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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상태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요?

1.환자가 혼수상태인 동안: 보호자는 긴급 상황에 대비해 병원 근처에 상주해야합니다. 이럴 때는 교대할 수 있게 가족이 많은 것이 좋기도 하죠(물론 보험료가지고 나중에 싸우는 거보면 정떨어지기도 하지만요). 대게는 중환자실 옆에 보호자실이 있게 마련입니다. 작은 방인데 냉장고도 있고 TV도 있어서 면회시간이 아닌 경우 잠시 쉴 수 있죠.

여기서 잠깐! 보호자실에도 서열이 있답니다. 오래된 순으로 상석을 차지하고 냉장고도 좋은 위치를 사용할 수 있답니다. 저는 멋모르고 아무도 없기에 대자로 뻗어 잤다가 따가운 눈총 한참 받았답니다. 모두 매초 매분 긴장의 나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괜한 신경전 안하게 눈치껏 버티셔야 합니다. 미운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보호자실에 없는 것을 보면 차마 지하 영안실 가볼 생각은 못하고 괜히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습기: 중환자 실안은 공기가 대게 탁하고 건조해서 가습기가 있기 마련인데 면회 끝나고 나갈 적에 확인 한 번씩 해주세요. 가습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말이죠. 환자들이 가래도 많이 나오고 가끔은 호흡곤란도 오기 때문에 이런 섬세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2. 아버지 눈뜨시다: 어느 날, 눈을 뜹니다. 꼼짝도 않고 있던 사람이. 음식도 호스를 통해 2개월 동안 코로 드신 아버지. 아침 7시30분, 면회가 시작되자마자 가운입고 손은 소독하고 들어가 보니 아버지 코에 호스가 없고 눈을 부릅뜨고 계십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오시며 말씀하셨죠. "새벽에 정신이 드셨답니다." 그러나 정신이 깨어났다고 해서 멀쩡하게 말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먼저 말씀드렸죠? 뇌출혈, 아주 장기전이라고요.

저를 쳐다보시고 옹알옹알 합니다. "뭐라고? 아빠? 나 알아보겠어?" 두 달 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 이렇게 큰가봅니다. 쇳소리만 나고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답니다.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판에 자세히 아버지의 입 모양을 보니 "머리." "뭐? 엉 아빠 머리 수술했어. 아빠." 나는 설명을 하려는데 아버지는 "머리 좀 묶어 정신없어." 참내 저는 이런 순간에 극적으로 울 팔자도 못되나 봅니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나서 입으로 밥 먹을 수 있는게 다행입니다 어떤 분들은 음식 넘기지 못해서 목이나 심하게는 배에 직접 호수로 음식물을 투여하기도 합니다.

3. 안심, 힘내세요: 이때부터는 안심이 좀 되지요. 하지만 지금부터 피로가 굉장히 많이 몰려오면서 조금 게을러질 수도 있지만 조금 더 힘내시고 "일반실 들어갈 때가지만 버틴다(물론 일반실에 들어가면 '퇴원까지만 버틴다' 뭐 이런 식이죠)"라는 각오로 조금 더 힘을 내세요. 굳은 팔다리 계속 주물러 주세요(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계속 누워있기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되거든요. 요구르트나 유아 정장제 등도 꾸준히 먹여 장운동이 잘되게 해야 합니다. 만일 환자가 혼수상태였을 때 눈을 뜨고 있었던 적이 많다면 안약도 가끔 뿌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뇌가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명쾌하고 밝은 소리로 계속 대화를 나누려 노력해주세요.

4. 병원밥 : 정말 성의 없게 나옵니다. 주위 가까운 사람에게 부탁해서 곰국과 같은 영양 듬뿍 음식을 들고 들어가서 먹여주세요. 요즘에는 식당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면회시간이 아침·점심·저녁이기 때문에 식사시간 맞출 수 있습니다). 흑염소나 개소주 같은 경우 저희 아버지는 소화를 잘못시키시고 여기저기 종기 같은 것이 나서 먹이다가 관뒀습니다. 비타민도 부족하니 과일도 갈아서 디저트로 먹이시고요. 참 복잡하지요? 이때 아니면 언제 천사가 되겠습니까? 아, 나 같은 이기주의자도 이럴 수 있구나. 새삼 기분도 좋고 살맛도 납니다.

5. 일반실로 입장!: 반가운 소식이죠. 그러나 진정한 승부수는 이제부터입니다. 대소변 받아내는 것에서부터 휠체어에 앉혀서 목욕시키는 것까지 24시간을 환자에게 얽매이게 됩니다. 뇌출혈로 수술 후 정신이 웬만큼 깨면 일반실로 가라고 하는데요. 되도록 종합병원 일반실에서는 호흡만 가다듬고 재빨리 재활의학과를 알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신체마비가 크기 때문에 물리치료를 잘한다하는 재활의학과를 알아보세요. 많이 지치셨으면 간병인을 한 일주일 쓰시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간병인 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나절이 3만 원 정도, 그리고 하루 종일은 5만 원 정도 하거든요. 굉장히 지치셨을 때 앞으로 갈 길이 머니 잠시 이렇게 쉬어가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 대소변 받는 것에 대해서: 별로 더럽지 않습니다. 이럴 때 남자환자들은 신호를 보내면 오줌받기가 쉬운데 여자환자들은 항상 기저귀를 확인 하셔야 합니다. 오줌통에 조준 잘하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고요. 대변 받을 때는 아랫배를 계속 주물러 주다가 신호가 오면 비닐장갑 끼시고 받아서 비닐에 싸서 버리시거나 화장실에 갖다 버리시면 됩니다. 뭐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만합니다.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밥 먹다가도 할 수 있습니다.

6. 여담: 이때 저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아주 간혹 안부나 물을 뿐 흔한 캔 음료 하나도 가지고 오질 않으니 말이죠. 그래서 꼼수를 좀 뒀습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직장에서 일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관두고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이틀 만에 240만원 걷어줘 줍디다. 겉으로는 뭐 심각한 표정 지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요. 이 정도면 좋은 직장입니다. 그치요? 궁지에 몰렸을 때 되려 큰소리 빵빵 치면서 인간성 파탄이네 실망이네 이런 말을 쓰니 조금 먹히던 걸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는 일반실에서 회복까지 그리고 보험과 재활원 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저 같은 경우는 좀 심한 경우니 너무 겁먹지 마세요. 순간은 금방 가고 그 순간의 깨달음은 영원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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