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편적으로 성화라고 말하는 그림들의 대부분은 그 느낌이나 분위기가 경건하고 신비하며 장엄하고 엄숙합니다.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종교와 관련한 대부분의 그림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그림을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하고 경건해지며 자신의 모습과과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듭니다.

기독교와 관련한 성화를 보면 대부분은 예수의 죽음이나 부활, 이적이나 병고침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일화나 비유에 관한 이야기들처럼,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인 내용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도 솔로몬의 이야기처럼 널리 알려진 탕자의 비유를 주제로 교훈적인 이야기의 한 장면을 화폭에 담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여러 마을을 돌며 모인 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던 예수가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기다리고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비유로 쉽게 설명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66권의 많은 성경책 가운데 예수가 태어난 이후(61~63년)에 쓰여졌으며, 사도바울의 동역자로서 의사출신이었던 누가가 쓴 책(누가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의 글을 읽어만 봐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매우 생생하고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
ⓒ Rembrandt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어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건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 15:11-32)


▲ 렘브란트(Rembrandt)의 자화상, 1659
ⓒ Rembrandt
위 그림을 그린 작가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사상에 있어 최대의 화가입니다. 유화, 에칭, 소묘,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 등 모든 종류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유화 약 600점, 에칭 300여 점, 소묘 천여 점 등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모든 작품에서 색이나 모양은 모두 빛으로 표현되었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흐름이었습니다. 감상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종교적 정감과 인간심리의 깊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1606년 7월 15일 조이트홀라드주 레이덴에서 제분업자(방앗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레이덴(Leiden)의 화가인 야콥 반 스바넨부르크(Jacob van Swanenburch)에게 배웠고, 14세 때 레이덴대학교에 들어갔으며, 이어 암스테르담(Amsterdam)에 나와 라스트만(Pieter Lastman)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1624년 레이덴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화실을 열었으며, 1632년까지 완전한 독학으로 친척, 이웃노인, 성경책에서 소재를 얻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데, 1632년 암스테르담 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호평을 받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였으며, 화가수련생을 비롯하여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 모두 일찍 죽게 되고 그의 화려한 생활로 인하여 파산선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거의 모두 경매에 넘어갔으며, 슬픔에 빠져 살다가 아들 디도(Titus)가 죽은 다음 해인 1669년,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렘브란트만큼 자화상(약 100점)을 많이 그린 화가도 없습니다. '모자를 쓰고 입을 벌린 자화상', '위엄있는 자화상' '바울 같은 자화상' 등 그가 직접 그린 초상화만을 감상해도 다양하여 재미있을 만큼, 언제나 자신에게 겸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령 유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에칭만으로도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에칭의 모든 기술은 렘브란트에 의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엠마오의 그리스도(Christ at Emmaus, 1648)', '야곱의 축복', '유대인 신부(新婦, 유화)', '세 그루의 나무',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세 십자가 The Three Cross, 에칭)' 등이 있습니다.

▲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세부그림),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 Rembrandt

▲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세부그림),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 Rembrandt
렘브란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위 그림들에서 자비에 관한 기독교적인 인식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바로크 시대의 모든 화가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분위기와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매우 사실적이며 등장인물의 심리적 통찰과 영적인 인식을 간소한 배경과 풍부한 빛, 색채, 매력적인 암시기법을 통하여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을 독자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림을 보면, 아버지와 방탕한 아들은 어둡게 채색된 다른 가족들에 비해 특히 더 밝은 빛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습니다. 오른쪽 앞에 할아버지로 보이는 서있는 사람의 황금빛 붉은 소맷자락이나 아버지의 주홍빛 망토를 두른 모습과 찢어져서 누더기가 된 아들의 색 바랜 옷, 발뒤꿈치까지 아예 다 닳아 없어져버린 신발을 대조시켜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줍니다.

이렇듯 벗겨진 머리에 부랑자처럼 더럽고 추한 모습의 아들이 세상에서의 오랜 방황과 많은 경험, 변화를 겪은 끝에 결국은 따듯하고 풍요로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자기 몫으로 상속받았던 재산은 전부 다 허랑방탕, 허비한 채이며, 돼지우리에서 돼지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허기를 채우며 일하던 헐벗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과거와 잘못, 지금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과 깊은 사랑으로 문 앞에서 서둘러 맞이하고 다독여주고 있는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뒤에 보이는 어머니의 시선과 오른 쪽 할아버지의 표정, 굳게 잡은 손과 고개 숙인 모습도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위 성경의 내용으로 보아, 발을 꼰 채 무표정한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모습은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사뭇 못마땅해 보이기도 합니다.

▲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세부그림),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 Rembrandt

▲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세부그림),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 Rembrandt
보는 바와 같이 이 그림은 어떤 격렬한 감동의 한 장면은 아니지만,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독자에게 환기시키고 있으며, 자태와 인물로 보아 특별한 신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미 아들의 잘못이나 과거는 안중에도 없으며, 아들이 돌아오기 훨씬 더 이전에 벌써 다 용서를 한 것 같은 자애롭고 푸근한 분위기입니다.

그 기쁨이 오래 지속될 것 같은 안정적인 느낌을 주며, 이제는 시간이 흐른 먼 훗날에도 더 이상 서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이 평화로운 느낌입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은 것은 아버지의 가슴에 폭 안겨 완전히 기대어 참회하고 있는 죄인 같은 아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들에게 허리를 구부려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세부그림),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 Rembrandt
바로 이 그림은 앞의 다섯 그림에 비해 그려진 시기가 훨씬 앞인 7년 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뒤에 숨은 듯 보일 듯 말 듯한 어머니의 모습과 표정도 위 그림들에 비해 훨씬 인자해 보이며, 오른 쪽에 앉아 있는 형의 모습도 아버지의 말씀과 사랑에 공감을 하여 다소 체념을 한 듯 부드럽게 누그러진 표정입니다.

앞의 그림들에 비해 전체적인 빛과 색조가 부드럽고 은은하며 어두운 편이이어서 훨씬 더 온화하고 따듯한 느낌을 줍니다. 렘브란트가 처음 이 성경내용과 관련하여 그림을 그리고자 했을 때, 산 같이 넓은 아버지의 품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 생김새는 선하고 근엄하며 거칠어 보이는 팔 벌린 양손과 완고한 나이에서 전체적으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시는 산 같은 느낌의 위엄이 묻어나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신의 존재를 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품에 기댄 아들의 모습에서 나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보는 듯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약한 인간 존재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주고 있으며, 어리석고 지치고 욕심많은 인간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다시 돌아와 쉴 수 있는 은신처이자 이 모든 것을 자애로운 미소로 늘 지켜보시는 신의 넓은 품을 느끼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렘브란트에 대해 앞붙인 약력과 자화상, 그리고 그의 그림은 두산백과사전과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ARC(http://www.artrenewal.org), 그리고 가톨릭마당(http://www.pauline.or.kr)을 참고하였으며, 발췌, 번역, 재정리한 것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