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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힘든 것이 역시 학비 등입니다.

용돈을 포함하면 거의 월 50만원 정도씩 들어간 셈입니다. 저는 강화도까지 회의에 한번 참석 하려면 가는 데만 일곱 시간 걸리고 왕복 경비는 근 8만원이 기본이었습니다. 3학년 때 학년 학부모회장을 맡아서 학교 운영위원회와 연석회의와 대표자회의에 참석하려니 비용이 만만찮았습니다만 가는 동안 버스 속에서 책도 보고 모자란 잠도 자고 차창 밖 풍경도 보며 한가로이 졸기도 하고 참 좋았습니다.

돈이 많이 드니까 귀족학교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끼리는 그런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제도권 학교 다니는 애들 보면, 친구들 자식들이 다 제도권 학교 다니니까 자세히 듣게 되거든요. 비용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매일매일 용돈에, 학원비에, 휴대폰비에 도시락 싸고, 잡부금 등 월 100만원 되는 애들이 제법이더라고요.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바른 성장과 안전입니다.

차등자율 등록금제

학교들이 다 ‘차등자율등록금제’를 실시해서 자율적으로 더 내거나 덜 낼 수 있게 했습니다. 저도 얼마동안 수업료를 자율적으로 50% 할인하여 내기도 했습니다.

돈 액수로 따져질 수 없는 부분인데요. 일반학교 다니면 집을 나선 이후부터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걱정을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대안학교에 보내면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삿된 환경에 접촉하는 것도 없습니다. 방과 후의 생활도 배움의 과정으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큰 애가 실상사작은학교 입학하고 한 달만인가 처음으로 집에 왔을 때, 비가 투닥투닥 오니까 얼른 방에서 나와 가지고 마당을 휘휘 살피면서 비 오는데 들여야 할 거 없나 보는 것이었습니다. 살림을 아는 것입니다. 어찌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작은놈 역시 몇 달 만에 집에 와서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다 들어오더니 자기가 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냐니까 하는 말이 친구들과 노는데, 애들이 괜히 개미가 기어가니까 발로 비벼 죽이는데 그걸 보고 깜짝 놀라서 말렸다는 것입니다.

모기나 파리를 때려죽이지 않고 그냥 휘휘 쫒으니까 애들이 이상하게 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아이의 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가 집에 오더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먹으면서 이렇게 많이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면 전기가 얼마나 많이 소모 되겠냐고 걱정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실상사작은학교에서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 졸업생 학부모모임을 합니다. 아내가 주로 나가는데 일반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아이가 졸업을 하면 학교하고는 끝이잖아요. 졸업했는데도 학부모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학교 졸업하면서 학교에 기부금을 냈을 정도니까 말 다했지요. 입학기부금은 들어 봤어도 졸업기부금은 못 들어 봤죠? 저는 여기저기서 빌려가면서 큰돈을 학교에 냈습니다. 연봉 몇 천 만원 하는 제도권 학교 교사직을 버리고 와서 월 80만원 받고 일하는 선생님들을 봤거든요. 그나마 월급이 몇 달씩 밀리곤 했으니까요.

제가 낸 졸업기부금은 그 학교에 냈다기보다 이 나라의 자라는 청소년과 대안교육에 긴요하게 쓰일 거라는 믿음 하나 가지고 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특별히 힘들었던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 고단한 것은 있었으나 마음 상하거나 미워하거나 불신하거나 외면하고 등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축복 같은 일들이 떠오르는군요.

형, 동생 하고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형부와 매형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 아주 색다른 경험입니다. 학부모 사이의 호칭이었습니다. 이 호칭이 아주 재미있는데요. 한 학생의 아버지가 저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칩시다. 그러면 제 아내는 형수가 되어야 하는데 누님으로 불린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은 자기 엄마 기준으로 제 아내를 또 ‘이모’라고 불러요. 이거 뭐 촌수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됩니다.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 교육상 문제가 되겠다 싶어 호칭을 정비하자하여 매형, 형부, 형수가 등장 했던 것이고 지금도 만나면 그렇게 부릅니다.

매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신입생 학부모들과 재학생 학부모 전원이 참석하는 교사/학부모 공동연수를 2박3일 정도씩 합니다. 대안교육에 대한 밀도 있는 연찬의 시간입니다. 졸업 할 때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펑펑 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 순간 한 순간이 정성과 공력을 온통 쏟았던 순간들이라 그럴 것입니다.

부모들이 졸업 할 때 다들 그럽디다. 아이 덕분에 많이 배우게 되었다고. 모든 게 다 아이 덕이라고.

아이 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부모라는데

아주 오래전 야마기시 공동체에 다닐 때였습니다. 학육강좌라고 있는데 거기서는 그래요 교육이라고 안 하고 학육이라고 하거든요. 가르치고(교) 키우는 게(육) 아니고 배우면서(학) 기른다(육)는 것이지요. 어쨌든 학육강좌를 하는데 모임을 이끄시는 분이 물었어요.

“우리들의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냐?”고요. 다들 이구동성으로 그랬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며 마음 편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요. 그러자 그 분이 그랬어요.

“지금 아이를 그렇게 지내게 하느냐?”고요. 모든 사람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죠. 그 누구도 지금 당장 그러지 않거든요. 먼 훗날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고 산단 말입니다.

제가 지금 수염이 길어요. 사람들이 묻습니다. 수염을 왜 기르느냐고요. 저는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수염을 왜 기르는지를. 그런데 그게 아니더란 말입니다. 수염을 기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기른 적 없습니다. 단지, 안 깎았을 뿐입니다"라고요. 사실 그렇거든요. 몸 불편한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한 4개월 목욕탕에를 못 갔어요. 그랬더니 그냥 길은 겁니다.

먼 훗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당신 애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저렇게 잘 자랐냐?”고 한다면 제가 그때 할 수 있는 대답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가르친 적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배움을 제가 방해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라고요.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저이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자라는데 제일 큰 장애물이 부모라고 하더군요. 장애물이 아니기를 항상 노력 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방송통신대 대안교육연수 온라인 티브이 강의 교안이며 <민들레>9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실상사작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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