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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책 표지,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도서출판 글을 읽다 펴냄
▲ 책 표지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책 표지,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도서출판 글을 읽다 펴냄
ⓒ 글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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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일본은 나라의 한 무덤, 곧 후지노키 고분을 발굴하다 성급히 덮는 일이 생겼다. 그들은 무덤을 폐쇄하는 까닭으로 '공기를 너무 쐬면 무덤이 파괴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수준 높은 발굴기술을 생각하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진짜 이유는 무덤에서 한국식 유물이 쏟아져 나오자 그것이 두려워 무덤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도서출판 '글을 읽다'가 최근 펴낸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김유경 편역)에서 지은이 존 카터 코벨이 밝힌 것이다. 코벨은 미국 태생의 미술사학자로 일본에서 오랫동안 불교미술을 연구한 뒤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에 있으면서 일본에 건네져서 한국 국적을 잃고 있던 한국미술의 존재를 밝혀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건 일본이 군국주의 나라가 되면서 ‘한국의 근원’이나 ‘한국의 영향’이란 말조차 쓰지 못하게 하고 그저 막연히 ‘아스카시대 일본 불교예술’로 표현한 것들이 대부분 한국 불교예술임을 코벨이 책에서 내내 밝혀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코벨은 지금 남아있는 600년경 일본 아스카 시대 유물 중 가장 귀한 '옥충주자(玉蟲廚子)'는 원래 백제 것이지만 일본 장인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내세우거나 '중국 수입품'이라고 얼버무린다고 폭로한다.

1985년 발굴하다 성급히 덮은 일본 나라의 후지노키 고분(왼쪽) , 일본 최고 박물관 중 하나인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이 개최한 “고려불화 특별전”의 포스터
▲ 후지노키 고분과 고려불화 특별전 포스터 1985년 발굴하다 성급히 덮은 일본 나라의 후지노키 고분(왼쪽) , 일본 최고 박물관 중 하나인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이 개최한 “고려불화 특별전”의 포스터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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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978년 일본 최고 박물관 중 하나인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이 개최한 '고려불화 특별전'은 그동안 '중국불화'라고 분류돼 있던 전시품들에 '고려불화'라고 꼬리표를 달았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두 파로 나뉘어 중국불화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파와 고려불화가 맞다는 파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일본의 옛 식민지 한국 화가들의 것임이 밝혀져도 계속 일본 문화재로 지정 보존될 것인지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그리스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건축 일부인 '엘진마블'이 영국 브리티시박물관에 소장돼 있음을 분개했고, 유네스코에서는 최근 그리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약탈당한 문화재의 본국반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수만의 한국 고미술품이 일본 내 박물관, 절 등에 흩어져 있는데도 그리스인들만큼 분개하는 기색이 없다고 코벨은 지적한다.

경남 창녕 출토 가야금관(왼쪽), 한국 호랑이가 그려진 일본 국보 옥충주자(오른쪽)
▲ 가야 금관과 옥충주자 경남 창녕 출토 가야금관(왼쪽), 한국 호랑이가 그려진 일본 국보 옥충주자(오른쪽)
ⓒ 도쿄국립박물관, 호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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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안마을을 습격해 수많은 물건을 훔쳐간 왜구들은 그럼으로써 13~14세기 한국미술사에 공헌한 결과를 낳았으며, 일본인들은 한국 물건을 잘 보존해온 일등 박물관 구실을 했다. 그것은 그리스 문화재를 약탈하여 보존한 영국인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두 경우가 다른 것은 여배우 출신의 메르쿨리 그리스 문화부장관은 영국에 자국 문화재의 반환을 강력히 요청했고, 한국은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코벨은 이 책을 통해 학자적 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코벨은 자기 이익과 관계없이 그 누가 뭐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외침을 하고 있다. 코벨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1996년 사망) 그의 연구는 한국 미술사에 커다란 외침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편역자와 편집자의 힘든 여정이 있었을 것이란 느낌이 짙게 묻어난다. 원고가 단행본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단편적인 글들을 모은 뒤 그것을 편집해서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호류지 몽전의 구세관음과 그 옆모습(왼쪽과 가운데), 교토 다이코쿠지 소장 고려불화 양유관세음도(오른쪽)
▲ 구세관음, 양유관세음도 호류지 몽전의 구세관음과 그 옆모습(왼쪽과 가운데), 교토 다이코쿠지 소장 고려불화 양유관세음도(오른쪽)
ⓒ 호류지,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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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자 김유경은 말한다.

"이 책은 코벨이 세상을 뜨기 전부터 계획했다. 원고 모으기만 몇 년, 모든 매체 것 찾아 읽고 분류한 것은 물론 현장에 몇 번씩 가봐야 하는 험난 길이었다. 사실 코벨의 첫 번역본이 나오고 10년 만에 이 책이 나왔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벨의 글이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전문적인 안목을 통해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을 한 대단한 작품이었기에 어려움에도 참으로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감상을 말하지 않고, 학문적 성과를 담아낸 코벨의 글을 번역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면서 김유경은 앞으로 남은 조선 미술을 분석한 코벨의 원고를 더 번역해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어려운 것은 끝났고 재미난 것만 있을 것이란다.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를 지내면서 코벨의 연재 담당 기자였던 것이 인연이었다고 말하는 김유경은 단순한 편역자의 처지라며 한사코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을 쓴 지은이 존 카터 코벨
▲ 코벨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을 쓴 지은이 존 카터 코벨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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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혹시 일반적인 번역서처럼 잘못된 낱말 선택과 문맥이 어색한 그런 글은 아닌지 또 식민사관에 근거한 미술사관이 개입돼 잇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괜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코벨의 철저한 학자적 양심과 편역자, 편집자의 노력이 어울려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에도 약간의 옥에 티는 있다. "그는 만년에 규수와 혼슈의 서부지역에서 우찌모리 영주의 전임자의 후견 아래 살았다"처럼 토씨 '~의'를 지나치게 쓰는 일본투의 문장이 가끔 눈에 띄었다. 또 가로 안에 써야 할 보충 설명을 바로 옆에 가로 없이 조금 작은 포인트 활자로 붙여 놓아 혼란스러웠던 점도 아쉽다.

그럼에도, 이 책은 큼직한 컬러사진을 충분히 집어넣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는 점과 분명한 학자적 외침을 전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미술사 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아무도 외치지 않았던 일본 국보급 유물들의 한국 국적 찾기를 해준 뜻깊은 책을, 민족적 자존심을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꼭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 코벨의 한국문화 2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옮김, 글을읽다(2008)


태그:#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존 카터 코벨, #김유, #글을 읽다, #일본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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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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