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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단결'을 말한다, 하지만 '기본'조차 잊은 이기심

 

초등학교 교육과정부터 돌아보도록 합시다. 아무리 개정됐다고는 하나 '국기에 대한 맹세'는 여전히 폭력적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어릴 때부터, 나라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부분이 그래도 사라졌으니 말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을 암묵적으로 강조하는 교육,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외치는 '단일민족'이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는 일찍부터 '단결'이나 '하나 된 우리'에 대한 자긍심을 키웁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 전체적으로 병적으로 그 자긍심을 강요받을 때도 있습니다.

 

2002 월드컵에서의 붉은 행렬도, 어떻게 보면 '하나 된 우리'나 '단결'에 대한 강박관념의 집단적 발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없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도 외쳤던 '단결', 과연 무엇으로 승화됐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분들 있습니까? 드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명박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한마디로, 입으로는 '단결'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완벽한 이율배반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당선인의 그 화려한 불법비리 의혹을 눈감아주면서, 공동체가 견지해야 할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을 스스로 해체시킨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외치는 '단결'이 사회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될 '법'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인들은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스스로 해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등의 세금이 없어진다거나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이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세속적인 욕망이 있는 만큼 이기심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이기심과 사회 정의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명박씨가 대통령 당선은 그야말로 "비리 좀 저지르고 탈세나 탈법 좀 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되고 우리로 하여금 세금 덜 내게 하면서 땅 투기나 잘하게 해주면 된다"는 균형을 상실한 이기심을 잘 드러내는 예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단결'이라는 단어에 갖는 집착은 이렇듯 사회 정의와의 적절한 조화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이기심에 대한 무의식적인 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로부터 세뇌돼, 입으로는 '단결'은 외우지만 정말 필요한 단결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이러니입니다. '단일민족'이나 '단결'에 대한 집착이 그리도 심한 한국 사람들이 최소한의 사회 정의조차 무시한 투표 행위로 불법 비리의혹에 휩싸인 대통령을 선출했으니 말입니다.

 

건강보험 민영화, 사회 정의 무시한 투표 행위의 결과물

 

이명박 당선인이 주장했고 곧 시도될 것으로 보이는 '건강보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적용 환자의 진료를 이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 완화 및 폐지'가 곧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인수위 관계자의 발언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적용 환자의 진료를 이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 '당연지정제'를 완화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병 관련 정보를 민간보험사와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좀 풀어보도록 합시다.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병원이 저렴한 국가 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되며, '비싼 보험' 가입자들이 우대받는 세상이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질병 관련 정보가 민간보험사에도 흘러들어가면서, 비싼 의료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해도 민간보험사의 기준에 따라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진료비나 치료비를 청구받을 것입니다. 마이클 무어의 고발 다큐멘터리 <시코>의 이야기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가끔씩 언급하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의료체계는 부유층들에게는 그 이상 편할 수가 없는 제도일 것입니다.

 

민영의료보험 상품이 난립하고, '비싼 보험'의 가입자들이 우대받는 의료체계가 정착될 경우, 현재도 우리나라에 거점을 확보해두려는 외국계 병원들이 그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벌 회장들이나 정치인들이 휠체어 타고 번거롭게 외국에 가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서민들은 돈 없으면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수도 있는 의료체계'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발등 찍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명박 당선인이 외친 '경제 살리기'와 '규제 완화', 그리고 '실용주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제대로 판단해보지 않고는, 그저 '노무현이 싫다'는 이유와 '경제만 살리면 되지 뭐 어떠냐'에 매몰됐다가 일격을 당하게 생긴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단결'의 의미를 제대로 고찰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 통합과 질서 회복이 무엇인지 고심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이런 제 발등 찍기는 찾아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단력조차 정립돼 있지 않았던 이기심이 이런 엄청난 제 발등 찍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서러울 때 중 하나는 '아플 때'입니다. 특히 '치료비가 없어서 아파도 손을 못 쓸 때'는 서러움을 넘어 비참함에 휩싸일 것입니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서 '비싼 보험' 가입자들을 위한 의료체계가 정착되면, 그 비참한 기분을 느낄 서민들은 더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제아무리 이명박 당선인에게 투표했으면 뭘 합니까? 보험료와 치료비를 납부할 능력이 없으면 소용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투표했는데 왜 나에게 이러느냐"고 병원 측에 항의라도 해보면, 과연 통할 수 있을까요? 이명박 당선인에게 투표한 게 무슨 벼슬거리나 되겠습니까? 웃음거리나 안 되면 다행일 것입니다.

 

건강보험료 1만3000원 납부한 이명박 당선인의 아이러니

 

건강보험이 이렇듯 논란이 된 이유는, 건강보험 전체의 적자 때문입니다. 2007년에 2847억원의 적자를 냈으며, 2008년에도 2578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는데, 연구결과가 어이없을 정도로 '뻔한 상식'이라 황당합니다.

 

"민영의료보험 가입자들이 오히려 병원에 덜 간다."

 

보건복지부는 '급여항목의 본인 부담금'을 민영의료보험이 보상해주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고쳐주려 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보험회사들이 민영의료보험 진출을 비교적 꺼린 편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대단히 상식적인 결함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가까운 동네 병원 한번 가보세요. 진찰받으러 주로 오는 환자들의 계층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어린이, 주부 계층입니다.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대체로 직장인인 성인 남성에 비해 병원에 진찰받을 시간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비교적 경제적 능력을 갖춘) 민영의료보험 가입자들이 오히려 병원에 덜 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걸 연구결과라고 제출한 한국개발연구원이나, 이것을 빌미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민영의료보험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복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고령화 진전으로 건강보험 적자가 해마다 늘어나기 때문에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표현도 어떻게 보면 교활한 표현입니다.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연지정제를 폐지해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병원을 자주 가는 현상을 방지하겠다."

 

이것 아닙니까? 대통령직 인수위는 그러면서 "고급 서비스 병원이 생겨 환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건강보험은 지출이 줄어 재정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쉽게 풀어서 표현해야 합니다.

 

"고급 서비스 병원에 갈 능력이 되는 환자나 노인들은 경제적 능력으로 알아서 해결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환자나 노인들은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하도록 규제해 지출을 줄여 재정을 안정시키겠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발상을 전환시켜 판단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건강보험의 적자 원인입니다. 수백억원 대의 부동산 부자 이명박 당선인이 건강보험료를 얼마를 납부했었죠? 예, 1만3000원입니다. 이런 현상도 적자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건강보험료로 1만3000원을 납부한 수백억대의 부동산 자산가 대통령이 서민들의 병원 출입을 규제하는 제도를 만든다'는 역사상 보기 드문 사례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명박'은 우리가 당선시켰다, 돈 없어서 병원 못가도 원망 말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명박 당선인은 입으로는 '단결'이나 '단일민족'을 말하되 실상은 최소한의 배려조차 잊어버린 우리의 이기심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을 꾸준히 비판하고 견제하려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의 지지자들이 말하듯 단지 그들이 '노빠'라서 감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초에는 지지율이 80%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갖은 구설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대운하 논란'이나 '친부유층 정책'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50%대의 지지율이 결과로 드러나는 여론조사도 있다고 합니다. 뭔가에 씌운듯했던 이기심의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지, 서서히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앞으로 5년은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전문용어로 '자업자득'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돈 없어서 병원에 못가도 이명박 당선인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돼도 이명박 당선인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한반도 대운하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 해도 이명박 당선인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재벌이 은행을 지배해 까다로운 대출 기준과 높은 대출 이자에 시달려도 이명박 당선인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일까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다수의 한국인들이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단결'이나 '단일민족'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회 통합'이나 '사회 정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들이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아픈데 병원 가서 치료받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다면,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정신으로 무장해 '부자' 되시길 바랍니다. 그게 유일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인수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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