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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1938년 미술관 건물로 지어진 덕수궁 미술관 입구. 하단 돌담길에 붙은 전시회 포스터는 칸딘스키의 1934년 작 '두 개의 환경'을 배경 그림으로 하고 있다
ⓒ 김형순
'20세기 현대 미술의 생생한 교과서'

정동 덕수궁 미술관에서 20세기 현대 미술을 총집합시킨 '원작으로 보는 현대미술 교과서, 20세기로의 여행, 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이 오는 8월 15일까지 열린다.

이번 기획전의 의도는 가능한 많은 관람객에게 현대 미술을 하나의 교과서처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20세기 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 폭을 넓히고 문화의 저변 확대도 이끌어 내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에서만 전시한다는 점이 늘 아쉽다.

1895년 건립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네덜란드 스테델릭 미술관의 소장품 71점과 과천·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42점을 엄선하여, 미술 관련 서적이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20세기 미술 거장의 대표작을 총망라하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그림만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출품 작가는 총 94명으로 피카소, 브라크, 레제, 블라맹크, 로스코, 야블렌스키, 몬드리안, 칸딘스키, 뒤샹, 폴락, 라우션버그, 롱고, 나우만, 쿤스, 데 쿠닝, 앤 조지 등 스테델릭미술관에 소장된 작가 59명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워홀, 저드, 바젤리츠 등 외국 작가 17명과 서세옥, 이불, 최정화, 권여현 등 한국 작가 18명해서 35명의 작가이다.

피카소, 브라크 등 20세기 입체파 대가 소개

▲ 상단 파블로 피카소, '기타가 있는 정물' 1924, 97.5×130cm. 하단 조르주 브라크, '나이프가 있는 정물' 1932, 38×55cm. 우리에게 익숙한 입체파 거장의 그림들
ⓒ 덕수궁미술관
피카소의 <기타가 있는 정물>, 브라크의 <나이프가 있는 정물> 등 이런 입체파는 고전 중 고전이 되어 이제는 우리에게도 낯익다. 사물의 우연한 외양 뒤에 숨어 있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추구하려던 세잔에게서 힌트를 얻어 생겨난 입체파는 20세기 멀티미디어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평면에 삼차원 입체를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혁명적 발상의 전환인가!

모든 예술의 영원한 과제는 시적 단순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일체를 단순화하라! 하는 것이 현대 미술의 명령인지 모른다. 현대미술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바로 그런 점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 때문이리라. '점선면'으로만 재현하는 추상화도 그런 점을 잘 시사하고 있다.

'추상', '표현', '개념'도 결국은 단순화의 다른 이름

▲ 왼쪽부터 홍승예, '유기적 기하학' 2002, 알루니늄판 폴리아크릴에 우레탄. 피터 해리, '무제' 캔버스에 롤러텍스 데이글로 아크릴릭 합성수지 1985, 161×127cm. 몽드리앙의 기하학적 추상화의 후예들
ⓒ 덕수궁미술관
이번 전시회의 3개의 키워드인 '추상', '표현', '개념'도 결국은 단순화 과정을 다른 어휘로 바꾼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입체주의, 기하학적 추상, 서정적 추상, 야수파, 표현주의, 추상 표현주의, 개념 미술,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단순하게 보는 것이 미술 감상법의 지름길이리라.

추상미술은, 몬드리안을 시조로 하는 '기하학적 추상'과 칸딘스키를 시조로 하는 '서정적 추상' 등 두 가지로 나뉜다. 기하학적 추상은 선과 색채의 엄격한 구성에 의한 조형의 원리를 탐구하며, 흔히 차가운 추상이라고도 불리고, 서정적 추상은 색채나 형태에 내면적인 심리를 표한 것으로, 뜨거운 추상이라고도 불린다.

서정적 추상인 로스코의 <무제>는 이번 전시의 백미

▲ 마크 로스코, '무제', 1962, 150×137cm 서정적 추상이라 그런 지 그림 속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듯하고 관람객에게 소곤거리며 말을 거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이다
ⓒ 덕수궁미술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정적 추상을 따르는 로스코의 <무제>이다. 현대 정신의 핵이 되는 단순성의 극치를 이룬다. 외면으로 보기에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여러 삶의 단면과 흔적과 비극이나 황홀 등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듯하다.

칸딘스키의 서정적 추상을 흔히 '음악파'라고 하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정말 음악 연주가 들리는 듯하다. 그림과 사람이 서로 감정과 정서를 교류하면서 앙상블을 이루는 듯하다. 서정적 추상은 기하학적인 추상과 다르게 이렇게 따뜻한 면이 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물과 가스>를 보면 우선 황당하다. 그의 대표작 <샘>도 그렇지만 그의 그림은 기계적이고 삭막하고, 그릇되고, 극단적이며, 완고하다. 회화의 낭만성을 거부하고 색다를 것이 없는 레디메이드에만 관심을 돌리는 것 같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다 보니 관람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왼쪽 마르셀 뒤샹, '물과 가스', 1963, 35×26×6cm. 기성 미술의 파괴자다운 작품, 오른쪽 '자화상', 앤디 워홀, 1985, 101.5×101.5cm. 대중 미디어의 힘을 예언한 작가다운 작품
ⓒ 덕수궁미술관
그는 그림을 개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관람객이 그의 작품을 소유할 수가 없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살 수 없는 그림이다. 돈으로 예술을 사려는 사람에게 황당함과 치명타를 준다. 그래서 화가가 진정한 창조자로 성큼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자본에 주눅 든 작가들의 자존심을 되살려 주고 그 구렁텅이에서 구해 낸 것이다.

대중적 이미지의 힘을 예견한 워홀

미국 사회에 혜성처럼 나타난 워홀은 노골적인 상업주의 명성과 출세 지향, 독창성의 부정과 반복과 차용으로 미술의 전통적 가치를 대한 도전과 부정을 꾀했다. 캠벨수프 통조림과 코카콜라 병과 같은 대량 생산물을 그려 주목받고 당신의 대중 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를린 먼로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았다.

현대 생활에서 대중문화의 힘과 이미지, 스타들의 영향력의 막강함을 그는 이미 간파했다. 정치가보다 가수나 배우가 더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워홀은 바로 이런 대중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대중 미술과 고급 미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폴락, 미국에도 예술가가 있음을 증명

잭슨 폴락은 소위 액션 페인팅의 대가로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창시자이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페인트 통에 구멍을 내고 그 통에 물감을 넣어서 돌아다니는 그림을 그리는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유명하다. 좀 황당해 보이지만 인위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의식의 개입 없이 회화의 표현 효과를 높인 것이다.

▲ 잭슨 폴락, '북두칠성의 반영' 1947, 111×91.5cm. 액션 페인팅의 기수로 미국 추상미술의 창시자다운 발상이다
ⓒ 덕수궁미술관
이런 그림을 당시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신대륙적 방식 즉, 무한대의 자유 정신을 조형적으로 창조해 낸 셈이다. 천국을 거부한 랭보를 좋아했던 폴락은 한 가지 종교 밖에 없고 예술가의 길이 좁은 미국에서 진정한 작가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책이 있다. 벨기에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관한 에세이인데 푸코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제대로 읽고 있었다. 이 작품을 얼핏 보면 정말 파이프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이프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은 두터운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혀 살고 있다. 대부분 미술 걸작은 그 당시에는 미술이 아니었다. 렘브란트, 모네, 고호, 박수근 등이 그랬다. 피카소는 조금 예외적이지만 그 시대의 그림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샹은 거꾸로 1503∼1505년에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보고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뒤샹은 1919년에 콧수염이 그려진 모나리자를 내놓고 '이것이 그림이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아니다'가 '그렇다'이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할 때 역설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진짜 그림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정치와 경제, 종교와 언론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가 신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신문이다. 과거에는 '오마이뉴스'는 신문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가장 신문다운 신문이다'라고.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처럼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것이 가장 종교적이다'라고 했다. 좀 더 쉽게 풀어 보면, 그는 종교적 신(교회에서 말하는 신)과 성서적 신(성서에서 말하는 신)의 일치하지 않음을 폭로하며 교회의 위선과 모순을 비판했다. 그래서 그는 히틀러 암살에 공모했는지 모른다.

▲ 상단 빌 비올라, '의식(ceremony)' 2001 플리르마 모니터 고화질 비디오. 움직이는 사진 처리를 하여 사진에 생동감을 준다. 하단 왼쪽부터 백남준, '라디오 데이', 1993. 로버트 롱고, '무제'(도시 사람들 연구) 1982. 제프 쿤스, '진부함의 도래' 1988. 아블렌스키 '튤립, 화병, 주전자' 1909 카드 보드에 유채.
ⓒ 덕수궁미술관
백남준은 비디오를 종이처럼 사용하여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에서 보듯 현대 미술의 마티에르와 오브제는 다양하다. 사진, 필름, 오디오, 황마, 지푸라기, 밀랍, 금속 재료, 아크릴릭, 합성수지 등 연탄이나 쓰레기까지 미술의 마티에르가 된다.

이젠 낙서까지도 현대 예술의 반열에 끼게 되었다. 27세 나이로 요절한 뉴욕의 흑인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다 미술이 된다. 그만큼 미술의 경계가 넓어졌고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빌 비올라의 <의식(ceremony)>에서 보듯 움직이는 사진과 슬라이드 합성 등 무궁무진하다.

'추한 것도 아름답다'

'추함의 미학'을 요약한 돼지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는 제프 쿤스이다. <진부함의 도래>라는 그림 제목에서 보듯 진부함(banality)이 곧 아름다움(beauty)이다. 아름답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1967년 작 <망치, 톱, 양동이가 있는 사다리>를 보면 '이건 정말 그림이 아니다'라는 말이 절로 뛰어나온다.

▲ 모리스 드 블라맹크, '샤투근처의 마을' 1906, 60.5×73.5cm. 표현주의 작가답게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채와 붓질을 마음껏 구사하였다
ⓒ 덕수궁미술관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표현주의는 격한 감정의 표출을 중요한 기법으로 삼고 있다. 객관적인 사물의 관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보다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이미지, 행동, 의미, 소리를 광적으로 변형시켜 작품에 담아내려 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채와 붓질을 마음껏 구사했던 작가 블라맹크만큼 감정의 표현을 잘 구사한 작가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아펠의 1952년 작 <새와 사람>나 바젤리츠의 1987년 작 <동양 여자>도 이에 못지않다.

한국화가 이불, 기계로 만든 생명 이미지

▲ 이불, '사이보그 W5' 1999, 150×55×90cm 기계로 생명의 기와 이미지를 심어 주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 덕수궁미술관
한국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세계적 작가 최정화나,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우환과 함께 이불의 <기계-생명 이미지>는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기계로 생명의 기와 이미지를 심어 주는 인상을 주어 마치 모두 회화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가들에게는 영감을,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준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민중 미술이다. 민중이라는 말은 영어로도 그냥 민중(minjung)이다. 이는 가장 한국적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 현대화 작업은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이제 초입에 들어선 것뿐이다.

종래 5천년을 내려오던 '왕이 하늘'이라는 왕내천을 20세기를 열면서 '백성이 하늘'이라는 인내천으로 바꿈으로 문명사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차원 높은 인본 사상이자, 인권 사상인 인내천을 미술 작업에 도입한 것이다.

▲ 권여현, '얼굴' 1994 캔버스에 아크릴릭 648×520cm. 80년대 민중 미술의 재해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의 가능성을 열다
ⓒ 덕수궁미술관
이런 80년대 미술을 90년대식 재해석으로 그린 그림이 바로 권여현의 <얼굴>이다. 민중 미술은 외부의 영향 없이 자생적으로 생긴 미술이라 세계 미술계가 놀란다.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식민과 분단 경험이 준 열등감과 패배감을 집단적으로 치유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라 더욱 소중하다.

덧붙이는 글 | '20세기로의 여행, 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원작으로 보는 현대미술 교과서
전시 기간 : 2005년 5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덕수궁미술관 : 전화 02-2022-0616, 이메일 inhye74@moca.go.kr 
전시 전용 사이트: www.deoksugung.com 국립현대미술관 사이트: www.moca.go.kr 
일반권(19-64세) 10,000 청소년권I(13-18세) 7,000 청소년권II(7-12세) 5,000
특별권(65세 이상, 5-6세, 장애자 및 동반자 1인, 국가유공자 및 자녀, 교사)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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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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