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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미술관' 입구 작가명과 이번 전 주제인 '당신은 누구세요?(Who are you?)'가 보인다
ⓒ 김형순
팝아트는 현대미술사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긴 하나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로 그런 낯섦을 씻고 친숙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푹푹 찌는 더위에 이런 유쾌한 그림감상이 색다른 재미를 맛보지 않을까 싶다.

이번 팝아트전에는 권기수, 낸시랭, 박용식, 손동현, 신창용, 안수연, 이동기, 전경, 최병진이 참가했다. 그들 나름으로 개성이 강하고 발상이 톡톡 튀어 관객들은 찬찬히 비교하면서 보면 재미를 더 할 것이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캐릭터를 점과 선, 혹은 형태와 색채처럼 사용했다는 점이다.

가벼움이 무거움보다 낫고

작가들은 관객들에게 '당신은 누구시죠? 혹은 어떤 사람이시죠?(Who are you?)'라고 말을 건네며 가벼움과 상쾌함이 무거움과 엄숙함보다 낫지 않느냐? 고 조용히 묻는 것 같다.

사실 한국팝아트는 얼핏 보면 상업미술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주류도 대세도 아니기에 순수미술가 마찬가지로 상업성이 적은 미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팝아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오랜 유교사회의 전통이나 사회적 엄숙주의라는 벽이 쉽게 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부를 깨면 사회는 분명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확신했던 마광수는 이에 도전했다가 호된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 낸시랭 '타부 요기니(Taboo Yogini)' 복합매체 145×97cm 2005. 작품 앞에 선 낸시랭 깜짝 포즈로 촬영에 응한다. 아래, 작가포즈가 작품캐릭터와 너무 닮아 신기하다
ⓒ 김형순
한국 팝아트에 불을 붙은 사람은 역시 자신이 팝아트의 아이콘이 된 낸시랭이다. '타부 요기니(Taboo Yogini)' 시리즈로 유명한데 이번 전시회에는 '깊은 아픔'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방황하며 속은 부드러운 인간의 살을 지녔으되 겉은 남을 찌르는 금속의 창을 들고 있는 아픔을 뜻한단다.

작품을 몸으로 구현하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제목은 '스윙어(Swinger)' 위풍당당한 워킹으로 시작됐다. 테니스 복장에 라켓을 들고 공을 받아치는 시뮬레이션, 공이 라켓에 닿는 제스처를 취하면 영상에 그려진다. 보통 때 별로 하는 운동이 없어 몸의 유연성은 떨어져도 전쟁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장군의 심정이지만 이런 수행이 너무 즐겁단다.

보다 공평한 사회를 염원하며

작가는 이 퍼포먼스 주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기에 스포츠에서처럼 반칙이 생기면 퇴출시킬 수 있는 공정한 정신,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통하는 이상사회를 보고 싶단다. 그렇지만 사회는 처음부터 불공평한 점이 많은데도 무조건 평등해야 한다는 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낸시랭 퍼포먼스를 보고나니 순위를 매기는 연중행사인 미스코리아대회가 그렇게 촌스럽게 보일 수가 없다.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면 통쾌할 것이다. 사실 사치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은 즐기는 데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재고, 따지고, 싸우고, 점수를 매기느라 그럴 시간을 다 놓친다. 이런 면에서 팝아트는 즐기는 정신과도 통할 것 같다.

▲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낸시랭. 사회적 반칙이 없는 공정한 이상사회에 대한 염원이 그 주제. 오른쪽은 퍼포먼스에 대한 작가의 간단히 설명. 아래는 이에 열광하는 관객들
ⓒ 김형순
사회적 터부를 깨는 여자라는 역할에 대한 질문에 던졌더니 낸시랭은 터부를 깬다기보다는 작품을 통해서 그런 것에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작품의 연장선이란다. 일체의 움직임이 예술이 된다면 이보다 더 치열한 삶이 또 있을까 싶다. 자기 삶에 열렬한 참여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모두 함께 같이 이 즐거움을 나누는 것(Happy together)이 그의 작은 소망이란다. 퍼포먼스 후에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테니스공을 나누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모든 미술사조가 시대를 반영하듯 팝아트는 주로 박탈감과 소외감이 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필연적 과정일지 모른다. 이 사조의 원조는 물론 앤디 워홀(1928~1987)이지만 한국인으론 백남준이라고 할 수 있다. 40년 전부터 이미 그는 참여와 소통이라는 코드를 가지고 이런 정신을 구현했다.

그와 형제처럼 지낸 J.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했고, 그에게 큰 영감을 준 J. 케이지도 "지극히 평범한 것조차 미적·예술적 가치가 있다"했다. 이런 정신은 바로 예술의 경계를 넘어 문화 민주화에 기여한 바도 크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그것이 제대로 소화되고 수용될 때 보다 선진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난 그림들

▲ 신창용 '결투', '가르침(아래)' 145×97cm 2005. 이소룡과 그 옆에는 작가가 등장하는 그림. 이런 유쾌한 상상은 작가와 관객 모두를 즐겁게 한다
ⓒ 김형순
이런 점에서 다소 돌출적인 작가 신창용은 소개한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 이소룡이 나오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에 작가가 등장한다. 이런 엉뚱한 상상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전엔 그런 생각도 감히 못했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통념이 이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자기검열 없이 뭐든지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손동현 캐릭터는 신창용과는 좀 다르다. 할리우드 스타 '터미네이터'를 그리면서도 영어이름을 한자식으로 표기하는가 하면 인물화는 미세한 동양화 기법의 붓질로 그려냈다.

▲ 이동기 '6개의 아토마우스(Six Atomauses)' 캔버스에 아크릴릭, 120×160cm 2005.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결합한 '아토마우스' 연작
ⓒ 김형순
또 하나의 엉뚱한 상상력이 낳은 캐릭터 작가 이동기는 아예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하나로 결합시켜 버렸다. 작가는 평소에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이 무의식속에서 이룬 나타난 것이지만 개인적 개조와 동시에 사회문화적 배경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혼란과 질서 속 새로운 비전을

최병진 작가의 '카오스모스(Chaosmos)'는 거인이라 해도 좋고 괴물이라 해도 좋다. 하여튼 혼란과 질서의 합성어인 이 제목은 작가의 의중을 약간은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유기적인 형태를 띤 기인이 합작된 모습이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듯 과학자가 로봇을 만들듯 작가는 사람과 기계의 중간자를 만들었다.

▲ 최병진 '카오스모스(Chaosmos)' 캔버스에 유화 162×130cm 2005. 인간이면서 기인으로 작가의 독특한 발상이 낳은 캐릭터이다
ⓒ 김형순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과 열정이 들었을까 싶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웅대해 보이기도 하는 이 중간자는 작가자신인지도 모른다. 여기엔 작가의 미래지향적 꿈과 비전이 담겨있어 보인다.

▲ 권기수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Run Run Run)' 설치작품 2005. '동그리'는 전시장 벽을 타고 기차놀이 하듯 이어진다
ⓒ 김형순
권기수의 설치작품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파스텔 톤의 캐릭터 '동그리'는 형형색색이 띠고 있고 모양도 앙증맞아 볼수록 마음이 유쾌해지고 즐거워진다.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이런 현대미술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놀랍다.

이번엔 그의 또 다른 작품 '검은 숲'을 내놓고 있는데 앞의 그림과 다르게 평면으로 처리되어 더 안정되고 더 편안해 보인다. 게다가 '동그리'가 울창한 숲 속에 앉아있으니 그 유쾌함이란 절정으로 치닫는다. 팝아트 형식이 더해지니까 더더욱 재미있다.

▲ 권기수 '검은 숲(Black Forest)'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227cm 2006. '동그리'는 울창한 검은 숲 속에서 더욱 유쾌해 보인다
ⓒ 김형순
사실 초기 팝아트는 아주 낯설고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범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쾌하냐 불쾌하냐가 뭐가 문제인가. 낸시랭 말대로 팝아트 식으로 다시 말해서 정말하고 싶은 대로 자유분방하게 창작활동을 하다보면 현대미술의 최고 가치라 할 독창성을 만나게 된단다.

이 밖에도 이번 전에는 전경의 '교차'와 단순해 보이지만 뭔가 마음을 시원하게 터주는 안수연의 '레인보우 마우스'도 볼 수 있다. 박용식은 아예 개와 쥐 등 사람들과 친숙한 동물을 그림 속에 가두지 않고 관객들이 직접 만지고 싶은 유혹이 들 정도로 전시장 곳곳에 배치했다. 하긴 그래야 진짜 팝아트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금호미술관 홈페이지:www.kumhomuseum.com
주소:110-190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연락처:(02) 720-5114 
입장시간:10:00~18:00 월요일: 휴관
성인:4000원, 학생(초중고):3000원, 어린이: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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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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