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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인
조지 레이코프는 노암 촘스키의 수제자로서 지금은 인지언어학계에서 고유의 영역을 구축한 학자이자 정치컨설턴트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노암 촘스키처럼 언어학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현실정치에 관여를 하여서 민주당 열혈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2000년 대통령 선거패배, 2003년 켈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패배 등을 배경으로 쓴 책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부제 :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소개되는 것은 소위 '프레임이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프레임이론이란 생각의 틀과 관련되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않기로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코끼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를 정치현장에 응용을 하면 의제와 의제의 언어적 표현의 선점 효과를 언급할 수 있다.

미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입성한 후에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의 세제상 국민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 많고 그런 세금정책을 개선하는 사람(부시 자신)은 영웅이라는 사고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제의 개혁이 사회복지의 축소라는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가려진 채 이 구호는 국민들에게 대단히 어필을 하였고, 심지어 민주당 의원과 당원들까지 공공연하게 이 구호를 사용했다.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공화당의 '코끼리'를 무부분별하게 홍보해 주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그것보다는 선명한 민주당의 주장을 담을 수 있는 정치 아젠다와 그것의 언어적 표현을 개발하여 맞불을 놓아야 한다.

비슷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을 줄기차게 사용하였다. 정치적 공세로 볼 사안에 대해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는 수세적으로 질질 끌려가면서 '세금폭탄'이 아님을 해명하는 데에 급급했다. 상대의 '코끼리'는 절대 연상하지 않도록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의 '코끼리'에 질질 끌려다닌 사례다.

반대가 되는 사례도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 경제 담론에서 양극화 확대와 양극화의 해소는 중요한 의제이다. 그런데 양극화라는 담론은 한국사회의 계층적, 계급적 불평등을 일정 정도 폭로하는 진보적인 의제이기도 하다.

역자의 해설에 의하면 연전에 <중앙일보>의 기획기사에서는 이 의제를 교묘하게 중산층의 붕괴로 치환을 했다는 것이다. 양극화의 확대와 중산층의 붕괴는 내용상 대동소이해 보일 수 있지만, 전자는 우리 사회의 계층, 계급적 불평등을 폭로하고, 후자는 현정부의 실정에 대한 정치공세적 측면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망을 가진다.

<중앙일보>는 보수언론임에도 훌륭하게 상대의 '코끼리'를 피해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언어와 의미론적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6, 70년대 반전운동과 더불어 보수주의적 세력이 코너에 몰리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지경까지 이르자 주요 씽크탱크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역전의 기회를 집요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레이건 집권, 부시 집권을 가져오게 한 보수주의적 지식인집단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도덕적으로 코너에 몰린 한국의 보수주의적 정치집단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두 번이나 정권을 내어준다.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연합하고 협력하여 내놓은 결과물이 최근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이며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높은 집권 가능성이다.

흔히들 보수주의 세력은 서로 싫어하거나 경쟁의 상대로 생각하여 협력이 안 된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세력의 지적, 도덕덕 오만이다. 보수주의 집단도 목표를 정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연합하며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들 역시 아주 우수한 지식인 집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프로파겐다와 사회적 의제, 담론들을 훌륭하게 생산한다. 한나라당의 외곽단체가 그렇고, 조·중·동·문의 보수언론이 그렇고, 뉴라이트운동 진영이 그렇다. 보수세력을 우습게 알아서는 안 된다.

지금 미국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압승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노동자와 서민은 자신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 주었다. 그런 결과는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선거운동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의 '코끼리'를 열심히 쫓아간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조지 레이코프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예로 들면서 선거결과를 특이한 방식으로 해석을 한다. 이 선거는 기존의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공화당 후보 아놀드 슈와츠제네거가 이긴 선거인데 캘리포니아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당 대신에 공화당에 투표한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서 조지 레이코프는 유권자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을 찍는 대신에 자신의 정체성이 투사되는 후보를 찍는다고 평가한다. 즉 아놀드 슈와츠제네거 후보가 미국적인 가치와 다분히 미국적인 엄격한 아버지상을 제시하여 유권자들의 정체성과 부합하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의 현 주지사는 나약하고 부패하다는 인상을 깨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선거기간 내내 공화당의 '코끼리'나 쫓는 민주당 선거진영의 실수도 한 몫을 거들었다.

인공지능에서의 프레임이론

인공지능 분야에서 지식 표현의 기본적인 연구 방식의 하나. 인간의 지적 활동을 블록이나 박스로 본 심리학의 연구 방법에 대해서 인간의 지식을 프레임이라는 데이터 구조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언어 이해, 패턴 인식, 문제 해결 등과 같은 지적 활동을 일반적으로 외부로부터의 입력과 내부 프레임과의 상호 작용으로 보는 연구 방식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이론'을 통한 기존 선거결과의 해석이나 향후 선거와 정치운동에서의 방법론 제시는 폭이 넓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노무현의 '코끼리'를 쫓으면서 지리멸렬했었고, 반면 현재의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정치공세(코끼리)를 부인하고 수습하느라 전전긍긍이다. 진보정당인 민노당은 국민들을 이끌어 낼만한 '코끼리'를 개발하지 못하여 그 많은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표를 다 놓치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당시의 미국 내 선거결과와 민주당원의 패배감에 편승하여 복음서처럼 행세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선거를 정치구호와 수사학으로 협소하게 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도 읽어보고 생각하여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 / 유나영 역 / 삼인 / 2006.04.14 / 235p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교보 특별판)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와이즈베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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