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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최보은, 최민희, 김신명숙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25일 밤 9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에 세 여자가 모였다.

10센티의 뾰족구두를 신은 최보은 영화잡지 <프리미어> 편집장,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저녁밥으로 검은 비닐에 달걀 두개 넣어 갖고 온 김신명숙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인.

남자들이라면 대개 첫 인사로 손에 힘을 꽉 주고 악수를 청할텐데, 이 여자들은 앉자마자 '깔깔' 웃고는 서로에 대한 안부를 건넨다. 인사방식이 남자들과 다르다.

다 모인 지 3분도 안 지나 함박웃음으로 조용한 편집국의 정적을 찢어버린 그들. '여성정치'라는 딱딱한 주제를 도마 위에 올리고 벌이는 입씨름인데, 시작부터 화기애애하다. 전선이 뚜렷하지 않을 불길한 예감. 시작부터 오늘 토론이 맥빠지지 않을까 볼펜 굴러가는 속도만큼 걱정이 빨라진다.

39년만의 여성 정당대표 선출과 박영선 전여옥 이승희 등 3당 여성대변인의 출현을 두고 '여성정치시대'가 도래했다는 전망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한국사회 유명 페미니스트들과 여성 사회운동가를 초청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세 여자의 초전수다'에 흥미가 끌리는 듯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2년전 '박근혜지지론'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최보은 편집장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 25일 저녁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 정운현 편집국장의 사회로 김신명숙, 최민희, 최보은씨가 참석한 가운데 오마이포럼 `여성정치시대 오는가?`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보은에게 박근혜를 묻는다면?

한국사회 정면돌파하는 60년생 쥐띠 여자들
김신명숙·최민희·최보은은 누구?

'여성정치시대'를 논하기 위해 만난 세 여자는 모두 60년 쥐띠다. 한국 사회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마흔다섯 그녀들의 간략한 이력을 정리하면 이렇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인 김신명숙씨는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KBS <미디어포커스> 진행을 맡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여성의 삶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다가, 독일에서 유학하는 2년 동안 그곳 여성의 삶을 체험하면서 여성문제에 대해 확고한 인식을 갖게 됐다. 주요 저서로는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소설 <허난설헌> <미스코리아대회를 폭파하라> 등이 있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평생 언론운동에 헌신해왔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수수팥떡어머니회' 활동으로 자연건강법을 전파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황금똥을 누는 아이> <해맑은 피부를 가진 아이> 등이 있다.

영화전문 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인 최보은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한겨레21>' 쾌도난담'과 <씨네21> 칼럼니스트로 유명하다.
최보은 "시작하기 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왜 이런 토론을 하면 꼭 여자들만 부르죠? 사회자를 남자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토론자로 남자를 불러야지. 사실 여성들의 입장이야 평소에 다 얘기해서 별로 할 말도 없어요. 차라리 남자들이 이런 토론을 하면 신선할 것 같아요. 박노자 씨라던가, 진중권 씨라거나, 말 잘하는 분들 많잖아요?"

알고 보니 60년 쥐띠 동갑에 마흔다섯 아줌마들. 불혹지년의 나이인 만큼 세 여자는 모두 망설이거나 흔들림 없이 평소 지론을 유감없이 펼치기 시작했다.

최보은 "좀 길게 얘기해도 돼요? 박근혜 대표 당선 이후로 나는 수십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온갖 매체가 다 전화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구요. '할 말 없다'고 잘랐어요.

내가 처음 박근혜씨로 문제가 된 게 2002년 3월호 <말>지 인터뷰예요. 그런데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뭐냐면, 아무도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그거예요. (모두 웃음) 날더러 선정적인 페미니즘, 유통기한이 있는 페미니스트, 막 나가는데, 그때 내가 얘기한 건 단순했어요.

박근혜에 대한 지지냐 거부냐 이게 아니라, 정치할 만한 여자들이 정치하면 다 깨지고 발가벗겨지는 현실에서, 정치하겠다는 여자들을 남자들과 똑같이 경멸할 수 있는 한가한 현실이냐, 이런 문제 제기라구요. 그런데 여성들조차도 그때 내가 한 얘기를 두고 '박근혜 지지론'으로 낙인찍고 '미친×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는데 정말 시껍했어요.

지금 누가 나한테 박근혜에 대해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거예요. 박근혜 하나만 갖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탄핵정국에서의 박근혜와 당 대표 박근혜를 보는 건 달라요. 특히 이번에 박근혜 당 대표 이후로 여성정치의 문이 열렸다고 보지는 않지만, 여성 리더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을 무너뜨리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봐요."

김신명숙 "박근혜 씨의 정체성이 뭐냐.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봐요. 하나는 박정희 딸이고, 다른 하나는 생물학적 여성이죠. 박정희 딸은 가부장적 체제에서 나타나는 이미지고, 여성은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려는 측면이 있는 거고. 이건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어요.

남성들은 박근혜 씨를 박정희 딸로만 봤을 거예요. 그러나 이제 여성이 호소력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들 대변인도 여성으로 임명하고, 추미애 카드와 박근혜 카드를 쓰는 것 아니겠어요? 나는 박근혜씨를 여성으로 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봐요. 제1야당 당수가 여성이라는 게 파장을 갖고 있죠. 본인에게 여성의식은 없지만 여성으로서 큰 역할을 하겠죠."

"한나라당이 잘 나가면 여자한테 당대표 맡기겠어?"

▲ 최보은 영화잡지 <프리미어> 편집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보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홍사덕보다는 백배 낫지 않습니까? 김문수보다도 백배 낫고."

최민희 "나는 최보은씨의 글을 읽고 간단한 메시지를 받았어요. '여성 정치인을 따뜻하게 받아들이자!"로. 그런데 박근혜가 되어서 긍정적인 건 뭘까, 또 수구당이든 다소 상대적으로 나은 당이든 정치권이 너무 썩었구나, 그래서 이젠 도덕성이 담보되는 여성으로 개혁적 이미지를 대체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만일 한나라당이 잘나가는 정당이었다면 과연 박근혜가 대표가 됐을까(김신명숙 "내가 그 얘길 하고 싶었어"). 우리 바람과 달리 이미지로 돌파하는 일회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게 우리가 바라는 여성정치인으로 삼을 조건인가. 난 회의적이에요. 추미애도 민주당이 잘 나갔으면 추대됐겠어요?"

최보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여자들이 1인자가 될 수 없어요. <한국일보>에 위기가 없었다면 장명수씨가 사장이 될 수 없었어요. 진보진영 남자들은 '장명수는 가오마담'이라고 비웃지만, 나는 위기국면일지라도 여자에게 기회가 온다면 그 틈새를 뚫고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신명숙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에게 좋은 자리를 줄 때는 매력이 없거나 뭐 그런 경우라고(최민희 "박세일 공동선대위장 체제로 간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 자리가 절대 탄탄하지 않죠."

최보은 "그런 국면이라도 여자들이 들어가면 일단 운신의 폭이 생겨요. 능력에 따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죠."

"여성이 당대표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보호할 수 없다"

정운현 "정치에서 여성은 조직이 없어요. 그러면 돈도 없어요. 이런 현실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1인분의 정치인'으로 대우하기보다, 평소에는 처박아놨다가 저희들이 체면이 안 설 때 활용한다고 하지만, 바로 그 때 치고 들어가서 잘한다, 패거리 안하고 깨끗하고, 여성 정치인에게 기대를 걸 만 하다, 뭐 이런 견해를 이끌어내자는 게 최보은씨 주장 같은데요. 그런 면에서 이건 기회인데…."

▲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민희 "기회인데, 과연 그 인물이 적합하냐는 거예요. 그 여성이 어떤 배경에서 성장해왔냐, 어떤 비전과 리더십을 갖고 있느냐 그게 문제지요. 열린우리당만 해도 김희선 의원이나 이미경 의원이 의정활동을 잘 해오고 있지만, 같은 당내 다른 남성 의원들과 비교할 때 어떤 위치인지... 그 문제 역시 간단한 건 아니죠."

최보은 "한나라당 대표 할 만한 위치에 있는 남자들, 나쁜 짓 많이 했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 박근혜, 인간 추미애, 이렇게 따지면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어떤 남성기자는 박근혜씨를 지목해서 '구사하는 언어는 100마디다, 정책이 비어있다' 등등 비난하지만, 지금 국면에서 나는 박근혜씨가 훌륭하냐 아니냐 논할 게 아니라고 봐요. 노 대통령은 정책이 있나요?"

김신명숙 "나는 여성 스스로 자기 발목에 덫을 치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남성에 대한 대안세력으로 여성정치인을 얘기하니까 전부 다 남자보다 잘 해야 되는 거야. 굉장히 과도한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최보은 "사실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몇 배의 성실성과 능력을 더 요구하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여성에 대해서 카리스마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그 여성 스스로에게 모라토리움을 주자고 주장해요. 그 여성들은 결국 우리 딸들의 병풍이 되어 줄 사람들이거든요."

최민희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저는 여성이 당대표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보호만 해줄 수는 없겠다는 거예요. 여자도 여자 나름이고, 남자도 남자 나름인 측면이 있잖아요. 북유럽에서는 여성의 정치진출이 활발하다고 하는데, 그건 여성들이 정치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춰졌기 때문이에요. 사회적으로 애 키워주는 정책이 되어있거든요."

김신명숙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여성이 정치권에 가야죠. 모두 바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 정치판이 그런 여성을 잘 안 받아들인다니까. 남자들은 (여성이) 예쁜 꽃이거나, 엄마 역할을 할 사람이거나, 그래야 된다구 생각해요. 그나마 박정희 딸이니까 뽑아주지, 누가 여성을 대변한다고 뽑아줘요?"

최보은 "옥석을 따지기 시작하면, 여성들이 사분오열돼요. 대중은 군사독재에서 바로 노무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문민의 껍데기를 쓴 군부 노태우로 갔다가 3당야합한 김영삼, 그 다음에 자민련과 합친 김대중, 그 다음에야 노무현을 용납한 거예요. 박근혜씨가 안 되면 이미경이나 김희선 의원이 절대 당대표 못 돼요. 그 임계점까지는 그룹핑이 되어야 합니다."

최민희 "이게 참, 꼴리는 대로 얘기하기 힘든 게, 밑바탕에는 여성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기울게 돼 있어요. 저는 솔직히 페미니스트도 페미니스트 나름이라고 생각하는데, 민노당 후보로 가는 여자와 한나라당 후보로 가는 여자가, 여자라는 공통점으로 같이 평가받는다? 의문이 들어요."

최보은 "진보 남성 제치고 보수 여성 뽑아주자는 게 아니라, 어차피 꼴보수 남성이 당선될 거라면 꼴보수 여성이 낫다는 거죠."

김신명숙 "(목소리를 높이며) 아니, 우리가 말하는 진보가 얼마나 가부장적인 진보야?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변혁운동이라 일컫는 '68운동'에서 왜 여성운동이 따로 나왔어요? 우리도 80년대 운동이 마찬가지라고. 그때 민주화운동에서 다 같이 싸웠지만, 여자 386 다 어디 있어요? 임수경, 권인숙, 어디서 뭐해?"

"정치 안한다는 결벽증은 버려라!"

▲ 김신명숙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운현 "잠깐만요. 지금 미묘하게 조금씩 올라왔는데요. 여성정치인이 지금 전체 5%인가요? 숫자로 보면 거의 구색에 불과한 위상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쨌든 열악한 상황임에도 여성정치인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고. 2야당의 실세가 되고, 3당의 대변인이 된 현실을 '만개는 아니어도 여성정치의 꽃봉우리가 터지려고 한다' 정도로는 볼 수 있는 겁니까?"

김신명숙 "제도적인 게 필요하죠. 햇볕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최민희 "여성정치인의 공천 30% 약속을 안 지켰죠. 기왕 약속한 제도가 지켜지도록 제도화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여자들이 정치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죠. 그런데, 두 분은 왜 정치 안 하세요?"

최보은 "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고졸에다 이혼 2번, 자격 조건이 안 맞고, 적이 많아."

김신명숙 "나는 이기적이라 안돼. 그리고 괜찮은 여자가 정치권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정치하는 것도 다 남성들이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최보은 "페미니스트 직함 걸고 있는 사람들은 총알받이예요. 남자들이 골치 아파서 안불러요."

최민희 "여성들이 정치 안하려는 것도 문제예요. 그런 도덕성 결벽증을 버려야 돼요."

최보은 "탄핵정국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은데, 탄핵가결 현장은 남성성의 정치 현장이었다는 거예요. 끌어내리고 고함치고…. 이건 남성들의 폭력성이 그대로 드러난 거라구요. 만일 여성의원들이 일정 수 이상 있었다면 그렇게 싸우지 않았을 거예요. 선동적일 수 있는데, 폭력성을 제거하고 이성적인 정치를 끌어낼 수 있는 게 여성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운현 "화제를 바꿔서 말해볼 게요. 여성들의 원내 등장에 앞서서, 여성계는 준비가 좀 되어 있어요? 정치인으로서의 준비 말입니다."

최보은 "여성계보다는 사회의 준비가 덜 돼 있죠. 얘기할 때 여성에게 화살을 돌리는 방식은 문제점이 있어요."

최민희 "괜찮은 후배들에게 '너 정치해라' 그러면 십중팔구 '애도 잘 못 키우는데 어떻게 더 이상의 고통을 아이에게 주냐' 그래요. 정치판 자체에서 여자를 받아들이는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아줌마들이 정치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남자 체면 말이 아니다"

▲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운현 "이번 총선에서 여성정치인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까?"

최보은 "박근혜씨가 여성을 많이 참여시키겠다고 했는데, 이건 고무할 일입니다. 추미애씨는 자기 고충을 이해해달라, 여자인 것만으로도 희망주지 않느냐, 양해를 구하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호주제 폐지에 서명 안할 필요는 없죠. 호주제 서명 안한 유일한 여성의원이잖아요."

최민희 "이번에 대변인이 된 여성들은 일정하게 총선 판에서 큰 역할을 할 거라고 봐요. 과거 남자 대변인보다는 훨씬 잘 하고 있고. 한나라당이 박근혜 중심으로 건전보수당이 되고, 민주당도 추미애씨가 제대로 추스려서 갔으면 좋겠어요.

지금 정상이 아니잖아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고달퍼요. 양당 여성이 모성과 여성성을 잘 발휘해서 판 정리를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 역할이 여성 리더십으로 인정받겠죠."

정운현 "나는 이번 총선에서 여성이 3분의 1만 당선됐으면 좋겠어요. 남성 정치인들이 가진 기존의 이미지, 돈 부패 등 그런 것만 탈각할 수 있어도, 그런 분위기만 조성해줘도, 우리 정치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체면이 오늘 말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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