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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월에 평양 공연을 추진 중입니다. 북한사람들이 장애가 심한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통일을 위해 ‘다시 만납시다’ ‘반갑습니다’ ‘임진강’ ‘여성이 꽃이라네’ 등 북한노래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희아(23)씨가 앞으로는 ‘통일의 꽃’으로 불러달라며 환하게 웃는다.

 

무릎 아래가 없고 손가락이 네 개뿐인 중증장애를 안고 반도의 딸로 태어난 그가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커트머리에 앙증맞은 핀을 꽂고 ‘희망’을 연주하던 ‘기적의 소녀’는 이제 옛말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이희아씨는 통일과 장애인인권을 위해 적극 힘쓰고,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선거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서는 ‘행동하는 사회인’이 됐다. 그런 그를 지난 6일 ITF 태권도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1차로 250대 휠체어 전달, 십시일반 모금 계속

 

이희아씨는 ‘북한장애인 돕기 휠체어 1004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북한 장애인돕기 자선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공연수익금과 기부금으로 휠체어 250대를 구입해 1차로 북한에 전달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십시일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한번 보여주는 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1004대를 보낸다는 계획이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북한 장애우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식량난도 심하고 어렵다고 하는데 장애인들은 더욱 힘들 것입니다. 북한 장애우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희아 씨는 이러한 평소의 생각을 담은 편지를 써서 대북사업 경험이 풍부한 사단법인 ITF 태권도협회로 보냈고, 그 바람이 지난번 자선음악회로 꽃을 피운 것이다. 공연주최 및 휠체어 전달의 가교역할을 한 사단법인 ITF 태권도 협회의 유완영 회장은 “15년을 평양에 다니면서도 장애인에게 뭘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희아양 덕분에 좋은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희아 통해 ‘장애인’ 인식 바뀌길… 평양공연 추진 중  

 

그는 이어 “내년 6월 이희아씨의 평양공연을 위해 문을 두드리는 중”이라며 “희아양이 장애를 딛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북한 장애인과 주민들에게 따뜻한 희망과 감동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희아씨의 어머니 우갑선씨는 “뭣도 모르고 우리 희아를 덥석 안았는데 회장님이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시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희아가 북한 장애인을 무척 보고 싶어합니다. 희아가 키도 작고 손가락도 양손에 네 개 아닙니까. 희아를 보고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를, 북한에도 장애인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의 차이를 맞춰나가야 통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말에 이희아씨는 평양공연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며 꼭 그랜드 피아노가 아니어도 되고 피아노 한 대와 북한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소박한 공연이면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아리랑의 감동' 57년 헤어져도 동포애는 그대로 

 

아산상 받은 어머니 우갑선씨

"상금 1천만원 휠체어보내기에 기탁"

희아씨의 어머니 우갑선씨는 지난 11월 아산상 시상식에서 ‘가족효행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천상 간호사였다. 서울보훈병원 근무 당시 중환자실에서 1급 척추장애인이었던 남편(2000년 사망)을 만나 멋진 인품에 반해 먼저 청혼하여 결혼했다.

 

7년 만에 어렵사리 생긴 아기가 선천성 사지기형 1급의 장애를 가진 희아씨였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자식을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핀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아산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그러나 어머니는 “장애는 겉모습이고 내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며 “다른 엄마들과 똑같이 헌신적으로 키웠는데 우리 희아가 장애가 있으니 내가 특별해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기꺼이 받아 상금 1천만 원을 북한장애인 휠체어 보내기에 쓰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휠체어보내기 후원 문의처: 사단법인 ITF 태권도 협회 02-553-4140 

희아씨가 통일에 대한 열망을 키운 건 아주 어려서부터다. 유치원 다닐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는 왜 아직도 둘로 나뉘어져 있을까 궁금했다고 한다. 만약 커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통일을 위해 노력하리라 다짐한 어린 희아는 일기장에 ‘나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써놓기도 했다고. 

 

마침내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로 이름을 얻은 그는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 전 세계를 누비며 무대에 섰고, 그 과정에서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 특히 재일동포와 자주 접하면서 통일의 염원과 한민족의 애틋함을 키워가게 됐다. 

 

"언젠가 대중가수 김연자씨의 북한 공연 비디오를 봤습니다. 남한을 그리워하는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가수와 관객이 모두 눈물범벅이 돼서 부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북한 사람들은 훨씬 남한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동포애가 용솟음치는 감동의 장면을 희아씨 또한 무대에서 재현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손끝으로. 희망을 얼싸 안아버린 희아씨의 몸을 통과한 선율은 통일의 세레나데가 되어 사람들 가슴을 파고든다. 어머니 우갑선씨가 말을 이었다.

 

"희아가 공연 중에 통일 얘길 항상 합니다. 길게 말할 수 없으니 골자만 얘기하죠. CD 판매 수익금으로 휠체어를 사서 북한에 보내고 굶주린 어린이 도울 것이라고요. 그리고 아리랑을 피아노로 연주를 하면 관객들도 하나가 되어 애절한 마음을 담아 노래합니다. CD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팔려요. 57년 떨어져 있어도 한민족의 동포애는 변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북한 인구 500만 될라…   

 

사실 희아씨는 지금 마음이 급하다. 북한 인구가 2500만 명이었는데 1500만 명으로 줄었다며 이러다가 통일이 늦어지면 북한 인구가 500만 명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고 말하며 이내 안타까움에 젖어들었다.

 

통일을 염원하는 희아씨의 마음은 연애가 불붙기 시작한 연인의 그것처럼 뜨겁고 절절했다. 통일관을 떠받치는 논리 또한 올차고 야무지다. 

 

사회가 탈북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탈북자 아이들 학교에서 왕따당한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그러면 안 되고 감싸줘야 한다고 힘껏 말한다. 또 굶주리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통일이 되기까지 북한에 퍼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 마지막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한국이 자주 통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요. 미국이 낀 4자 회담도 필요하겠지만, 저는 우리 남북한 사람들의 염원과 힘만으로도 통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부진 희아씨의 발언들에서 긴 시간 관심 기울인 숙고의 흔적이 역력했다. 어머니 우갑선 씨는 “희아가 통일을 위해 아름다운 십자가를 졌다고 생각한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네 손가락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 희망모녀는 소 떼가 가고 얼마 전 차 떼가 지나간 자리를 휠체어 떼로 채워가며 다시 한 번 커다란 기적을 이루길 염원한다.


태그:#이희아,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 , #통일, #휠체어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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