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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로댕미술관에서 사진작가 김아타 '온에어(On-Air)' 개인전이 5월 25일까지 열린다.
 
그는 뉴욕에서 2000년 이후 주목받는 세계적 사진작가로 우뚝 섰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정신병자'와 '인간문화재', '해체'와 '뮤지엄' 시리즈 등 존재에 대한 물음을 화두로 작업해왔다. 지난 2006년에는 뉴욕국제사진센터(ICP)에서 아시아작가 중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 극찬을 받았다.
 
위 작품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것으로 13명의 모델을 번갈아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65컷을 찍은 것으로 결국 예수와 유다가 서로 오버랩 되기도 하는데 이는 종교적 도그마를 깨는 것으로 그의 도발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이렇게 기존의 틀과 체제와 관념을 깨는 데서 시작된다. 그의 해체정신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일찍부터 사진이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거부했다. 오히려 사진을 통해 다양한 담론과 철학적 추론을 유발시키려 애써왔다.
 
인도의 만상을 무아(無我)의 경지로 압축한 '인다라'
 
 
그는 자신의 이름대로 나와 너(我他)의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대화가 자신의 직업이라 할 정도로 소통에 관심이 많다. 그가 말하는 대화의 폭은 시공간을 넘어 주변의 사물과 자연, 인간과 우주를 다 포함한다.
 
재작년에는 그런 소통의 통로를 열기위해 인도에 다녀왔다. 인도에 갔다 오면 사람이 달라진다지만 평생 존재를 화두로 고민한 그에게 인도는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아니 바로 그런 결과물을 이번 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인다라' 시리즈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인도에서 물 만나듯 손, 어깨가 부서지도록 하루에도 천 컷도 찍었다. 위 작품은 그렇게 찍은 이미지를 천 컷, 삼천 컷, 만 컷 중첩해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결국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단색화처럼 허연 먼지 같은 것만 남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관객들은 알 수 없는 이 작품의 막강한 위력에 휘말려 그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사물을 재현하는 사진을 찍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사진을 찍어 대상을 사라지게 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역설은 자아의 정점이라 할 무아(無我)의 경지와도 통한다 할 수 있다. 
 
티베트 스님들이 만다라를 완성한 후엔 그냥 허물어 버리듯 그는 사진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나선 그걸 다 허무는 격이다. 만다라가 제목의 합성어로 쓰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철학인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를 거꾸로 말하면 사라지는 것에서 존재를 찾는다는 뜻인데 김아타는 이런 철학을 사진에 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은 아직도 여러 모로 시도하고 탐험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신대륙이다.
 
미국인들에게 정체성을 묻다
 
 
이미지중첩과 함께 장기노출은 김아타의 또 하나의 주특기다. 그 중에서 8시간짜리 노출사진이 상당히 많다. 그 대표작이 바로 '타임스퀘어'다. 그런데 이 사진이 역대 한국작가사진 중 최고가격인 21만 달러(약 2억 원)에 팔려나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사진도 보면 움직이는 건 점이 되어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는 것만 남는다. 과속의 시대에 정지의 미학이라니 어처구니없다. 속도를 문명발전의 원동력으로 믿는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셈이다. 이에 대해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가 모 일간지에 쓴 그의 뉴욕사진집 서평은 실로 날카롭다.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바쁘고 빠른 것들이 모여 있는 현대문명의 심장 뉴욕이 김아타의 카메라를 통과하면, 저승사자의 도시 같은 고요와 정적만이 남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까요. 자동차들도, 사람들도, 나부끼는 성조기도 사라졌습니다. 움직였던 것은 꼭 그 속도만큼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아타가 뉴욕에서 주목받은 것은 9·11테러 이후에 삶의 공허함과 정체성의 위기에 놓인 미국인에게 한국의 선불교나 마음의 철학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텅 빈 충만의 미학을 제시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고
 
 
위 사진도 얼핏 보면 그냥 축구경기장을 찍은 것 같다. 그러나 실은 2002년에 열린 한일축구 경기장면을 2시간 장기노출로 찍은 것이다. 그렇다면 심장이 멎을 듯 종횡무진 운동장을 누빈 선수들은 다 어디 간 것인가. 여기서도 '타임스퀘어'처럼 정지된 것만 사진으로 남고 선수들은 장기노출 속에 사라져버린다.
 
이런 사진을 보니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한 생텍쥐페리의 말이 생각난다. 정말 우린 헛 것을 보고 사는지 모른다. 공기처럼 이 세상에 분명히 있는 것도 겉만 보고 속은 못 보는 것 아닌가. 하여간 이런 작품은 우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몸의 소통, 현대인의 또 다른 화두
 
 
'리듬 앤드 블루스'는 그의 섹스 연작 중 하나로 해체 시리즈 등에서 이미 오랫동안 누드작업을 해온 그가 아니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랑을 갈망하는 두 남녀의 열렬한 몸짓이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또한 생동감 넘치는 다이내믹한 리듬감은 시각이미지 창출자로서 그 몫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남녀결합을 시도하는 이런 신비하고 황홀한 이미지는 성(性)과 속(俗), 존재와 부재를 떠나 어떤 영감과 환영(幻影)을 떠올리게 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지는 이런 순간에 누가 누구를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미워하겠는가. 오직 평화와 고요만이 넘칠 뿐이다.
 
편견 버리기와 인류보편주의
 
 
이번엔 인물사진을 보자. '세계인'은 3년에 걸쳐 전 세계 남자 중 무작위로 100명을 찍어 중첩한 사진이고 '티베트인'은 티베트여성 중 100명을 찍어 중첩한 사진이다.
 
그런데 전 세계의 남성을 합친 '세계인'은 어쩌면 저리도 선량해 보이는지, 다르면서도 같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또한 '티베트인'에는 티베트 여성의 햇볕에 그을린 소탈한 모습이 고스란히 용해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은 다르지만 또한 닮았다는 점을 발견한다. 
 
세계대전과 지역분쟁은 왜 일어나는가? 그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진은 종교, 인종, 이념을 떠나 인간이 편견만 버리고 서로 다른 것도 받아들이고 비슷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인류보편주의로 나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사라지는 것에서 존재를 찾는 역설의 미학
 
 
얼음작업은 김아타의 비중 높은 프로젝트다. 여기선 사회주의의 대표적 아이콘인 마오쩌둥이 등장한다. 이 지도자의 위력과 카리스마가 몸서리치게 전해진다. 얼음이 녹기 전의 모습, 중간 정도 녹은 모습, 거의 다 녹은 모습 등 25시간 동안 여러 컷으로 잡았다. 이는 사라지는 것에서 존재를 찾는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얼음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모양이다. 돈이 억 단위가 드는 만리장성 얼음작업도 이미 기획되고 있다. 얼음이 녹는 걸 통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모습은 사라지나 그 정신은 남는다는 부재와 존재의 모순도 보여준다.
 
정체성 갖추면 세계도 내게 끌려와
 
 
하여간 김아타는 후배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사진에서 전공이나 기법보다 삶에 대한 열정과 존재에 대한 탐구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여행과 독서와 사색을 통해 시적 통찰과 철학적 사고와 종교적 명상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또한 보다 멀리 길게 보는 안목도 주문한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깨닫고 동시에 그만큼 인정받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남과도 상호의존적 주체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고유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함을 일러준다.
 
그런 면에서 김아타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오랜 숙고 끝에 터득한 뼈 있는 말이다.
 
"세계시장은 냉정하지만 내가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세계는 나에게 끌려온다. 그래서 나와 당신 우리 모든 사람은 바로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작가 김아타는 누구인가
김아타(金我他, Atta Kim 1956) 창원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나 공학보단 철학, 문학에 더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 사진으로 진로를 바꾸다. '아타'는 '나(我)와 남(他)이 모두 하나'라는 물아일체 사상에 착안해 예명이다.
 

그는 '철학적 사고가 극히 참신한 작가라는 <뉴욕타임스>의 극찬을 받았다'. '자아와 존재'에 대한 관심을 담은 '세계-내-존재', 관념으로부터의 해체를 담은 '해체'를 거쳐 박물관 보호유리 안에 성과 폭력, 이데올로기 등을 담은 '뮤지엄' 프로젝트 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뉴욕, 베이징, 상하이 등을 오가며 시간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존재하는 것에 대한 정신을 담은 '온에어(On-Air)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다.

 

2007년 빌 게이츠 작품소장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아시아작가 중 최초로 개인전. 2004년 뉴욕 어패처(Aperture)에서 한국작가 최초의 사진집발간. 2003년 이명동사진상수상. 2002년 제25회 상파울로비엔날레한국관 대표작가. 2002년 하남 국제 포토페스티벌 국제사진가상수상. 2002년 런던 파이돈출판사 선정한 세계 100대사진가. 1997년 '사진예술'사 올해의 작가상수상

덧붙이는 글 | 로댕미술관 http://rodin.samsungfoundation.org 02)2259-7781
화요일~일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목요일은 갤러리음악회가 있고 저녁9시까지 
입장요금: 일반 3000원 청소년 2000원 전시설명: 평일 2회(오후2시, 4시) 주말 3회(오전11시, 오후 2시, 4시) 


태그:#김아타, #로댕미술관, #온에어프로젝트, #인다라시리즈, #타임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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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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