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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특수학교 고등부 학생들이 내건 수업 거부 현수막
 시각장애특수학교 고등부 학생들이 내건 수업 거부 현수막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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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11일) 새벽, 내가 가르치고 있는 시각장애특수학교의 고등부 아이들은 서울로 떠났습니다.

'안마라도 하고 싶다' '시각장애인에게 안마는 생존권' '생존권을 지켜달라' '희망없는 안마교육 수업거부 당연지사' 등의 피켓을 들고 이 곳 빛고을 광주의 새벽을 열면서 천리길 만리길이라도 갈 비장하고 의연한 표정들을 한 채 시각장애인의 안마업권수호궐기 현장인 종로 보신각 앞으로 떠났습니다.

2년 전 무자격 안마사들의 제소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하는 것은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눈 뻔히 뜬 비장애인들과 경쟁하면 유일한 생존권인 안마 업종에서 시각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은 3개월 동안 마포대교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처절한 몸부림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분신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밤새도록 일을 하고 집회 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시각장애인 한 명은 올해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수업 거부하고 서울로 떠난 이유

너무나 절박하고 당연한 시각장애인들의 호소에 따라 2006년 8월 29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은 안마사 규칙에서 시각장애인만으로 안마사를 제한한 의료 법안을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하게 해 위헌문제를 해소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2월 무자격 안마사들은 다시 의료법 자체가 국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해 6월 26일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모든 시각장애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쇠고기 재협상 문제로여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선 국민들보다도 더 절박한 심정들입니다. 시각장애특수학교의 학생들 또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6년 6월 8일 오전 서울 마포대교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헌법재판소의 시각장애인 안마사 자격 위헌 결정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06년 6월 8일 오전 서울 마포대교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헌법재판소의 시각장애인 안마사 자격 위헌 결정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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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시각장애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청각과 촉각 훈련으로 기초를 다집니다. 중도 실명인들도 손가락을 시멘트 바닥에 문지르고 칼로 굳은 살을 벗겨내며 점자를 한자 한자 읽고, 손가락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초중학부를 마치고 고등부에 입학하면 그 어려운 의료 교과목을 공부하기 위해 밤을 새웁니다. 정상적인 몸의 구조와 기능을 익히기 위하여 해부생리를 외우고, 안마를 위한 기타 자극 요법인 침과 뜸·전기치료·안마·마사지·지압 기술 등을 연마하며 수천 개의 혈 자리와 음양오행설을 공부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비정상적인 몸의 구조를 판단하는 병리학을 학습하고 질병을 판단하는 진단학을 배워 종합적인 환자들을 치료하는 이료 임상까지 철저히 학습하고 고학년 때에는 실제 환자들을 만나 실습 과정을 거쳐서 사회에 배출되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안마사 자격을 취득해도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안마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절망하는 현실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 안마 업종에서조차 밀려나면 갈 곳이 없다며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열심히 생업에 종사합니다.

안 그래도 안마밖에 할 수 없는데 이마저 못한다면...

안 그래도 사회 곳곳에서 이미 스포츠마사지·피부마사지·발 마사지·태국마사지 등이 성행해 시각장애 안마사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오로지 안마밖에 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의 목줄을 죄려 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안마 외 직업을 안겨주기 위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마지막 매달려 있는 생명의 동아줄을 끊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제자들이 3년 동안 손에 땀을 쥐며 공부해 온 안마를 사회에 나가 펴보지도 못할까봐 저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안마를 하기 위하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손님들은 시각장애 안마사를 찾을까요, 비장애 안마사를 찾을까요? 모든 것에서 '정상'인 것만을 우선시하는 외모 지상주의의 사회에서 누구를 찾을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입니다.

100m 달리기를 하는 출발선에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이 달리기를 하는 형상이며, 경량급과 헤비급의 권투 선수가 한 링에서 싸우는 꼴이라고 할까요? 승부는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 시각 장애인이 100년 전부터 안마는 시각장애인이 전문성을 가지고 꾸준히 해 왔노라고 강조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안마 인구는 거개가 '쭉쭉 빵빵'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진 비장애 안마사만을 요구할 것입니다. 

생명의 동아줄을 끊으려 하지 마세요!

혹 "그럼 너희도 안마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직업을 선택해 일하라"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보이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수만 직업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정말 정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사회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종류나 될는지요,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이틀 동안 교내에서 수업거부를 하다가 11일 아침 모두 서울로 거사를 치르러 올라 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2006년과 같이 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의 하나밖에 없는 유보직종인 안마사 직업을 그대로 지켜주기를,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전국의 시각장애 고등학생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로 떠난 것입니다.

그날 밤, 나는 전국 시각장애학생의 2/3가 참가한 그 집회소식이 나올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뉴스 채널을 이곳저곳으로 돌려봤습니다만 어느 뉴스도 시각장애인의 주장을 다룬 곳은 없었습니다. 새벽까지 계속된 촛불집회로 말미암아 온 국민의 시선이 그곳에 쏠려있었기 때문이지요.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을 접하며 나는 미국이라는 세계 강국 앞에서 힘을 갖추지 못한 약소한 나라의 한을 느낍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시각장애 학생들의 외침을 들으며 사회의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비장애인들의 무관심을 접할 때 더더욱 약자의 한을 느낍니다.

쇠고기 협상에서 느낀 약소국의 한, 아이들 보며 느낀 약자의 한

전국의 시각장애 고등부 학생들이 대략 400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 숫자는 대한민국 시각장애특수학교 13개교 학생들이 거의 다 참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2/3가 한 자리에 모였다면 온 나라의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까요? 아마 몇 박 며칠을 세워서 언론은 대서특필하며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구구절절이 파헤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각장애 우리 아이들은 주류가 아닌 사회의 약자일 뿐입니다. 우리 소수의 장애 약자들이 전부가 모인데도 촛불집회와 같은 거대한 집회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거대 집단의 모임에만 뉴스의 초점을 맞춘 언론마저 서운해집니다.

그 뉴스 끝자락의 몇 초만이라도 전국 시각장애인들이 '올인'한 서울 보신각 앞을 보여줬다면 정말 덜 서운할 겁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거대한 함성 속에 피맺혀 쓰러져가는 또 다른 약자의 함성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약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거대 강국 사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의 울림 또한 국제 사회에서 메아리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금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하는 것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 한 알이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와 대학생에게 나누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나누어 먹어야 잘 나누어 먹는 것일까요? 똑같이 반분하여 한 쪽씩 먹어야 할까요? 아마 작은 아이는 덜 먹고, 큰 아이는 조금 더 먹어야 작은 아이는 버리는 부분이 없고 큰 아이 또한 배불리 먹을 것입니다.

시각장애 특수학교 고등부 아이들이 개최한 서울 집회
 시각장애 특수학교 고등부 아이들이 개최한 서울 집회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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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란 상황에 따라 중심점 이동하는 것

평등이란 그런 개념이라고 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는 것이 평등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그 중심점을 이동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 젊은이가 늙은이의 짐 보따리를 몽땅 지고도 다시 손을 이끌고 가는 모습,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우리 오빠와 달리기를 하면 "너 먼저 저기까지 달려라, 그런 다음 내가 달릴게" 하던 모습, 쓰러져가는 난파선에서 어린아이를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는 모습들에서 저는 진정한 평등을 봅니다.

감나무에 달린 먹음직한 홍시를 까치밥이라고 몇 알은 꼬옥 남겨두셨던 옛 우리네 조상님들의 마음은 또 어떻습니까? 미물에게까지 생존하기 위한 방도를 남겨주셨는데, 하물며 인간인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침해하려는 비장애인들은 평등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시각장애 아이들에게 무한정한 직업선택의 자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볼 수 있는 비장애인들에게 직업은 노력만 하면 수만 가지가 거의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운명적으로 한계 지워진 시각장애인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바랍니다.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꼬옥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각장애 아이들은 그들의 생존권을 확보할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고 또 지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은경 기자는 시각장애특수학교 교사입니다.



태그:#안마사, #광주세광학교, #시각장애특수학교,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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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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