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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입구 모습. 왼쪽 아래는 '불탑 울타리 부조', 바르후트 스투파, 슝가시대 기원전1-2세기 사암 60×56×16.5cm. 기원전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인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부조 앞면에 코끼리와 영양 등 동물 문양이 소박하고 편해 보인다
ⓒ 김형순
국내 최초로 '인도 불교미술-인도국립박물관소장품전(Buddhist Art of India: Exhibition from the National Museum)'이 오는 28일까지 중앙일보 1층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문화센터 갤러리(구 호암갤러리)에서 열린다. 기원전 2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2천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인도 불교미술의 모습을 시대별, 지역별로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가장 엄격한 계급사회인 고대 인도에서 인간의 절대 평등을 논하는 종교가 태어났다는 것은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난 것으로 비유될 수 있으리라.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인 귀결인지 모른다. 바로 그 당사국인 인도의 불교미술 전시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니 반갑다.

인도 불교 하면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종교를 떠나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원시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유명한 시(게송)다.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시는 중생들의 얽매인 삶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그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가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 시적 상상력과 서정성을 가진 종교가 조형성을 띤 불상으로 표현될 때 그 모습이 어떨까 사뭇 궁금해졌다.

마투라 미술과 간다라 미술

▲ '불두' 마투라, 쿠샨-굽타시대, 4세기. 사암 23×16×13cm 아래는 중앙박물관 '간다라 불상'. 둘이 너무 닮아 놀랐다. 마투라 미술이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확연하다. 그러나 재료에서는 확실히 다르다.
ⓒ 김형순
주요 전시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간다라 미술'과 동시대 미술인 '마투라 미술'과 만날 수 있다. '마투라 미술'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 불교에서 '간다라 미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선 '마투라 불상'의 하나인 4세기 쿠샨-굽타시대 작품 '불두'는 너무나 '간다라 불상'을 닮았다. 마투라 미술과 간다라 미술이 서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미술은 사용한 재료가 확연히 다르다. 마투라 미술은 갠지스 강 유역과 이 지역 부근에서 산출되는 반점이 있는 '적색 사암'이, 간다라 미술은 초기에는 '청흑색 편암'이 쓰이다 3세기 이후부터는 치장 벽토가 많이 사용됐다.

전시장의 또 다른 '불좌상'은 모습이 온화하고 부드러워 백제 불상을 연상시킨다. 간다라 풍의 고뇌는 읽을 수 없다. 강우방 교수는 두 종류의 불상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비교하기도 했다.

"간다라 불상은 대체로 근엄한 얼굴을 하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다.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조건을 자각함으로써 심각한 고뇌에 빠져서 긴장감이 감돈다. 이에 비하여 마투라 불상은 활짝 웃고 있다. 명상 고뇌라든가 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기쁨이 얼굴에 충만하다."

불전 부조, 빼어난 조형미

▲ '불전 장면' 간다라 쿠산시대 2-3세기 편암 24.5×47.5×8.5cm. 이 부조는 대표적 간다라 미술 양식으로 붓다가 불교를 전파하는 장면이다. 로댕 조각을 연상시킬 만큼 조형적으로 빼어난 작품이다.
ⓒ 김형순
2세기 간다라 불입상은 높이가 116cm로, 조각이 정교하고 위엄이 있어 당시 간다라 미술의 높은 수준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이 불상은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머리카락이 길고 옷자락도 입체감이 나는 모습이 특징이다.

▲ '불입상', 간다라, 쿠산시대 2-3세기 편암 116×37×16.5cm
ⓒ 김형순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붓다를 신적 존재보다는 완전한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보았기에 이런 불상이 등장한 모양이다. 다만 젊은 아폴로 같은 얼굴에 로마 황제 비슷한 옷은 낯설다. 이는 간다라 미술이 발달된 곳이 지리적으로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인 인더스강 유역이고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리스풍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 '불탑 장식 부조' 나가르주나콘다 익슈바쿠시대 3-4세기 석회암 96.5×83.5×16.5cm
ⓒ 김형순
'불탑 장식 부조'는 안드라 지방의 것으로 3-4세기 작품이다. 기단과 돔에 장식 부조가 새겨져 있고 보리수도 보인다. 중간에 보이는 항아리는 풍요와 생명을 상징한다. 상단에 그려진 여자들은 아주 동적이다. 세 갈래 장식은 삼보(三寶), 즉 붓다, 다르마(법), 승려(상가)를 뜻한다. 하단에는 당시 부조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모를 동물이 새겨져 있다.

사르나트 불상과 관음보살상

▲ '불입상', 사르나트, 굽타시대 5세기 전반 사암 97×50×19cm
ⓒ 김형순
'사르나트 불상' 코너에 들어갔다. 사르나트 지역은 붓다가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불상은 인도 문명 고전기인 굽타 시대(320-550)에 만들어진 것으로 장엄미와 중압감이 상당하다. 이집트 전성기, 웅장하고 위엄 있는 파라오가 연상된다.

다음은 사르나트 불상과 전혀 분위기가 다른 관음보살 코너다. 관음보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관음보살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개인적 깨달음에 대승불교의 '대자대비' 정신이 덧붙여진 불상이다. 천주교 신자가 예수보다 마리아에 친근감이 느껴진다면 불교 신자는 붓다보다는 관음에 더 마음이 쏠릴 것이다.

▲ 관음보살 좌상' 날란다 팔라시대 10세기 녹니석 70×39×18cm. 이런 관음상은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접근성이 좋아 선호도가 높은가 보다
ⓒ 김형순
관음상은 초기 불교에 결핍된 여성적 감성을 포용하고 있다. 관음(觀音)은 말 그대로 중생이나 민초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보아주고(觀) 들어주는(音) 자비가 넘치는 여성적, 모성적 붓다이다. 붓다에게 직접 비는 것보다 관음상에 비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 '관음보살 좌상' 비하르 팔라시대 10세기 석조 66×42×19cm. 아래는 '타라' 사르나트 프라티하라시대 9세기 사암 26×38×20cm
ⓒ 김형순
'팔라왕조 관음보살상' 코너에는 '새로운 신, 다양한 형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보살상들은 에로틱하고 육감적인 '삼바라' 라마불교 풍이다. '삼바라'는 '결합'이라는 뜻으로 여기선 수행자의 성적 행위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지 않고, 깨달음을 위한 성스러운 수행으로 본다.

그래서 그런지 팔라왕조 관음보살은 정말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유연함과 정교함, 섬세함이 대단히 매혹적이다. 이 코너에는 관음보살 3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데, 누가 봐도 9세기 인도 여신 '타라'를 너무나 닮았다.

종교적 보편성은 21세기에도

▲ '불전을 새긴 상아 장식' 델리 20세기 상아. 높이149cm 지름 33.5cm
ⓒ 김형순
인도 초기 불교는 만인 평등,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난 인간 해방을 선포했다. 그러나 결국 상류층 종교로 둔갑하여 인도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버림받는다. 마치 고려 말에 한국 불교가 쇠약해진 것처럼 말이다.

인도에선 비록 불교가 쇠락했지만 동남아시아와 한중일 등 주변 국가에 널리 전파됐다. 또한 종교적 보편성을 얻고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며 세계 종교로 꽃피었다. 현재는 티베트 불교가 현대 불교의 대표 격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신자 수는 미미하나 여전히 정신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며 사람들에게 보다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제시하는 것 같다. '불전을 새긴 상아 장식'을 보면 불교가 인도인 생활 깊숙이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 마지막 코너에는 인도 불교미술 관련 도서 및 사진도 전시돼 있다
ⓒ 김형순
이 전시회에 나오는 후반부 유물들은 거의 네팔이나 티베트 것이다. 19-20세기 불경이 기록된 '경전화'도 그렇고 불교적 열정도 그렇고 단연 티베트가 돋보인다. 위계적 사회에서도 평등한 인간을, 물질적 빈곤에서도 정신적 풍요를 구가하며 그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사는 것 같다.

각 민족의 고조되고 정화된 최상의 심경을 표현하는데 불상만큼 더 훌륭한 표현 양식이 없다는 생각을 이번 인도 불교미술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었다. 불상은 분명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이자 창조물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마음을 가지고 이런 불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쨌든 우리나라가 이미 7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 '반가사유상' 같은 불상을 낳게 하는데 기여한 인도 불교미술이 고맙고, 현대적 감각의 균형미를 갖춘 세계적 수준의 불상을 형상화한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럽다.

덧붙이는 글 | 일정: 2월 28일까지 관람 시간: '월~토' 10:30~18:00 '수요일'은 21:00까지 
장소: 중앙일보 1층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 연락처: 02-3789-5600, www.kfcenter.or.kr 
주최: 한국국제교류재단, 인도국립박물관 후원: 외교통상부, 주한인도대사관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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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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