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무상통 마을 김방 상복 신부님과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하시는 어머니
유무상통 마을 김방 상복 신부님과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하시는 어머니 ⓒ 지요하
어머니의 유무상통 마을 하루 체험은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좋은 질감을 어머니께 선사한 것 같다. 이웃 할머니들께 '자랑'을 하시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그 세 가지 정도의 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나는 유무상통 마을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계시는 김방 상복(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관한 얘기다. 또 하나는 유무상통 마을 성당의 성상(聖像)들과 갖가지 조형물, 그리고 특이한 미사 분위기에 관한 얘기다. 마지막 하나는 거기에서 본 수많은 노인들의 행복한 생활에 관한 얘기다.

"해간 그 신부님은 증말 별난 분이여. 얼마나 온화하시고 자상하신지 물러. 얼굴부터가 신선처럼 생기셨어. 그렇게 맑고 정스러운 얼굴을 내 생전 처음 봤다니께. 아마도 노인들을 돌보면서 노인들과 함께 오래 사셔서 얼굴이 자연 그리 되신 것 같어."

며칠 전 둘째 아들도 함께 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셔서, 어머니의 그 말씀에 내가 보충을 해드렸다.

"그 유무상통 마을에 들어가 살게 되면 노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린이'들이 될 거예요. 한 세상을 온갖 풍상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일단 거기에 들어가면 모든 욕심을 버리게 될 것 같아요. 당신 스스로 그것을 추구하면서 노인들 속에서 노인들을 욕심 없는 삶으로 인도를 하시니 자연 신부님 얼굴이 신선 같은 모습이 되실 거예요."

유무상통 마을(미리내실버타운) 뜰에서 김방 상복 신부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
유무상통 마을(미리내실버타운) 뜰에서 김방 상복 신부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 ⓒ 지요하
어머니는 유무상통 마을(미리내실버타운)의 휴게실에서 김방 상복 신부님이 '굿자만사(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 형제 자매들과 어울리시는 긴 시간 내내 당신 곁에 어머니를 앉게 하고 이것저것 자상하게 살피고 챙겨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팔십도 흠씬 넘은 늙은이가 한 시도 누워보지도 못하고 긴 시간을 꼬박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도 전혀 힘든 줄을 몰랐다니께. 이상하게 온몸에서 기운이 솟는 것 같고…. 하여간 그 신부님 옆에 앉아 있는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즐겁고 평안했는지 물러."

우리는 이미 성당 안에서, 또 실버타운 건물 안에서 특유의 즐거움과 평안함을 흠뻑 누릴 수 있었다. 성당 안은 물론이고 실버타운 건물 안에는 갖가지 성상들과 조형물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한국적인 이미지를 지닌 것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많은 서예 작품들이 장중한 느낌을 갖게 하면서 김방 상복 신부님이 한학과 서예에도 매우 능통하신 분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성상들은 대개 나상(裸像)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때 한국 교회 내에서 유무상통 마을의 성상들에 대해 '외설' 시비가 일었던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그 외설 시비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를 절감하면서, 그 토속적이고도 한국적인 모습들에서 깊은 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무상통 마을 성당 안의 모습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무상통 마을 성당 안의 모습 ⓒ 지요하
미사는 한마디로 아름다웠다. 장중함과 생동감이 넘치는 미사였다. 미사에 참례하는 이들은 유무상통 마을에서 생활하시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노인들이 부르는 국악 미사곡은 더욱 흥겨우면서도 절절한 느낌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노인들을 배려해서 처음부터 사제와 신자 모두 앉아서 지내다가 '영성체 예식' 때는 모두 일어서서 손을 잡고 국악곡으로 '주님의 기도'를 했다.

그리고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는 신부님이 제대에서 내려와 성당 안을 돌며 수많은 신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5·31'지방선거와 관련하여 '마니페스토(MANIFESTO)'를 주제로 삼으신 강론 내용도 인상적이었고, '이민주일'을 맞아 유무상통 마을 성당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두 명의 베트남인, 한 명의 필리핀인 미혼모들을 제대 앞으로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는 장면(베트남인 여성 한 명은 눈물을 흘렸고…)도 내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2>

'유무상통 마을'은 미리내 성지 바로 옆에 자리한 '미리내실버타운' 건물을 이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유무상통 마을은 김방 상복 신부님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오로지 종합복지원'에 속한 다섯 개 복지 시설 중의 하나이다.

유무상통 마을(미리내실버타운) 외에 무료 노인요양원인 '작은 안나의 집', 무료 노인전문요양원인 '여기 애인의 집', 무료 노인요양원인 '성 베드로의 집', 미혼모들과 미혼모들이 출산한 아기들의 안식처인 '우리 성모님 댁'이 '사회복지법인 오로지 종합복지원'에 속해 있는데, 이중에서 유무상통 마을만이 유료 복지 시설이다.

유무상통 마을 성당 미사에는 ‘복사’가 없다. 노인들께 복사 수고를 맡길 수가 없는 듯...미사를 마치고 홀로 퇴장하시는 신부님
유무상통 마을 성당 미사에는 ‘복사’가 없다. 노인들께 복사 수고를 맡길 수가 없는 듯...미사를 마치고 홀로 퇴장하시는 신부님 ⓒ 지요하
김방 상복 신부님은 16년 전 시골 성당에 계실 때 주변의 무의탁 노인들을 사제관에 모시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도 차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앞으로는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임을 미리 절감하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주일마다 전국의 90여 개 성당을 차례로 돌며 모금 동냥을 하는 한편, 손수 벽돌을 만들며 직영 처리로 2400여 평 규모의 '작은 안나의 집'과 '여기 애인의 집'을 지어 무의탁 노인들을 모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복지행정대학원에서 '복지이론'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재 1급 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손수 네 개 노인 복지 시설의 '시설장'도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김방 상복 신부님은 대학원 공부를 할 때 무의탁 노인들이 아닌 가진 분들 또한 교회의 보살핌 안에서 노후를 편안하고 멋지게 살아야 할 하느님의 귀한 자녀들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분들을 위한 노인 복지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리내 성지 바로 옆에 연건평 6500평 규모의 유료 양로원인 유무상통 마을을 지었다고 한다.

어느덧 10여 년의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유무상통 마을에는 현재 260명의 노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갖가지 취미생활과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노후를 즐겁게 지내고 있다.

유무상통 마을에서 생활하는 노인들 중에는 오랜 공직 생활에서 은퇴하여 연금 지급을 받는 분들도 있고, 자녀를 성직자 수도자로 만들어 함께 살 가족이 없는 분들도 있다. 노인 공동체 안에서 노후를 재미있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집을 떠나오신 분들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가족이 있어서 주말에는 면회를 오는 가족들로 성당과 식당이 다소 붐비기도 한다.

유무상통 마을에서 생활하시는 노인들은 월 40만원씩을 낸다. 그 돈으로 유무상통 마을을 운영하고, 남는 금액으로 4개 무료 복지 시설들을 운영한다. 그러므로 유무상통 마을에서 생활하시는 유복한 편인 노인들은 노인 공동체 안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면서 무의탁 노인들을 돕는 일석이조의 삶을 사는 셈이다.

유무상통 마을의 식당 풍경
유무상통 마을의 식당 풍경 ⓒ 지요하
김방 상복 신부님은 유로 양로원인 유무상통 마을을 통하여 얻는 수익으로 앞으로 더 많은 무료 양로원을 설립하여 돈이 없어 갈 곳조차 없는 수많은 무의탁 노인들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계속적인 '소망'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복음 말씀이 유무상통 마을의 좌우명이라고 했다. 또 '놓아라'라는 한마디가 유무상통 마을의 기본 정신이라고 했다.

"마음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가난함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놓아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태어납니다. 뭔가를 쥐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습니다. 기운이 없어 아무 것도 쥘 수 없고, 쥐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또 손을 펴야 죽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아무 것도 쥐지 않고 모든 것을 '놓은' 상태로 죽습니다. 죽을 때의 그 놓은 상태를 미리 가지자는 겁니다. 모든 것을 버리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놓음으로써 가지는 것, 그것이 유무상통 마을을 존재케 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유무상통 마을은 유무상통 마을에서 살고자 하는 노인들에게 명예, 체면, 학벌 등등 그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버리고 들어오기를 권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융통하고(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가 서로 통하고), 있는 것도 없는 것이고 없는 것도 있는 것이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평등 공생을 하는 세상의 이치, 그 철리(哲理)를 유무상통 마을의 생활 속에서 체득하고 실천하기를 권유한다.

"지난날 모두가 못 살던 시절에는 가진 것이 없어서 버려지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양가족이 없어서, 혹은 나이가 들어 치매라는 병환을 갖게 된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넉넉한 살림살이에도 등을 돌리는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모두가 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오늘의 터전을 일궈낸 고마운 분들입니다. 모두가 노후를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분들이지요."

서울대 한상진 교수의 어머니도 유무상통 마을에서 사신다고 했다. 어머니 면회를 온 한상진 교수와 함께
서울대 한상진 교수의 어머니도 유무상통 마을에서 사신다고 했다. 어머니 면회를 온 한상진 교수와 함께 ⓒ 지요하
10여 년 전부터 외롭고 갈 곳 없는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작은 안나의 집'과 치매를 앓는 분들을 위한 '여기 애인의 집'을 지어 운영해 오면서 비교적 넉넉한 분들도 여러 가지 가정 문제로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실에 그 분들이 노후를 거룩하게 살면서 가지지 못한 노인들을 돕는 삶을 살게 하자는 생각으로 유무상통 마을을 만드신 김방 상복 신부님.

그는 유무상통 마을은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는'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이고, 끊임없이 그 이념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곳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늘 살아 있는 말씀이 되지요. 하지만 유무상통 마을에는 천주교 신자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를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모든 분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유무상통 마을에는 그리스도 교회의 '십계명'을 연상시키는 '우리들의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들의 십계명'은 유무상통 마을(미리내실버타운) 건물의 정문 현관 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그것을 소개해 본다.

1. 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노인
2. 나이를 내세워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노인
3. 늘 웃는 낯으로 칭찬을 잘해 주는 노인
4.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지혜를 보태주는 노인
5. 종교를 인정하며,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노인
6. 취미생활을 즐기며, 멋과 예술을 사랑하는 노인
7. 운동시간을 가지고 있는 노인
8.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맙게 먹는 노인
9. 세상 소식에 밝고, 컴맹이 아닌 노인
10. 돈에 집착치 않으며, 검소한 노인


유무상통 마을 정문 현관 벽에 부착되어 ‘우리들의 십계명’
유무상통 마을 정문 현관 벽에 부착되어 ‘우리들의 십계명’ ⓒ 지요하
이 '우리들의 십계명'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와서 컴퓨터에 넣어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 어머니는 이 십계명과 고루 부합하시는 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9항의 '세상 소식에 밝고, 컴맹이 아닌 노인'에서 '컴맹' 부분이 걸리긴 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컴퓨터를 직접 다루시지는 못해도 컴퓨터와 인터넷 용어를 여러 개나 알고 계시고, 때로는 모니터에 띄워놓는 내 글을 읽으시기도 한다. 그러니 내 어머니는 비록 유무상통 마을에서는 사시지 않지만 '우리들의 십계명'에 고루 부합하시는 분이니, 생각하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나도 어느덧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다. 50대 후반의 끄트머리쯤에 걸려 있으니 미구에 다가올 노년을 생각하며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자면 유무상통 마을 '우리들의 십계명'을 지금부터 잘 참고하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