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는 대선이 있을 뿐 아니라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긴박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와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은 '2007 코리아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공동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이 글은 모두 9편의 글 중 두번째로 이기호 평화포럼 사무총장이 '2007년 한.일관계의 전망과 과제별 대책'를 주제로 썼습니다. 원문은 코리아연구원(www.knsi.org)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 야스쿠니신사.
ⓒ 박철현
지난 해 8월 15일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개인자격임을 애써 강조하며 주변국의 눈총과 반대에도 아침 일찍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당일 오후 사민당의 후쿠시마 당수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치도리가후찌(千鳥ヶ淵) 전몰자 묘역을 방문하여 민간인 피해자와 2만명에 달하는 아시아의 희생자들에 대한 조문을 단행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에 방위청 장관을 역임한 자민당 중견의원 카토고오이치(加藤紘一)씨 의 자택이 전소됐다. 그가 그간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해온 것에 앙심을 품은 이가 저지른 일이다.

불과 하루만에 일어난 이 사건은 오늘의 일본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 자국의 향배는 물론 동아시아관계를 결정짓는 역사적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총리는 A급전범 합사된 야스쿠니 참배, 사민당 당수는 민간인 희생자 조문

▲ 지난 해 8월 17일 일본 전국지의 15일 석간 1면 톱기사는 모두가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기사였다. 앞쪽은 <닛칸겐다이>, 뒷쪽은 <아사히>.
ⓒ 박철현
한국과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는 총리의 모습은 일본 국민들에게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당당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역사적 몰이해는 한편으로는 미국에 턱없이 경도된 일본인들의 심리상태에 보상효과를 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미래를 열어가기보다는 역사의 단절에서 미래를 구상하겠다는 억지가 노골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장수비결 또한 그의 단호한 언변과 당당함에 힘입은 바 크다.

문제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던 아래로부터의 지지기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가토 의원의 방화사건은 일종의 테러사건이었지만 일본언론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사민당 당수의 조문 내용 또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테러를 눈감아 주고 양심적 발언을 애써 덮으려는 일본의 매스컴이 지향하는 일본은 무엇인가.

지난 9월, 전후세대 처음이자 최연소자로 취임한 아베 총리가 내건 '아름다운 나라'는 향후 일본의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어린 세대가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함께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며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역사와 문화, 전통을 소중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얼핏 보면 '바른생활'을 연상케 하는 그의 주장에는 이미 '국가중심적 패러다임'을 부활 혹은 재건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결국 아름다운 국가란 '강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강자의 논리 혹은 국가주의적 사고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거친 표현이었지만 2000년 당시 모리 총리는 일본은 '신의 나라'(神の?)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다 세련된 표현으로 '국가의 품격'이 논의되기도 했다. '국가의 품격'은 2006년 초 일본 서점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문고판으로 출간된 책의 제목이다.

저자인 후지와라(藤原正彦)의 주장은 근대성과 논리가 아니라 정서와 전통에 의해 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 독립, 높은 수준의 도덕성, 아름다운 전원과 천재를 배출할 수 있는 교육 등을 주장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아베 총리의 '아름다운 나라'와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새해 들어 우리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의 게이단렌(經團連)은 향후 10년간의 구상으로 '희망의 나라, 일본'을 발표했다. 이들의 핵심 또한 도덕성인데 도덕성의 근간은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국기를 게양하기로 하였다.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 결국 '강한 나라'

단기적으로 보면 우정민영화반대 의원들을 복당 시키고 각료들의 비리문제로 최근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조금 길게 보면 아베 총리의 행보는 전후 60년을 보내고 난 후 전후세대가 꿈꾸는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실천에 가장 근접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승격됐으며 60년만에 교육기본법을 바꿨다. 이미 아베 총리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를 내걸고 지난 60년간 버팀목이 되어왔던 '평화헌법'을 개헌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미 한반도 유사시 미일간 공동작전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미국 이외의 나라들과 무기를 공동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무기수출3원칙'을 완화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정권은 집권초 한국과 중국을 첫 순방지역으로 선택했고 아시아와의 교감을 강조했다. 그래서 며칠 전 야스쿠니 참배 대신 메이지신궁을 참배하는 것으로 아시아에 대한 예의(?)와 보수화된 자국민의 지지도를 유지하기 위한 절충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일본의 대아시아외교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내놓은 6가지 정책기조 가운데, 주장하는 외교와 전후 체제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시아와 타협하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로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아베정권의 대아시아 외교에서 새롭게 꺼낼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아베정권은 미·일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헌법개정과 군사적 대국화를 꾀할 수밖에 없으며 '납치문제'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유지하는 기조 속에서 대북정책을 펼쳐갈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는 미국의 지속적인 헤게모니 행사와 미국으로부터의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핵심갈등을 전제로 하고 있고 일본은 미국헤게모니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대아시아 외교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7월 선거를 앞둔 자민당은 할 말은 하는 당당함을 보이고 지지를 유지·확대시키기 위해서라도 납치문제를 인권문제와 결부해 대북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대미정책과 대북정책이 기본적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화합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한·일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 아베 일본 총리가 방한한 지난 해 10월 9일 오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성실한 과거사 청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북한문제,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 결성 계기 될 수도

그러나 북한문제는 역설적으로 일본이 아시아로 귀환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데 가장 근본적이고 커다란 계기가 될 수 있다.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만을 자국의 국익으로 이해하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일본이 북한의 에너지 문제와 개혁개방과 관련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미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있었던 평양선언을 근거로 북·일관계가 진전된다면 북미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남북간 협력을 동북아 협력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한·일 관계의 핵심은 서로를 잘 모르고 있는 데 있다. 그리고 모르는 만큼 과거의 역사로부터 탈각되어있고 미래를 공동의 관심으로 두지 않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를 강제침탈하는 제국주의로 일본을 이해하는 것 이외에 일본의 역사와 근대화과정을 어느 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역으로 일본이 한국과 동아시아에 대하여 알고 있는 내용은 일본 전체의 지식수준에 비하면 의외로 일천하다. 김치가 혐오식품이 아니라 기호식품으로 변한 것이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겨울연가>를 필두로 등장한 한류가 한국어 붐을 일으키고 사실상 비자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민간교류는 급성장했다. 게다가 최근에 환율이 떨어지면서 한국인들의 일본방문은 폭증하였고 비싸기로 소문난 긴자에서도 쇼핑으로 날밤을 세우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민간부문에서의 인적 교류와 학습은 한일관계의 가장 주요한 자산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문제나 독도영유권 문제가 불거져도 국가간 대응보다 시민들간의 공동대응이 한·일간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겨왔다. '새역모'의 역사교과서가 지역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은 것은 일본 지역시민들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민사회에서 진전되고 있는 한일 양자간 협력관계를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 다자간 관계 혹은 정치적 협력관계로 전환시켜갈 수 있을까. 일본에서 발견되는 양면적 인식은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지만 가장 위험하고 위협적인 적은 북한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북한이 2000년 이후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하는 점을 일본에서는 전혀 체감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허물어져가고 있는 분단의 벽을 일본에서는 더욱 높게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공동의 과제, 시민이 만드는 '평화국가'

2007년의 한·일관계는 아베 총리의 정책의도와 관계없이 향후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는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일본은 새로운 국가만들기를 의도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평화국가 혹은 통일국가(분단을 극복하는 국가)를 구성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만들기는 동아시아라고 하는 새로운 정치질서와 얽혀있고 그 안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와 접목되어있다.

그러한 국가 만들기가 또다시 애국심을 부활시켜 국가주의와 폐쇄적 민족주의로 채색된다면 한일관계는 여전히 냉전의 틀 안에 갇히게 될 것이다. 이미 한·일관계를 저만치 앞으로 진전시킨 시민들의 힘과 지혜에 조금 더 의지해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과 일본이 부흥시켜야 할 것은 강한국가가 아니라 평화국가이고 시민국가이며 동아시아를 활짝 열어갈 수 있는 국민이 아닌 시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코리아연구원(www.knsi.org)은 연구자, 정책전문가, NGO 활동가 등을 기반으로한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로 외교안보 및 양극화 관련 정책대안 및 국가전략 제시를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태그:#야스쿠니, #아베, #과거, #평화, #한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