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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자상(父子像)으로 우리 동네 박용성, 박경원씨 부자가 밭에서 옥수수모종에 흙을 덮어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자상(父子像)으로 우리 동네 박용성, 박경원씨 부자가 밭에서 옥수수모종에 흙을 덮어주고 있다. ⓒ 박도
한 선배 작가는 일반 직장인처럼 오전 9시에 집필을 시작하여 오후 5시에 끝내며 중간중간 한 시간에 10분씩 쉰다고 했다. 여간 부러운 생활습성이 아니다. 내 경우는 처음부터 버릇이 잘못 들었다. 낮에 근무한 다음 집필을 하다보니 야행성이요, 소나기성이다. 퇴직한 다음 고치려 하지만 한 번 잘못 든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올 여름에 나올 신간준비로 며칠 바빴다. 신체부위 가운데 가장 혹사한 곳은 아무래도 눈과 어깨 팔목 부분인가 보다. 막 원고 마무리를 끝내자 갑자기 팔목이 몹시 아팠다. 그러면서 그제야 뻐꾸기와 장끼의 노랫소리가 장대비소리처럼 요란히 들려왔다. 이제까지는 주로 어깨가 아팠는데 이제는 통증도 신체 각 부분으로 옮겨 다니나 보다.

좀 쉬라는 신호로 알고 컴퓨터를 끄고는 산책길에 나섰다. 주천강 둑길로 가는데 마침 동네사람들이 양배추 모종을 밭에 내고 있었다. 앞집 노씨가 인사를 하면서 사진이나 좀 박아달라고 부탁했다. 농사꾼들이 모종을 내는 광경이 더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 동네 농사꾼들이 양배추 모종을 내고 있다.
우리 동네 농사꾼들이 양배추 모종을 내고 있다. ⓒ 박도
곧장 발길을 집으로 돌려 카메라를 메고 다시 양배추 모종내는 밭으로 갔다. 전 안흥4리 정희영 이장님 밭으로, 올해는 고심 끝에 계약재배로 양배추를 심는다고 했다. 계약재배는 큰 이익은 없지만 안정성은 있다고 한다. 요즘 농사꾼들은 해마다 뭘 심어야 할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칫 작물 선택을 잘못하면 출하도 못하고 그대로 갈아엎기 일쑤다.

"농사꾼이 심을 작물 하나 통제치 못하는 정치가 그게 정치냐"고, 농사꾼들이 정부를 믿고 시키는 대로 농사지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바랄 것도 없는데, 그 전에는 농사꾼들이 많아 농촌을 우대하더니, 이제는 표가 적어지자 들은 척도 않는다고 품앗이하는 노씨도, 밭주인 정씨도, 한 마디씩 했다.

올 봄은 일기가 순조롭고 비가 알맞게 자주 내린 덕분에 우리 동네 특산물 고랭지 배추농사는 아주 잘 됐다. 하지만 우리 집 앞 1700평 밭에 고랭지배추를 심은 노씨는 풍년이 반갑지 않은 기색이다. 값이 폭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래 머물면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몇 장면을 찍고 능선을 넘자 아랫마을 박용성 박경원씨 부자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모종에 흙을 덮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부자상이었다. 내가 밀레라면 이 장면을 캔버스에 담았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부자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인이 되고 싶다. 갑자기 박용성씨가 부러웠다.

잘난 의원, 자치단체장 자식 두면 뭘 하나. 백성들 고혈로 해외연수 가서 딴전이나 하고 와 백성들의 빈축을 사는 그 잘난 자식 둔 걸 부러워할 필요 없지 않은가. 곁에서 부모 봉양하고 흙을 뒤집으면서 바르게 사는 자식이 얼마나 대견한, 하늘에 자랑스러운 자식 아닌가?

브로컬리 가지를 솎아주는 농사꾼들.
브로컬리 가지를 솎아주는 농사꾼들. ⓒ 박도
조금 더 내려가자 브로컬리 밭에서 가지치기를 한다고 농사꾼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잠시 쉬는 시간인 줄도 모르고 팔자 좋게 카메라 들고 어슬렁거린다고 욕할 것 같아 내 집으로 후딱 돌아와 나도 텃밭의 풀을 뽑았다.

싱그러운 초여름의 산마을이다. 뻐꾸기는 가는 봄의 춘정을 아직 풀지 못했는지 뒷산 숲에서 짝을 찾는 세레나데를 줄기차게 부르고 있다.

우리 동네 고랭지배추밭, 일기가 순조로운 탓으로 무척 잘 자라고 있다.
우리 동네 고랭지배추밭, 일기가 순조로운 탓으로 무척 잘 자라고 있다. ⓒ 박도
안흥4리 말무덤이마을의 또 하나 명물 이계만씨의 오미자가 한창 영글고 있다.
안흥4리 말무덤이마을의 또 하나 명물 이계만씨의 오미자가 한창 영글고 있다. ⓒ 박도
강원도는 감자의 고장으로 이제 막 꽃이 피고 있다.
강원도는 감자의 고장으로 이제 막 꽃이 피고 있다. ⓒ 박도
우리 마을 오솔길
우리 마을 오솔길 ⓒ 박도
집 뒤꼍의 밤나무 숲, 대부분의 집은 낡았다.
집 뒤꼍의 밤나무 숲, 대부분의 집은 낡았다. ⓒ 박도
산 위의 뭉게구름.
산 위의 뭉게구름. ⓒ 박도
우리 동네에서 바라본 태백산맥 멧부리들, 서울의 한 출판인 부부가 이 산수화에 한동안 넋을 잃고 갔다.
우리 동네에서 바라본 태백산맥 멧부리들, 서울의 한 출판인 부부가 이 산수화에 한동안 넋을 잃고 갔다.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박도 기자의 안흥 산골이야기가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지식산업사)> <그 마을에서 살고 싶다(바보새출판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안흥#고랭지배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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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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