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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라는 말의 질감

국제친선관람관을 나온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보현사(普賢寺)로 이동했다. 보현사는 국제친선관람관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기에서도 곱게 한복을 입은 여러 명의 여성 안내원들이 안내를 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남쪽에는 남성 노인 '문화유산해설사'도 많은데, 북쪽에서는 어디를 가든 안내원이 모두 젊은 여성들이고 한복을 입은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일이었다.

▲ 묘향산과 문화유적들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북측 여성 안내원
ⓒ 지요하
보현사는 1042년 고려시대에 세워진 사찰이라고 했다. 한국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는 보현사에는 대웅전·조계문·해탈문·천왕문·만세루·관음전, 그리고 9층탑·8각13층석탑·보현사비·팔만대장경 보관고 등이 있어서 절의 풍성한 규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찰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행 중 누군가가 안내원에게 스님도 계시느냐고 물었다. 법당에 가면 스님을 볼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과연 여러 법당 안에 스님들이 한 분씩 있었다. 예불을 하는 스님도 있었지만, 대개는 법당 안에 무표정하게 서 있곤 했다. 나는 법당 밖으로 나와 뜰을 거닐거나 남쪽 손님들과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스님을 보고 싶었지만, 끝내 법당 밖의 스님은 볼 수 없었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대웅전 법당 앞에 서서 우리 겨레의 평화 통일을 다시금 갈망하는 마음을 안고, 불상을 향해 깊이 허리 굽혀 절을 올렸다. 그리고 올해 82세이신 서장석 어른님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절을 올리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 보현사 대웅전과 8각13층석탑
ⓒ 지요하
이윽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향산호텔로 이동했다. 향산호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속에 크림이 든 작은 빵이 맛이 좋아서 접대원 아가씨에게 몇 개만 더 갖다달라고 했더니 추가로 주문하는 음식은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전날 저녁 민족식당에서도 겪은 일이었다. 빵 네 개를 부탁했고, 기꺼이 미화 1달러를 지불했다.

점심식사 후 30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진 우리 일행은 오후 3시쯤 버스에 올랐다. 묘향산을 떠나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일정이 짧아 묘향산 산행을 해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적이 아쉬웠다. 2시간 정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남들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간밤에 양각도호텔 47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밤 1시까지 과음을 한 데다가, 향산호텔 식당 점심식사 자리에서도 북한산 맥주와 소주를 즐겨 취기가 어지간한데도 잠이 오질 않았다. 차창 밖의 산천 풍경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줄곧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 보현사 대웅전 안의 스님
ⓒ 지요하
나는 북에서 지낸 이틀 동안 북측 안내원들의 입에서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말 끝에 "어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뇌곤 했다. 내가 그들에게 "남측 방문단을 맞아 안내하시느라 수고하시는 분들을 남쪽 통일운동 단체에서 초청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런 초청이 이루어지면 서울에 오시겠습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그들은 한결같이 "통일이 되면 가야지요"라는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통일'이라는 말이 그들에게 과연 어떤 질감을 안겨주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식의 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는지, 또 반드시 통일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통일이라는 주제를 놓고 그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항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로 통일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뇌면서도, 또 통일을 진정으로 갈망하면서도 통일을 주제로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런 모순적인 현실은 언제 극복될 것인가.

나는 통일이라는 말을 발음했던 그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기억해 보았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그 말을 뇌었고, 그래서 내 귀에는 형식적인 말처럼 들렸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다 보니 그들이 우리보다 더욱 통일을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남쪽 동포들의 대규모 방북을 보고 접하면서 우리보다 더욱 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보현사에서 본 묘향산의 한 모습
ⓒ 지요하
그래. 그들은 우리보다 더욱 크고 절실하게 통일을 갈망하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 오로지 통일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큰 확신과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해. 그들의 확신과 희망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대북지원과 남북교류로 나타나는 이 통일운동을 더욱 힘차게 전개해 나가야 해. 북한의 고통 받는 동포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이 길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전쟁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겨레가 서로 싸우고 피를 흘리는 일이 절대로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족속임을 세계에 드러내는 일이며, 세계인의 경멸을 자초하는 일이다.

어찌 생각하면 전쟁은 하나 마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다. 전쟁은 군대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국력으로 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북한의 전반적인 실상은 남한의 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그렇지만 한반도의 전쟁은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될 가능성이 있다).

▲ 묘향산 향산호텔 전경
ⓒ 지요하
평양은 생명이 없는 도시다. 웃음도 활기도 없는 것을 인민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밤에는 불빛마저 없다. 그런 도시에서 아리랑 공연 같은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체제를 수호하려는 의지로부터 작동하는 안간힘일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어떤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평양 시내 곳곳의 건물들 벽에 붉은 글씨로 크게 쓰인 갖가지 구호들 속에서 '선군(先軍)'이라는 말을 많이 보았는데, '군을 앞장세운다'는 뜻일 터였다. 거기에서도 군을 앞세워 체제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후진국 현상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눈부신 발전과 탄탄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아리랑 같은 대축제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세계가 감탄하며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야말로 하늘의 축복이며, 그들 체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결코 <조선일보> 시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나의 솔직한 생각인 것이다.

▲ 향산호텔 식당의 접대원 아가씨와 함께
ⓒ 지요하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누구도 감히 전쟁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형제가 서로 총질을 하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이다.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재벌이나 하는 일이지 일반 백성들이 할 일이 아니다. 형제끼리 싸움질을 하는 재벌들도 송사로나 하지 총을 쏘고 피를 흘리지는 않는다.

한반도가 적화통일이 될 가능성은 1%도 없다. 전쟁에 의한 적화통일 가능성은 물론이려니와 사상 침투에 의한 적화통일 가능성도 그렇다. 남북한의 국력이 엇비슷한 상황이라면 사상 침투가 먹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끝난 게임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제는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구시대의 쓰레기 같은 것들을 걱정하지 말고 형제를 안아야 한다. 북한은 우리가 동포애로 안고 가야 할 대상이지 끝끝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역사의 큰 강을 생각해야 한다. 큰 강물을 만들어야 한다. 강물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개천들이 모여서 내를 이루고, 또 수많은 냇물들이 모여서 큰 강물이 되는 것이다.

▲ 향산호텔 로비의 '묘향산관광안내도' 앞에서
ⓒ 지요하
통일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면 부작용도 엄청날 것이다. 언젠가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이런저런 형태의 많은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야 한다. 갖가지 형태의 수많은 노력들의 종합 속에서 통일이 달성될 수 있고, 가장 지혜로운 통일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늘 미국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대한 경계가 각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의 패권주의와 군수산업의 팽창은 늘 위험 요인으로 우리 곁에 잠복해 있다. 전쟁에 대한 유혹과 여러 가지 압력 요인들을 미국이 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대범해져야 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큰 눈으로 미래를 보며 나아가야 한다. 강정구 교수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우리 나라 자본주의 경제가 망가지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대학 교수의 말 한 마디로 나라가 당장 망하기라도 하는 듯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향산호텔 앞에서 본 묘향산의 단풍이 물드는 한 자락 기슭
ⓒ 지요하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방북'이며 남북교류는 요원하게 보이던 일이었다. 방북이 자유롭지 못해 밀입북을 한 사람들이 구속되고 온 나라가 난리를 맞은 듯 소란스러웠던 때가 불과 10여 전이다. 그게 언제였느냐는 듯 우리는 오늘 대규모 방북단이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을 가고, 묘향산에도 간다. 그 덕분에 나도 평양을 보았고, 부분적이나마 북한의 실상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고, 변하게 되어 있다. 시간은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고, 미래에는 많은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래는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함으로 나는 평양 땅을 밟을 수 있었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더욱 큰 소망과 확신을 가슴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 평양 근처 한 농촌의 벼 베기가 끝난 논과 야산 풍경
ⓒ 지요하
북한은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수 없고, 변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북한 실상이 노출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 그들은 문을 열고 남한의 대규모 방북단도 받아들이고, '아리랑'이라는 집단 예술작품을 만들어서 외국인들도 불러들이고 있다.

그들은 문을 여는 것과 변화를 감수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체제 유지에 큰 부담이 될 터이므로 갑작스럽고 대폭적인 변화는 경계하고 억제하겠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북한 사회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의 물결을 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 변화의 물결이 현재로서는 큰 '강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물결의 존재와 사실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어떻게든 그 물결이 잘 흐르고 커지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함께 가야 한다. 대북지원과 남북교류로 나타나는 통일운동에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한다. <계속>

@IMG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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