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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카네이션이 가득입니다.
 거리마다 카네이션이 가득입니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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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하품을 합니다. 하품 때문인지 눈에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어'라고 동생이 말합니다. 진료실 앞 작은 전광판에는 다음 대기자로 동생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장해서 그렇지" 하고 말해줍니다. 사람이 엄청 긴장을 하게 되면,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고 그래서 하품을 하게 된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 눈에 고인 눈물을 보니 지금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암 재발한 동생 "이 약마저도 안 들면..."

올 1월 검사에서 암이 재발하고 동생은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3주에 하루씩,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2번 치료를 받고 CT촬영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힘들게 치료를 받았지만, 암세포는 훨씬 많이 커져 있었습니다. 그 날은 결과를 보러 동생 혼자 병원을 찾았었는데, 그 때 심정이 어떠했을지 저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항암제를 바꾸자고 말씀하셨습니다. 3주에 하루씩이었던 것을 2주마다 3일씩, 10번 정도 맞자고 하셨습니다. 10번 이상은 환자가 힘들어서 맞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만약 바꾼 약마저도 효과가 없으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말은, 병원에선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이야기……. 동생은 부모님께 이 말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고 해서, 동생 병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 가슴에 더 큰 상처만 걱정만 안겨드리게 되니 말입니다.

병이 재발하고 동생은 종종, 자기 소원은 하루라도 엄마·아빠보다 오래 사는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엄마 가슴에 큰 못을 박을 수 없다고. 자기가 만약 암으로 죽게 된다면, 엄마도 그 충격으로 암에 걸릴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바꾼 약으로 항암치료를 4차까지 맞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에 다시 CT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오늘 결과를 보러 갑니다. 병실에 자리가 있으면 다시  입원도 해야 하고요.

병원을 가는 길, 꽃집뿐만 아니라 편의점까지 카네이션 꽃이 가득입니다.

아픈 딸에게 용돈 주는 엄마

30년 전의 부모님. 아버지는 벌써 환갑이 지났습니다.
 30년 전의 부모님. 아버지는 벌써 환갑이 지났습니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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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아프고 나서, 동생은 부모님께 가끔씩 용돈을 받습니다. 동생 나이 27살 때부터요.

추석이나 설날에 집에 가면, 엄마는 동생에게 돈을 건네면서, "지금 용돈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용돈을 주고 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명절이라고 현금이 든 봉투를 건네드릴텐데, 엄마는 오히려 돈봉투를 아픈 딸에게 건넵니다.

간호사가 동생 이름을 부릅니다. 동생과 같이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의사선생님은 옆 진료실에서 상담 중이시고 간호사들이 동생의 진료 차트를 컴퓨터에 띄우고 있습니다. 몇몇 전문 영어 단어들이 보이고, 나머지는 한글로 적혀 있습니다. 동생이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의사선생님께서 CT 판독 결과를  자세히 읽고, 지난 CT촬용과 이번 CT촬영 한 것을 꼼꼼히 비교해서 보십니다. 그리고는 "많이 좋아졌네요" 하고 말씀하십니다.

동생이 "얼마나요?"라고 묻자 모니터를 확대해가며 지난번 암세포 크기와 치료 후 암세포 크기를 비교해 보여주십니다.  "지난번엔 이만했는데, 지금은 아주 많이 작아졌죠? 이렇게 많이 줄어들기도 쉽지 않은데…"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님보다 더 오래 사는 게, 가장 큰 어버이날 선물

5차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다시 접수실에 갑니다. 번호표를 뽑자마자 동생이 전화기를 꺼냅니다. "집에 전화해야지, 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줘야지" 동생 목소리가 들떠 있습니다.

이번 어버이날, 남들은 1만원이 훌쩍 넘는 카네이션 꽃을 사서 부모님께 전해드리겠죠.  아니면, 다 함께 외식을 할지도 모르고, 좋은 선물을 안겨드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모님께 그 어떤 카네이션보다, 값비싼 선물보다 더 소중한 선물을 드렸습니다. 동생의 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 지금 그것만큼 큰 선물이 또 있을까요. 긴 한숨으로 가득 찼을지도 모를 올해 어버이날이, 안도의 한숨으로, 다시 또 희망으로 채워졌습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나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하루라도 부모님보다 더 오래 사는 거라고, 동생과  또다시 이야기합니다.


태그:#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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