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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하지만 기름 보일러에 의지해 혹독한 겨울을 통과하면서도, 기름 좀 아끼겠다고 잠들 때에만 보일러를 가동시켰다. 그렇게 몇 푼 아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도 기름 값이 점점 오른 탓으로 매달 평균 5, 6만 원 정도가 어김없이 난방비로 지출되었다.

낮에는 추워도 별 도리가 없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집에 있는 동안에도 양말을 두켤레나 겹쳐 신고 바지도 늘 두개를 껴입고, 털 점퍼까지 걸친 채 지내야 했다. 그리고 1, 2주에 한번 꼴로 목욕탕에 갔는데, 대부분 그때가 되야 양말 속에 숨어 지냈던 내 발가락을 볼 수 있었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정도로 양말이나 옷을 거의 갈아입지 않고 중무장한 채 겨울을 지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월쯤에 보일러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보일러를 가동시켜도 방이 따뜻해지질 않았다. 이제 겨울도 다 지났으니, 그냥 버텨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방바닥에서 추운 기운이 올라온 탓인지 다음날 잠에서 깨면 온몸이 찌뿌드드하고 심지어 쿡쿡 쑤시기까지 했다. 추위 앞에선 거선(巨船)의 기관과 같은 젊음도 소용없었다.

결국 이웃하는 아저씨께 보일러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더니, "호스에 에어(공기)가 찼을지 모르니, 물을 한번 빼 봐라" 하신다. 호스 안에 있는 물을 빼내기 위해, 밸브 두개를 완전히 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안에 고여 있던 시커먼 물을 몽땅 빼낸 다음, 보일러를 다시 가동시켰다.

급수 펌프가 작동하고, 새로운 물이 공급되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까지 신선해졌다. 다시 방이 따듯해지기 시작했다. 보일러에서 데워진 따듯한 물이 호스를 따라 구석구석까지 매끄럽게 흐르며 순환하는 게다.

한편으로 방바닥은 따듯해졌지만, 내가 몸담고 숨쉬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추운 기운이 올라오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따뜻한 기운이 매끄럽게 흐르며 순환하지 않아 여전히 몸도 마음도 춥게 지내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반면 한 겨울에도 속옷만 걸친 채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춥게 지내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신기할 따름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먹고사는 것도 예전에 비해 좋아지고, 역사가 발전해도 왜 세상은 여전히 골고루 따뜻하지 못한 것일까?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형편을 잘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을까? 이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다'는 식의 삭막한 분위기를 과감하게 쇄신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런 냉담한 세상 속에서 소녀 가장이 되어 병든 엄마와 동생과 함께 발버둥치며 살던 한 소녀가 또 희생됐다. 어떤 이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한다. 한창 꿈을 싹틔울 청소년, 이제 중학교 3학년인 정수경(15)양이 숨지기 전 글로 남긴 기록을 보고, 한참 동안 마음이 씁쓸하고 아렸다.

"나는 우습게도 소녀가장이었고, 아버지도 안 계시는 불쌍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입학금조차 없는 가난한 집의 둘째였다. 이런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오마이뉴스 3월 30일, <객사한 부친. 뇌종양 모친에 생활고... 소녀가장은 목을 맬 수밖에 없었나>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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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한 부친.뇌종양 모친에 생활고.. 소녀가장은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나

수경아! 너를 돕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왜 바보처럼 목숨을 끊어? 인생을 멀리 전체로, 통으로 보면, 반드시 전화위복되어 좋은 날이 올텐데, 왜 좀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렇게 성급하게 극단의 방법을 택해야 했니?

우리 사회에서 흥청망청 소비하던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에 숨어 쌓여 있기에 가난한 여중생에게 학비도 보태줄 수 없는 것일까. 그 많은 물적 자원들이 사람을 자라게 하고, 잠재된 가능성을 개발하고 살리는 데 투자되지 않고, 도대체 어디에 쌓여서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는 것일까. 이젠 그 자원을 흔들어 깨워서 결핍된 사람의 '필요'를 채우고 자활을 돕는 데 아낌없이 투자할 수는 없을까. 그게 바로 함께 사는 길을 트는 '상생의 원리' 아닐까.

불우한 환경에 손발과 꿈이 묶인 아이들도, 유복한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 문화, 의료 혜택을 받는 아이들처럼 풍성한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방편 하나로 10분의 1 기부 운동을 제안해 본다. 빈부귀천을 따질 것 없이 수입이 있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소득의 10분의 1을 소외된 사람, 결핍된 사람, 병든 사람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이다. 10분의 1을 기부한다고 거리로 나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좀 황당한 제안일 수도 있지만, 잘만 되면 이 추운 세상을 사각지대까지 골고루 따듯하게 데울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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