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민주노총 소속 금속연맹과 한국노총 소속 금속노련은 24일 오전 10시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바이백 지침의 철회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세계 6대 자동차 메이커로 급성장한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꾸준한 해외공장 증설과 품질향상으로 미국, 중국, 유럽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유수 자동차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GM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올만큼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의 성장세에는 브레이크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해외방문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기업이 자랑스럽다"는 찬사까지 끌어내며 국내외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의 세계화전략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같은 성공신화에 못지 않게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세계화 전략은 국내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국 역구매(바이백, BUY-BACK)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이를 두고 노조나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세계화 전략이 국내 관련 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시키고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중국산부품 역구매 지침' 문건 입수"

24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 본사 정문앞. 민주노총 소속 금속연맹과 한국노총 소속 금속노련은 오전 10시 이곳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의 역구매(바이백) 강압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노조에 따르면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은 지난 1월 회의를 열어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중국 부품을 매출액의 일정 비율만큼 수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의 지침서를 하달했다는 것. 노조는 입수한 내부 문건과 관련 자료에서 확인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 지침서는 또 부품업체가 중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지 않을 경우 올해 안에 중국공장을 설립할 것을 주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이후 신차개발을 할 때 업체선정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고 이들 노조는 설명했다.

한마디로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부품업체가 중국 부품을 역수입하거나 중국에 공동진출하지 않으면 사실상 거래선이 끊길 수도 있다는 '강압적' 지침서라는 얘기다. 만약 이 지침서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현대·기아차그룹은 세계화 전략을 명분으로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노조는 이 지침서의 하달에 대해 "완성사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가장 전형적인 불공정거래행위"라며 공정위에 제소하는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차노조 공동 임단투를 전개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노조는 이날 관련 지침서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협상과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1차로 이들 노조는 지난 1월 3일과 14일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 회의를 열어 이러한 지침을 부품업체에 사실상 하달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현대·기아자동차 왜 바이백 확대 추진하나

현대·기아차그룹이 중국 바이백 확대를 계획한 이유는 대략 두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원가 절감을 통한 이윤극대화와 원활한 중국 진출 도모 등이다. 국내부품업체가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역수입하면 그만큼 부품단가를 인하할 수 있어 현대·기아차그룹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부품조달의 현지화를 요구하는 중국쪽 요구도 만족시키는 격이 돼 중국시장 확대에 '플러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으로서는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일거양득의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부품산업에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부품업체의 중국 진출로 국내의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뿐 아니라 심각할 경우 산업이 공동화 될 우려도 높다. 부품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중소 부품업체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과도 정면 배치된다.

특히 관련 부품업체는 역학관계상 모기업의 '권유'를 '강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중국 진출에 따른 불확실성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또, 이러한 전략은 국내공장의 상대적 비중축소로 곧잘 확대·해석되며 울산·아산 완성차 공장 노동자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부품업체의 동반진출 권유는 해외공장 증설과 생산량 확대 방침으로 이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구조조정설, 일부 부분공정의 이전설 등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고민과 반응

▲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 오마이뉴스 이성규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사실 자체를 전면 부인하지는 못할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의혹은 과장 또는 확대됐다며 적극 진화에 나서고 있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침서가 하달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바이백을 강제한 적도 없다"고 노조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그러나 1월 3일, 14일 회의를 열어 주요 부품업체와 함께 중국 동반진출을 논의한 적은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중국 동반진출 논의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해외로 진출하니까 (주요 부품사) 동반진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국이 부품산업의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고 품질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국내 부품의 품질이 우수하지 않나. 동반진출은 현대·기아차 그룹과 부품업체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관계자는 "중국 시장이 무척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우리나라 보다 더 큰 시장이 형성되고 있지 않느냐"며 "이를 위한 동반진출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가피' - '공동화' 전문가 반응도 엇갈려

전문가들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국내 부품업체의 동반진출을 통한 '바이백'이라면 부품산업의 구조고도화를 위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자동차 부품산업의 몰락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라는 반응이 동시에 터져나오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부품업체와의 동반진출은 그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긍정론에 무게를 뒀다. 국내에 남는 부품업체는 연구개발이나 관리에 치중해 기술력을 높일 수 있고, 생산은 저임의 중국인력을 활용함으로써 부품산업의 구조고도화를 꾀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조 연구위원은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지금도 국내 부품산업은 고용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근로조건도 무척 열악하다"면서 "오히려 중국으로 나가는 것이 고용에 낫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의 전망은 전혀 달랐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바이백 전략은 결과적으로 국내 부품산업의 공동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중국 바이백 전략은 '부품업체의 경쟁력 강화'라는 현대·기아차 그룹의 방침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부품업체의 중국 동반진출은 가격경쟁을 위한 것뿐이지 품질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 부소장은 특히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외자기업에 대한 규제강화 추세 등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인건비 수준이 낮은 것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현대·기아차 그룹은 살아남는지 모르지만 동반진출한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GM대우 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더이상 애국심으로 현대·기아차를 선호하는 현상은 옳지 않다"면서 "국내에서 부품을 조달해 해외로 수출하는 외국계 업체에 대한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