 조성과 관련해 주민과 종교단체, 논산시의 입장을 정리해 봤다.

 

[주민 입장] 납골묘지 절대 반대, 후손들에게 욕먹을 짓 않겠다

 

 

벌곡 주민들이 종교단체의 납골묘지 조성사업을 반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산에 납골묘지를 조성하게 되면 자연경관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혐오시설이 들어섬으로써 인근 땅값이 폭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이곳에 들어서는 납골묘지가 국내 최대 규모로 조성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장의차가 수시로 마을을 통과해 지나다닐 것이 뻔하므로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은 정신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 또 한식, 추석 등 명절이 되면 한꺼번에 몰려드는 성묘객들로 인해 도로가 마비돼 교통문제도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새롭게 벌곡면 23개 마을 이장들로 구성된 '벌곡면 공동묘지 및 납골묘 반대추진위원회'는 물의를 빚고 이장직에서 사퇴한 5개 마을 이장에 대해 영구제명하기로 결정했으며, 앞으로 종교단체측과 양해증서 취하 등 납골묘지 조성 반대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벌곡면민들의 생활터전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종교단체 입장] 주민공청회 등 절차를 밟아 사업 진행해 나갈 계획

 

종교단체는 지난 4월 1차로 논산시 벌곡면 부지에 납골묘지 조성에 관한 사전심의를 청구했으나 논산시로부터 문화재로 인해 허가 불가 판명이 났다. 이후 종교단체측은 사업규모를 축소해 다시 논산시에 2차 사전심의 청구를 했고 오는 8월 4일 논산시가 통보하기로 되어 있는 심의결과를 기다리며 주민을 상대로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단체는 1차 심의 시 허가 불가 판명을 받은 원인이 사업지역과 인접해 있는 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인 것을 알고 현재 논산시에 문화재 해제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 관계자는 "납골묘지 사업은 계속 추진해 나갈 예정이며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며 "사업 추진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은 주민들과의 협의인데 이 문제도 주민공청회 등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고 납골묘지 조성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갈 뜻을 비쳤다.

 

[논산시 입장] 문화재 지정구역 해제 검토중, 500m 보호구역은 유효

 

논산시는 종교단체의 벌곡면 납골묘지 조성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 담당하고 있는 논산시청 경로복지과는 현재 종교단체가 제출한 납골묘지 조성관련 사전심의 청구와 관련해 각 부서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으며, 심의결과는 오는 8월 4일 종교단체측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종교단체가 요구한 신독재 김집 선생 묘소 문화재 해제 건의와 관련해 논산시청 문화재담당은 "김집 선생 묘소를 제외한 주변 지역에 대해 문화재 지정구역 해제 건의를 검토중에 있다"며 "문화재 지정구역이 해제되더라도 500m보호구역이라는 건 유효하기 때문에 개발행위 시에는 고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 위원들의 자문을 받아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벌곡#납골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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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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