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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교육법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 행복하게 공부하는 아이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교육법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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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인과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두 아이를 두었고 아이들 교육에 반듯한 주관을 가진, 요즘 보기 드문 엄마다. 통화를 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관한 신념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의외였다.

여태까지는 자기 신념이 옳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많이 흔들린다고. 더구나 '자사고(자립형 사립고등학교) 100개 발언' 이후 많은 엄마들이 벌벌 떨고 있다고 했다.

전화로는 안 되겠구나 싶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집은 수도권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아파트 밀집 지역. 그리고 그 집 아이들은 아빠 직장 관계로 3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니다 제주도를 끝으로 1년 전에야 겨우 이 지역에 정착해 학교에 다니고 있다.

교육적 신념을 가진 엄마, 왜 흔들리나

내가 굳이 승민(큰아이 이름)이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한 이유가 있었다. 자사고가 100개 만들어지면 자사고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인문계고를 가야 하는데, 자사고에 가지 못해 인문계에 간 아이들은 예전 인문계 갈 성적이 안 되어 실업계로 간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내 아이가 그렇게 된다면 내 아이 앞날은 어떻게 되느냐고 걱정이 태산. 엄마들이 모두 초긴장 상태라는 것이었다.

난 아이가 없어서 여태 강 건너 불 보듯 했는데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다. 승민이 엄마가 주관을 갖고 밀어붙였던 아이 교육법도 알고 싶고 요즘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교육법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듣고 싶기도 했다.

5학년 승민이는 제 방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승민이는 엄마가 닦달을 하지 않는 편이라 아주 행복하게 공부하는 아이다. 공부에 대한 이 엄마의 주관이란, 다른 게 아니다. 내 아이가 공부에 억눌리지 않고 남에게 비교당하지 않고 즐겁게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엄마의 교육관이 주효했는지, 아이는 조금씩 성적이 올랐고 이번에는 학교에서 세 명 받는 영재 교육기관의 추천서를 받았단다. 영재 교육기관에 추천서를 받고 시험을 본 건 이번이 세 번째. 모두 1차만 붙고 2차는 떨어졌는데, 승민이 엄마는 이젠 그만 봐야 할까 보다고 한숨을 쉬었다. 매번 실패하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원의 1차 시험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시험은 학문적성 시험인데, 이것은 다름 아닌 학과 수준을 보는 학력시험. 그러니까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뛰어난 영재보다는 선행학습이나 영재 교육기관을 들어가려고 준비(학원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유리하단다.

그 때문에 영재교육을 걱정하는 이들이 이러다간 영재는 놓치고 학원에서 미리 학습한 아이들만 뽑게 된다고 교육청 영재원을 만들었단다. 그러나 거기도 선발 방식이 같아 준비한 아이들만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승민이는 과학을 좋아해서 특별하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 자꾸 떨어지니까 자기가 너무 태만했나 싶어 갈등이 생긴다고 했다.

선행 학습 대신 선택한 집중력 수업

아이가 학원 차를 타고 있다. 거리마다 넘쳐 나는 게 학원차다.
 아이가 학원 차를 타고 있다. 거리마다 넘쳐 나는 게 학원차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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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보러 가서 이야기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요즘 엄마들 대단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있자면 이게 아닌가 싶고 이제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과연 어떤 게 옳은지는 모르지만, 승민 엄마의 교육법을 알고 싶어 그동안 아이에게 학습한 내용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혹시 특별한 교육법이라도 있나 싶었다.

승민 엄마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시키면서 아이의 관심사를 들어주고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쪽이었다고 한다. 보통 학원은 2∼3학년 앞서 가는데 그렇게 되면 학교와 학원의 진도가 달라 아이들이 양쪽 다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고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듣기, 시간 지키기, 자기가 해야 할 일 알아서 하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대신에 방학을 이용해서 다가올 학기 공부는 시켰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다음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미리 배운 것을 심화하는 단계로 들어가 많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좀 산만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일주일에 세 번 집중력 수업을 듣게했다. 선생님이 학교수업 외의 다른 학과 수업은 다 쉬고 오로지 그 수업에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수업은 속독·논술·안구 훈련 등이었는데, 칼럼 같은 글을 선택해 어려운 단어에 밑줄을 긋고 직접 찾아서 공부하기·문단 나누기·내용요약·제목 붙이기 등을 스스로 하도록 훈련했다고 한다.

한 달에 16만원이었는데 꽤 괜찮은 프로그램이어서 1년 6개월 과정을 다 마쳤더니 집중력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책 읽는 습관이 들어서 좋았다고 한다. 그냥 건성으로 읽는 게 아니라 제대로 생각을 하면서 읽는 거란다. 요즘 부모들이 무턱대고 책 책 하지만 무조건 읽어서는 안 되고 책을 읽고 나서 생각도 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면서 책의 내용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 후 아이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가 읽지 않고 못 배길 때까지 미루다가 책을 사주었고 아이는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단다. 이때다 싶어 아예 전집(과학·역사·위인전·백과사전)을 샀고 그중에 동물도감은 며칠씩 학교에 들고 다니면서 완전 독파를 하더란다.

승민 엄마는 절대 아이의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못한다고 질책하거나 비교하지 않았는데 80∼90점 사이면 만족한다고 했다. 한 번은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가 세 개나 틀렸다고 야단을 치길래 '그럼 80점 맞은 우리 아인 어쩌냐'고 '우리 아이 있는데선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며 웃었다.

승민 엄마는 초등학교 때는 배운 거에서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중요하지 점수는 중요하지 않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뒷심인데 뒷심은 곧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의지란다. 엄마는 아이가 그 의지를 불태우도록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역할이란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승민이가 학원간다고 제 방에서 나왔다. 나는 승민이를 따라가 보았다. 승민이에게 공부가 재미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과학이 재밌고 그중에서도 생물이 진짜 재미있어서 학원이나 학교 수업 모두가 좋다고 했다. 지금 가면 몇 명이 공부하냐고 물었더니 넷이 한단다. 모두 너처럼 재밌대냐고 물으니 아마 그럴 거란다.

집으로 돌아와 지금 간 학원의 수업형태를 물었다. 수학과 과학 영재 수업인데, 여기도 레벨 테스트를 해서 합격점이 나와야 들어갈 수 있단다. 승민이는 레벨이 높게 나와 선생님이 정말 영재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집중력 수업 이후 정말 학원엔 보내지 않았는데.

요즘은 엄마들에게는 자사고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요즘은 엄마들에게는 자사고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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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엄마들

영재교육원은 4학년부터 들어가게 되어 있어 빠른 애들은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준비를 시킨다는데 승민이도 혹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사교육비가 얼마나 드는지 물었더니 승민이만 60만원 정도 든단다. 그러니까 두 아이 합하면 백만원을 훌쩍 넘는 셈이고 다른 집보다 많지 않다는데도 평범한 월급쟁이에게는 꽤 부담되는 액수였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아이 엄마가 놀러 왔다. 저학년이나 고학년이나 곧 닥칠 일이어서 그 엄마도 한몫 거들었다. 그 엄마는 한 술 더 떠서 승민이는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영재교육원'이 아니면 '자사고'라도 보낸다고 부추겼다.

너무 일찍 하는 건 반대지만 아이가 영리하다면 3학년부터는 준비를 해서 영재교육원 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고. 아마도 많은 엄마들의 의견이 그러한 듯 했고 사교육비 들이고 아이를 혹사해서라도 '자사고'는 기필코 들여보내야 한다는 말 같았다.

그 엄마는 자신이 보기에 엄마들은 세 부류라고 했다. 첫 번째는 무조건 앞서 가는 엄마, 두 번째는 아이의 입장에서 주관을 갖고 가는 엄마, 그리고 세 번째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남 하는 것 섭렵하려 드는 엄마. 물론 두 번째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첫 번째 유형이란다. 더구나 '자사고 100개 발언' 이후 더 긴장하는 것 같다고.

고층 빌딩마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보이는 학원 간판들
 고층 빌딩마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보이는 학원 간판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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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엄마들은 오직 내 아이가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가는지, 또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돈을 잘 버는지, 어떻게 해야 윤택하게 잘 누리고 사는지만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두 엄마에게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말이 나왔다.

"그래서 요즘 유명(?) 직업이 이상한 직업으로 전락했잖아! 자기 직업에 대한 소신도 없이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선택해서는 무조건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고."

요즘 엄마들 특징이 절대 아이가 빈둥거리는 모습을 못 본단다. 승민이 엄마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놀고만 있으면 닦달을 하고 싶단다. 하지만 억지로 참고 놔두면 얼마 안 가 '공부해야지'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영재기관 추천서를 가져와 승민이가 자기 소개서를 쓸 때 못 미더워 펜을 들고 끼어들었다가 아들한테 망신을 당했단다. 승민이 엄마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지면서, "엄마! 이건 내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더란다. 머쓱해진 엄마는 그대로 물러났고 나중에 쓴 걸 보니 곧잘 썼더란다.

옛날부터 자식 키우는 것을 도 닦는 거라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옛 이야기가 돼 버린 거 같다. '자사고' 보내려면 도고 뭐고 끌고라도 가야하니 말이다. 엄마들이 더 바빠졌다. 줄 세우기에서 내 아이가 빠지면 큰일 날 테니 아이를 들들 볶아서라도 등수 안에 집어넣어야 하는 게 엄마의 임무가 되어버렸다. 느리게 가는 거, 기다려 주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서 자립형 사립고 보내는 게 최대 목표일 뿐!

그래 그런지 돌아오는 길, 고층 빌딩에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주렁주렁 매달린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밥은 못 먹어도 학원은 보내야 하니 어째 사교육 담당하는 분들만 살 판난 거 아닌지 모르겠다.


태그:#자율형 사립고, #영재 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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