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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었다. 개인사가 대충 이렇다. 외가에서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아버지가 사업이 실패하여 외할머니 집에서 사는 동안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학교를 못 갔다. 대신 험한 농사일을 해야 했다.

"네 아버지 덕택에 우리 집안이 이 고생을 하니 네가 대신 일을 해라."

돌덩이 같은 외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고구마나 감자밭에서 호미를 쥐고 흙투성이인 채 등굣길에 재잘대는 친구들을 글썽이는 눈망울로 애써 외면해야 했다.

이제 40대 중반이 된 그는 지금 교단에 서 있다. 학교에 못 가고 농사일을 해야 했던 코흘리개 학생이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의 아픔을 겪은 후 자라나는 아이들을 감싸안고 살아간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그의 아이가 미국으로 가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이에게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최선을 다해 해주마"고 대답했다.

어려운 결단을 한 부모, 그러나...

그는 아이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그 먼 미국으로 혼자 공부하러 간다는 것이 기특했다. 더구나 믿음이 가는 <한겨레>에서 주관하는 교환학생 사업이었다. 연 2000만 원이 부담스럽긴 해도 보내주기로 어려운 결단을 했다.

더구나 학교로 특강을 온 황대권 선생의 강의를 들은 아이가 자기도 황대권 선생처럼 생명운동가·평화운동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갸륵했다고 한다. 한비야처럼 세계를 누비며 구호운동을 하겠다고 해서 대견하기까지 했다. 이는 아이를 미국에 보내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일찍이 세상을 보는 눈과 이를 잘 식별하는 앎을 갖추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영어 - 요즘은 필수가 된 - 를 잘 익혀 온다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에게 세 가지를 조언했다.

하나는, 한비야씨와 황대권씨가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먼저 알아보라. 한비야가 몇 번씩 연기해 가며 세계여행 할 여비를 마련하고서야 비로소 다니던 홍보회사를 때려치우고 첫 세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두 번째는, 우리나라 같은 또래 청소년들의 평균적 삶의 수준을 생각하라. 그 평균적 삶이 100중 50이라고 할 때 60∼70 사이에서 아이를 도와주라. 나머지는 스스로 힘으로 하게 하라. 교환학생은 또래 평균적 삶의 백배 천배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2000만원 들여 1년을 살면 얻게 되는 값진 체험이 분명히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특권의식'도 생길 것이다. 도시락도 못 싸는 아이들을 더 이상 친구로 바라보기 힘들 것이다. '체험'과 '삶'은 다르다. 일 년에 한 달을 부모의 전적인 지원 속에 농가에 가서 고구마와 감자를 캐보는 '체험'과, 등교하는 친구들을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물을 훔쳐야 하는 한 달의 '삶'은 전혀 다르다.

세 번째는, 뚝 잘라서 1/4인 500만원을 내게 주라. 아이가 내게 오면 미국체험이 아니라 우주 체험까지 다 할 수 있다. 미국에 가서 2000만원으로 100을 얻는다면 500만원으로 우리나라에서 80을 얻을지라도 그것을 선택하라.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감사하게도 그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따르기로 했다. 가더라도 미국보다 유럽이 좋고, 유럽보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좋지 않을까 싶다. 가장 좋은 것은 내가 한 달 전에 세운 '스스로 세상학교'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촌구석에도 다섯집이 유학... 아이야, 세상을 가져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산골 20여 가구에도 미국으로 유학 가 있는 집이 셋, 중국으로 유학간 학생이 둘이다. 십몇 년 전만 같아도 촌구석에서 정말 용이 다섯 마리나 난 셈이다.

내 조언을 받아들였던 그 부모님께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미 작정 한 그 2000만원을 한 푼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아이와 의논해 아무 관계도 없는 쪽에, 어떤 도움도 받아 보지 못했던 쪽에 그냥 드리라고. 이왕이면 열일곱 살 아이에게 그 정성이 흘러 들어가게 하는 쪽에. 그리고는 1년 동안 그쪽을 향해 기도해 보라고.

이런 마음 하나 낼 수 있다면 미국 교환학생 하나 얻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세상을 다 얻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교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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