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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는 사람들도 눈으로 입으로 함께 메밀전을 부친다.
ⓒ 이철원
▲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 오일장을 알리는 안내문이 보기 좋다.
ⓒ 이철원

"수해는 수해고, 추석은 추석이지요."

추석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지난 여름 큰 수해를 입었던 강원도 평창 읍내에 5일장이 섰다.

"수해 복구에 추석은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물음에 장을 보러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래도 명절은 치러야지요"라고 답했다. 주민들은 수해의 흔적은 상관 없다는 듯 이리저리 시장통을 들썩이며 명절 분위기를 돋우었다.

[메밀전] 상에 이거 없으면 헛차례

▲ 평창시장 골목에는 메밀부치기 전문점이 즐비하다.
ⓒ 이철원
▲ 메밀부치기.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다.
ⓒ 이철원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창 장날의 시장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명절 손님은 바로 메밀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도 유명한 평창에서는 '메밀전을 차례상에 올리지 않으면 헛차례를 지낸다'고 할 정도란다.

들기름을 두른 소당(부침용 솥뚜껑) 위에 세로로 길게 찢은 절인 배추와 파를 몇 가닥 올려놓고 메밀 반죽을 가장자리에서부터 두르면 얇으면서도 투박한 메밀전이 완성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투리 한 조각을 얻어먹은 것처럼 즐겁다.

20소당에 1만원씩 하는 메밀전은 30분에서 1시간 가량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가져갈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죽이 다 떨어졌대요, 어떡한대요" 하는 소리가 내 차례에서 들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시장 골목에만 10여 곳에 이르는 부치기 전문점에서는 하루종일 메밀전 부치는 기름 소리와 냄새가 진동한다. 메밀전이 명절을 맞는 평창 장날의 명절분위기까지 지글지글 부쳐준다.

[메밀전병] 전병과 전은 찰떡궁합, 아니 '메밀궁합'

▲ 총대처럼 길어서 '총떡'이라고 부른다는 메밀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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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까지 와서 거들어줘야 한다.
ⓒ 이철원
메밀전과 함께 궁합을 맞추어내느라 덩달아 바쁜 음식이 메밀전병이다.

'총떡'이라고도 불리는 전병은 만두소같기도 하고 메밀전 위에 김장속같은 매운 맛의 속을 얹고 보쌈하듯이 둘둘 말아서 만든다. 고소하면서도 심심한 메밀전과 자극적인 속의 맛이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총떡을 만들 때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잡채나 신 김치 또는 남은 음식물을 버무려서 넣기도 하는 등 지역마다 집집마다 제 멋대로. 평창에서는 천사채라고 하는 해물채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메밀전병 역시 만들어놓기가 무섭게 빈 쟁반으로 돌아온다.

덕분에 명절 대목 메밀전 점포에서는 일손을 도울 만한 아이들이며 학생들까지 온 가족이 총동원된다. 부치기나 전병 외에 전이며 튀김까지 만들며 그들은 음식과 함께 추억을 만든다.

[송편] 휴양지 차례에는 간편하게 떡집 송편을

[왼쪽-떡집] 올해는 송편을 사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오른쪽-나물 파는 할머니] 도라지껍질과 삶의 껍질을 함께 벗기는 듯 하다.
ⓒ 이철원
추석음식의 대명사는 역시 송편. 올해는 직접 만들지 않고 떡집에서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수해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인근 콘도며 펜션 등 휴양지에서 차례를 지내기 위해 송편사러 오는 관광객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새벽 2시부터 일어나 송편을 쪘다는 시장 안쪽 떡집의 떡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시장골목을 나서면 눈에 익은 이런저런 물건들이 시골장터를 호위한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캐온 약초며 더덕·도라지·과일·생선·구운 김·생과자·족발·신발 등 시장물건들이 즐비하다. 약초가게에 들른 어떤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고르다가 10만원이 넘어서자 "아저씨 계좌번호 적어주드래요" 하며 외상 구입도 불사한다. 단골고객들만 가능한 이야기란다.

"수해 때는 물건 펴기가 미안했는데..."

▲ 오랫만에 시장 냄새가 좋아요.
ⓒ 이철원
"지난 여름, 수해났을 때 즈음의 장날에는 물건 펴놓기가 미안했지요. 집이며 밭이며 다 떠내려가서 정신없는 사람들에게 어디 물건 팔자고 할 수가 있어야지요."

도라지 껍질을 벗기던 할머니는 지난 여름 5일장 분위기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땐 외지에서 여행 오던 사람들까지 발길이 돌아서서 서운하더만. 이제야 급한것들 복구도 좀 됐고 명절 오니까 시장 냄새도 좋아." 제수용품 팔던 할머니가 거든다.

아직도 끊긴 다리며 패인 밭둔덕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는 2006년 평창은 그렇게 추석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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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부일보 기자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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