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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3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삼성 애널리스트 데이'행사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도석 CF0,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 최지성 디지털 미디어 총괄 사장(왼쪽부터) 등 삼성 수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 연합뉴스 성연재

지난 11일 오전 삼성전자 한 사무실. 올해로 입사 20년차를 넘긴 이상민 부장(가명)이 책상위로 올라가 직원들을 향해 큰절을 했다. 작년 인사에서 '물'을 먹은 이 부장은 이번 정기임원인사에서 상무보로 '별'을 달았다.

그는 "여러분이 도와준 덕분"이라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20여명의 부서원들은 이 부장의 행동에 짐짓 놀라면서도,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한 직원은 "이 부장은 후배직원들에게도 모범이 됐고, 존경받는 상사였다"면서 "이번 인사에서 승진하게 돼 부서 직원들도 기쁘다"고 전했다.

다음날인 12일 오전. 이제 '이 상무보'가 된 그는 다른 새내기 임원들과 함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상견례를 가졌다. 이 상무보는 이 자리에서 개당 수십만원 씩하는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작년부터 윤 부회장이 새내기 임원들에게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지난 2004년까지는 이건희 회장이 그룹 신임 임원들에게 만년필을 선물해 왔다.

이어 이 상무보는 인사팀으로부터 어떤차를 고를것인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르노삼성자동차의 SM7과 현대자동차의 그랜저TG 중 고민 끝에 그랜저를 택했다. 차는 다음날 곧바로 전달됐다.

이 상무보는 "신임 임원 교육을 받으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70여가지 된다고 하더라"면서 "주어지는 것이 많은 만큼 어깨도 더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 작년 3월 16일 LG는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임원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구개발(R&D) 성과 보고회'를 열었다. LG 구본무 회장(가운데)과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오른쪽) 등이 성과 내용을 보고 받고 있다.
ⓒ LG
임원승진 소식 듣자 책상 위에서 큰절

최근 삼성을 비롯해 LG, SK 등 대기업의 정기 인사가 이어지면서, 재벌 임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 임원은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꿈'이다. 말단 직원으로 출발해, 과장-차장-부장 등 20여년의 조직생활을 거치면서 임원이 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대기업의 경우 입사동기 가운데 임원까지 가는 경우는 5%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임원이 되면 그들에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우선 대우가 달라진다. 당장 연봉이 1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삼성전자의 경우 상무보가 되면 1억3천만원 이상을 받는다.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할 경우 연봉은 다시 3천~5천만원 정도 상승한다.

이 돈은 세금이 빠진 실제 수령액이다. 또 성과급 등도 빠져있다. 따라서 성과급과 별도 판공비 등을 포함하면, 연봉은 단숨에 2억원에 달한다.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 약간 적은 1억2천만원대로 알려져 있다.

또 품위 유지 차원에서 여러 혜택도 이어진다. 회사는 이들에게 차량을 제공한다. 새내기 임원의 경우 대개 2천cc 정도의 중형차가 나온다.

삼성의 경우 현대차의 그랜저TG와 SM7(2300cc) 둘 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다. 전무 이상이 되면 별도 운전기사가 배치된다. 차량도 에쿠스와 고급 외제 승용차(사장급)로 바뀐다. LG전자의 경우는 쏘나타 급(상무)-다이너스티 급(부사장)-에쿠스 급(사장)으로 알려져 있고, 금호 아시아나 그룹도 비슷하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그룹은 전무급에 한해 차량이 지원되고, 한화는 부사장급 이상이 돼야 회사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롯데는 대표이사가 돼야 회사에서 차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억대 연봉에 중형차·정밀건강진단 공짜... 퇴직 후에도 특별대우

달라진 대우만큼 복지 혜택도 크게 달라진다. 물론 기업마다 차이는 있다.

삼성은 부인과 함께 서울삼성병원에서 정밀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항문 내시경을 비롯해 MRI 등 고가의 건강진단서비스까지 포함돼 있다. 여기에 비용이 많이 드는 치과진료도 일부 재료비를 빼고, 비용을 모두 지원한다. LG그룹은 건강진단과 함께 손해보험 등 VIP급 상해보상보험도 가입시켜 준다.

또 대한항공은 임원에게 공짜로 국내외를 다닐수 있는 항공권을 제공한다. 해당 임원에겐 국내선 무료항공권이 6장, 직계가족과 장인·장모에게는 1인당 연간 3장씩이 나온다. 국제선 무료항공권도 연간 3장씩 제공된다. 아시아나 임원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하다.

퇴직 이후에도 임원은 여전히 특별대우를 받는다. 삼성은 임원급이 퇴직하면 성우회에서 별도로 관리를 한다. 성우회는 삼성을 퇴직한 임원들의 모임이다. 또 퇴직한 후 최소 1~2년 동안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임금 등 각종 지원이 이뤄진다.

이는 다른 그룹들도 비슷하다. 두산은 2년 이상 임원으로 일할 경우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퇴직 뒤 2년 동안 기존 임금의 70%를 지급한다. 금호 아시아나도 부사장급 이하 임원은 퇴직 뒤 1년간 연봉의 50%를, 사장급은 1년간 80%를 지원한다.

받는 것만큼 포기하는 것도 많다... 임원은 '파리 목숨'?

▲ 왼쪽부터 삼성, LG, SK 본사 사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대기업의 '별'을 달았다고 해서, 임원생활이 꼭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혜택만큼 책임은 더욱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특히 최근 들어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면서 '부장으로 길게 가는 것이 낫다'는 풍조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지난 2002년에 '별'을 단 A그룹의 금융계열사인 정지만 상무(가명·51)는 최근 2년여 동안이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영업업무를 보고 있는 그는 "작년에 명절 빼고 가족들과 오붓하게 나들이를 가본 기억이 없을 정도"라며 "실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정 상무는 "올해로 5년차 임원을 하게 된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운이 좋은 경우"라며 "2002년에 그룹에서 첫 임원이 됐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30%도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기업들의 경우 큰 잘못이 없는 한 임원들에게 3~5년 정도의 임기를 보장해 주지만, 실적이 예년보다 못할 경우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삼성그룹만 보더라도, 상무보에서 '보'를 떼고 실제 '상무'로 진급하는 경우는 40%가 채 되지 않을 정도다.

작년에 한 대기업 임원에서 물러난 후 자동차 부품업체로 자리를 옮긴 이정훈 전무(52)는 "임원이 되면 '평민'에서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신분 상승'이라는 기분도 1년을 넘어가면서 퇴색되고, 업무 스트레스는 훨씬 커진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이어 "실적 이외에도 대기업에서는 조직 내부의 여러 관계들로 인해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면서 "최고층에서 필요없다는 판단이 서면 가차없이 내쫓기는 것이 임원들의 운명"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매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기업의 '별'을 딴 수백여여명의 귀족들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별'들의 화려한 웃음은 보이지 않게 사라진 수많은 '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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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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