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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황민화라고 하는 것은 사상, 감정, 풍습, 습관 중에 비 일본적인 것을 제거하고 일본적인 것을 대입 순화하는 것이다. 혼상의례의 일본화, 가족·친척·관념의 일본화, 경신숭조 천황중심의 생활의 신 건설을 일컫는 것이다." - 이광수의 <반도 민중의 애국운동> 중에서

참 부끄러운 일이다. 뼛속까지, 온 몸 구석구석 까지 일본화 된 인물인 이광수란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니. 민족의 의례도 일본화 시키고, 가족관계도 일본화 시키잔다. 조선민중의 애국운동이란 천황중심의 생활이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썩어빠진 친일파란 바로 이광수 같은 이를 말함이다.

▲ 친일파 이광수 시비
ⓒ 김대갑
이광수. 그가 누구인가. 한국 근대소설의 개척자이자 근대소설을 대중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예전 고등학교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과 이력은 수많은 문학도들을 설레게 했다. 그가 창작한 수많은 작품들은 한국적 정서와 한을 훌륭하게 표현하였으며, 그가 창조해낸 플롯과 캐릭터들은 후배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 임전대책 협의회와 조선임전보국단, 대동아문학자대회, 조선문인복구회 등 친일문예단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모자라 나이어린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몬 후안무치한 인물이었다.

"그대도 부르시네. 1억이 모조리 전투배치에 서랍시는 오늘 그대는 벌써 뜻이 정하였으리. 나가리이다, 나가 싸우리이다. 싸워서 이기리이다." - <조선의 학도여> 중에서

나가 싸우란다. 아니 나가서 죽으란다. 이광수는 순진하고 어린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천황을 위해 나가 싸우라고 강변했다. 그의 소설을 흠모하고, 그의 문재를 존경하는 수많은 학생들을 현혹하면서 이광수는 충실한 일본의 강아지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에게 있어 일본은 불침의 항모였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제국이자 이상향이었다. 천황은 그의 황제였으며, 일본인은 그의 이상적인 국민이었다. 정말 너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이런 인물의 글과 소설이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는 사실이, 그 소설과 글을 내가 배웠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할 뿐이다.

▲ 달맞이 고개의 수치
ⓒ 김대갑
그런데 정말 가슴이 아프다. 동해안 최남단을 말없이 지키는 해운대와 달맞이 고개에 이광수의 시비가 버젓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씁쓸하다. 아무리 명문이기로서니 어찌하여 해방 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광수의 글을 유명 관광지에서 본단 말인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까지 친일파의 글을 보게 하는 굴욕을 어찌 그냥 두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광수의 시비는 당장 철거되어야 한다. 해운대의 아름다움을 이광수가 묘사한 것도 부끄러운 일이요, 그런 이광수의 글을 명시라고 버젓이 설치한 우리의 안일한 정신도 부끄럽다.

"바다도 조타하고 청산도 좋다거늘/바다와 청산이 한곳에 뫼단 말가
하물며 청풍명월 있으니/여기 곳 선경인가 하노라." - 이광수의 <해운대에서>


여기가 곳 선경이라니. 하긴 학도병을 징집하고 독립투사들을 숙청하라고 건의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막대한 보상을 받은 이광수에겐 해운대가 선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동에 의해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고, 사랑하는 딸을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빼앗긴 조선백성들에겐 해운대는 지옥이나 진배없었다. 그가 편안하게 소설을 쓰고 있을 때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 백성들이 있었다. 그가 황국신민의 충성을 바칠 때, 사랑하는 누이들은 참혹한 전쟁터에서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다.

시대가 어느 때인가.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시대요, 과거사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친일파의 시비가 유명 관광지에 세워져 있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다. 당장 이광수의 시비는 해운대와 달맞이 고개에서 철거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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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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