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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부터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김일성방송대학 홈페이지. 정보통신부는 현재 이 사이트에 대해서도 접속을 차단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 우리민족강당

"몸을 까려면 저녁밥을 적당히 먹고 텔레비전을 서서 봐라."
"비만증을 막는 이상적인 음료는 호박우유, 콩은 몸을 까게 하는 식료품 중 하나."


'몸을 까다'라는 표현이 조금은 낯설지만, 소개된 내용은 북한 사람들의 다이어트 비법이다. 지금은 국내에서 접속할 수 없는 북한 인터넷 사이트 '조선인포뱅크'에 지난 8월 소개됐다. 이 비법이 소개됐던 당시 '다이어트'를 북한에서는 '몸을 까다'라고 표현한다는 사실과 북한 사람들의 살빼는 방법 등은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국내 언론들도 조선인포뱅크를 인용해 북한식 '몸 까는' 비법과 '몸 까는데' 좋은 음식들을 보도했던 것은 물론이다. 당시엔 조선인포뱅크를 바라보는 시각도 인터넷상의 정보 교류를 통해 북한 네티즌들과 남한 네티즌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는 등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3개월 남짓 지난 지금, 조선인포뱅크는 '친북사이트'로 분류됐다. 게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2일부터 국내에서는 접속하는 길까지 막혔다. 경찰과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정보통신부가 KT, 하나로텔레콤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게 접속 차단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접속차단 대상 북한 관련 사이트

▲ 정보통신부가 국내에서 접속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북한관련 사이트 '코리아북센터'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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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개월 사이 달라진 사이트의 명암

이번에 함께 접속이 차단된 북한관련 사이트들은 민족통신, 조선신보, 조선음악, 조선인포뱅크, 조선우표, 우리민족끼리 등 31개에 달한다. 정통부는 현재 지난 9일 문을 연 김일성방송대학 홈페이지에 대해서도 접속 차단 절차를 밟고 있다.

대부분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던 이들 사이트들은 북한 체제를 홍보하기 위한 정치색 짙은 사이트들도 있지만, 단순히 북한 기업을 홍보하거나 북한관련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치는 사이트들도 포함돼 있다.

이중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민족통신'과 일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조선신보', '조선통신' 등은 언론사 사이트다. 여기에 올라온 내용들은 국내 언론들이 북한 관련 최신 소식을 인용 보도하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북한서적 전문 사이트인 '코리아북센터', 북한의 조선우표사 홍보 사이트 '조선우표',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리은행' 등은 정치적인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은 상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밖에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이나 '코리아 네트워크'는 해외동포들이 결성한 단체의 홈페이지로, 한통련은 그동안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혀 오다가 지난 10월 회원 146명이 정식으로 고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정통부 "현행 법절차를 따른 것" 하지만...

이런 사이트들이 죄다 접속을 차단당한 것은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53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나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인터넷 사이트들은 불법통신으로 분류되고, 정통부 장관은 불법통신 사이트에 대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접속 차단을 명령할 수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은 53조 1항 8호에 불법통신 행위로 규정이 되어 있다"며 "경찰과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친북으로 분류한 사이트들에 대해 법 절차대로 정보통신윤리위의 심의를 거쳐 접속을 차단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법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행정기관인 정통부가 인터넷 사이트들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법률적 판단을 내린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과 함께 알권리,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자의적으로 제한한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송호창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자체도 문제지만 각 사이트들의 국가보안법 위반여부에 대해 법원의 최종판결이 없는 상황에서 권한이 없는 경찰청, 국정원, 정통부가 인터넷 사이트를 검열해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은 헌법에서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제도"라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인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절차상 문제가 있는 만큼 행정소송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도 "경찰과 국정원이 친북사이트 목록을 만들었고 정통부는 이들의 접속차단 요청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정통부가 정보통신윤리위의 심의를 통해 북한관련 사이트들에 대해 사실상 '불법'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이는 분명 행정기관이 법률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권한 없는 경찰·국정원·정통부의 '불법' 낙인은 헌법위반"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접속 차단의 필요성과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대학생인 이현수(22)씨는 "정통부가 조만간 접속을 차단할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보고 김일성방송대학 홈페이지에 한번 들어가 봤는데 과연 그 내용에 공감할 네티즌들이 몇이나 될까 의심스러웠다"며 "무슨 고대신화도 아니고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신격화 하는 강의 내용 때문에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인터넷의 속성상 어떤 정보가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경우는 없다"며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북한의 일방적인 체제선전의 허점을 짚어주는 비판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정통부의 접속차단 결정에 비판적인 태도를 밝혔다.

김경식(23. 대학생)씨는 "광화문 우체국 6층에 있는 북한자료센터에만 가도 대표적 주체사상 전파 매체인 노동신문을 비롯한 각종 북한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데 인터넷만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북한에 가보지 못한 사람도 문화적 이질감을 털어낼 좋은 정보교류 통로인 인터넷에 인위적인 장막을 치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일부 언론의 표현대로 '북한의 사상공습'을 가장 성공적으로 막는 길은 투명하게 개방하고 네티즌들이 비판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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