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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더 타임스> 대학평가에서 150위를 차지한 고려대.
올해 <더 타임스> 대학평가에서 150위를 차지한 고려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0월 6일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에서 발표한 세계 200대 대학에서 서울대와 고려대의 순위가 엉터리 자료를 통해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밝혀졌다. 더욱이 <더 타임스>에서는 일부 평가 항목에서 실제 수치와 다른 자료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돼 순위 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매년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하는 <더 타임스> 평가에 국내 대학들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언론에서도 앞 다퉈 <더 타임스>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대는 전년보다 30계단이나 뛰어오른 63위에 올라 언론에서 집중조명을 받았다.

올해 150위를 차지한 고려대 역시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200위 안에 들지 못한 연세대에선 정창영 총장의 사퇴론까지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 <더 타임스> 평가에서 200위 안에 든 대학은 서울대(93위), 카이스트(143위), 고려대(184위).

"교수 숫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더 타임스> 세계 대학 평가 순위. 서울대는 63위, 고려대는 150위, 카이스트는 198위를 기록했다.
<더 타임스> 세계 대학 평가 순위. 서울대는 63위, 고려대는 150위, 카이스트는 198위를 기록했다. ⓒ 선대식
영국 <더 타임스>는 매년 '고등교육 부록(Higher Education Supplement)'을 통해 세계 대학 순위(World University Rankings)를 발표해 왔다.

<더 타임스>의 '고등교육 부록'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학 평가방법은 크게 설문지표(50%)와 통계지표(50%)로 나뉜다. 설문지표는 동료 교수 평가(40%), 고용자 평가(10%)로 이뤄진다. 통계지표는 외국인 교수비율(5%), 외국인 학생비율(5%), 교수당 학생비율(20%), 교수 1인당 논문 인용도(20%)를 조사한 수치다. 각 항목 점수는 1위를 차지한 대학을 100점으로 놓고 점수화한 것이다.

통계지표 중 논문 인용도를 제외한 세 가지 항목은 각 대학에서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제출된 자료를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교수당 학생비율은 평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각 대학에서 <더 타임스>에 정확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전체 순위가 크게 왜곡될 수 있다.

실제로 <더 타임스>는 평가 방법과 관련해 '교수'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했다. 마틴 인스 <더 타임스> 객원 편집자는 '고등교육 부록' 홈페이지에 교직원 범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수 숫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더 타임스>)는 각 대학에서 정규 계약 관계에 있는 교직원을 기초로 하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Staff numbers, too, can be a matter of opinion. We ask universities to submit a figure based on staff with some regular contractual relationship with the institution.)"

[의혹 ①] 고려대, 부풀려진 자료 제출?

고려대가 세계 대학 순위에서 150위를 기록하는 데 바로 이 교수당 학생 비율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 고려대가 얻은 55점은 전체 평가 1위 대학인 하버드(56점)와 비슷하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고려대가 <더 타임스>에 제출한 교수/학생비율 자료는 실제에 비해 최소 3배 이상 부풀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고려대가 제출한 교수당 학생비율은 7.9명이고 학생 수는 2만8042명이었다. 이는 지난 2005년 교육부 통계나 2006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 자료와 크게 차이난다.

지난 10월 19일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의 모습. 고려대가 <더 타임스> 대학 평가에서 150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의 모습. 고려대가 <더 타임스> 대학 평가에서 150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 고려대
2005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고려대의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33.5명(2005년 4월 1일 기준)이었다. <중앙일보>가 지난 9월 26일 발표한 2006년 대학 평가와 관련, 고려대는 전임교수 1인당 학생 수 항목에서 20위 안에도 못 들었다. 20위가 강원대(24.15명)임을 감안하면 고려대의 교수당 학생비율은 최소한 24.15명보다 높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고려대 총장이 직접 고려대의 교수당 학생비율이 24.15명보다 높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10월 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고려대의 경우) 대학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가장 큰 척도인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28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려대는 이와 관련, 취재에 나선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세 차례나 말을 바꾸는 등 의혹을 한층 부풀리고 있다. 고려대 평가팀의 한 관계자는 10월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료를 제출할 때 '교육 조교'까지 포함했다"며 부풀려진 자료 제출을 시인했다.

하지만 10월 23일 고려대 홍보팀 김가영씨는 "문서를 검토한 결과 <더 타임스>에서 요청한 (전임)교원에 대해서만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번복했다. 다시 고려대 홍보팀은 10월 27일 "(서창 캠퍼스를 제외하고) 안암 캠퍼스를 기준으로 자료를 제출했다"며 말을 바꿨다.

[의혹 ②] <더 타임스>, 서울대 점수 조작? 실수?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대의 경우 <더 타임스>에 비교적 정확한 자료를 제출했지만 점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 <더 타임스>의 실수든, 고의적인 조작이든 결과적으로 서울대의 점수가 실제와 다르게 나온 것이다.

서울대가 <더 타임스>에 제출한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7.9명이다. 남익현 서울대 기획부실장은 "<더 타임스>에서 요구한 대로 정확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대가 제출한 자료는 2005년 교육부 통계(20.8명)나 2006년 중앙일보 평가(17.38명)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서울대가 교수당 학생비율 항목에서 얻은 57점(듀크대 100점 기준)은 실제 비율에 비해 월등히 높다. 57점은 하버드(56점), MIT(42점), 스탠포드(32점), 프린스턴(53점), 도쿄대(35점) 등 세계 유수의 대학보다 높은 점수다.

지난 8월 21일 <유에스뉴스 앤 월드리포트>가 발표한 '2007년 미국 대학 평가'에 따르면, 하버드와 프린스턴은 교수당 학생비율이 각각 5명과 7명(2005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이를 감안하면 <더 타임스>는 서울대의 교수당 학생비율을 5~7명 정도로 평가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서울대의 점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더 타임스>는 현재까지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의혹 ③] <더 타임스>, 엉뚱한 자료로 대학 평가

<더 타임스>가 '고등교육 부록'을 통해 발표한 '세계 대학 랭킹'의 표지 사진.
<더 타임스>가 '고등교육 부록'을 통해 발표한 '세계 대학 랭킹'의 표지 사진. ⓒ <더 타임스>
<더 타임스>에서는 이번 대학 평가와 관련해 한국의 대학 15곳을 평가했다. <더 타임스>에 자료를 제출한 학교는 서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한양대 등이며 나머지 10개 대학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평가 대상에 포함됐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더 타임스>가 평가 때 사용한 10개 대학의 통계지표는 실제와 다른 내용임이 확인됐다. 특히 <더 타임스>는 연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충남대, 전남대 등 5개 대학의 경우 실제와 큰 차이를 보이는 엉뚱한 자료를 사용했다.

충남대학교의 경우, <더 타임스>에서는 교수당 학생비율을 9.8명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충남대 기획팀의 문병직씨는 "학교 장기발전 계획상으로도 2015년 목표가 15명"이라고 말하고 "<더 타임스>가 어디서, 어떻게 자료를 가져갔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교수당 학생비율이 8.4명으로 평가된 성균관대학교 역시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신현대 성균관대 전략기획팀 계장은 "자료를 제출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각 대학의 자료를 지니고 있는 교육부도 <더 타임스>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주란 교육부 인력수급정책과 사무관은 "교육부 차원에서는 <더 타임스>에 대학 평가와 관련된 어떤 자료도 제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더 타임스>에 여러 차례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 마틴 인스 <더 타임스> '고등교육 부록' 객원 편집자는 "평가 대상인 아시아 지역 대학교의 숫자가 적다는 의견이 나와 이들 대학을 포함시킨 것"이라며 "한국의 대학교와 관련한 데이터는 각 대학에서 직접(directly) 가져온 것"이라고만 밝혔다.

마틴 인스 객원 편집자는 자료 검토가 미흡했다는 사실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의 대학교조차 모든 학교의 자료를 구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평가 항목·산출 방식도 모른 채 결과에만 웃고 울어서야..."

<더 타임스>의 부실한 평가에 대한 지적과 별개로, 외부의 평가 결과만 중시하는 우리 대학사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와 다른 평가와 순위를 놓고 학교 차원에서 환호하거나 탄식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연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우리 대학이 외국의 한 평가기관의 평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데에서 찾았다. 이 연구원은 "평가 항목이 무엇이고 어떻게 산출한 것인지도 모른 채 평가 결과에 대학들이 웃고 운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려면 언론, 교육부,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언론이 해외 평가 기관의 대학 평가를 과도하게 포장해서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해오는 한편, 교육부는 대학 평가 시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의 논문 인용도 등 양적 평가에만 집착했다"고 비판했다.

"대학종합평가를 앞두고 장학금을 갑자기 늘렸다가, 평가가 끝나면 장학금을 없애는 대학도 있다"고 주장한 이 연구원은 평가 결과만 중시하는 대학의 행태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당장 눈앞의 결과만 생각하지 말고 대학들이 교육 여건의 질적 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선대식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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