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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한글학회가 개혁을 외면한다는 이유로 적잖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허웅 선생의 별세로 '수장'을 잃은 한글학회는 최근 △ 학회장을 직선-단임제로 뽑고 △ 이사장과 학회장을 서로 다른 인사가 맡고 △ 좀더 젊은 인사들로 집행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안팎의 여론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지난 13일 열린 '2004년도 한글학회 평의원회-정기총회-이사회'에서 위와 같은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이사 중 최연장자인 김계곤 이사장(78·경인교대 명예 교수)의 학회장 겸직을 최종 결정, '경로당 학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사 겸 부회장이던 김 이사장은 지난 2월 한글학회 재단 이사회에서 이사장에 오른 뒤, 13일 한글학회 이사회에서 학회장에까지 선출된 것이다.

▲ '한글과 한글학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13일 서울 신문로 한글회관 입구에 한글학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위를 하고 있다.
ⓒ 신향식
한글학회 학회장은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간선제로 선출하며, 얼마든지 연임이 가능하다. 특히 최현배 선생부터 허웅 선생까지 관례에 따라 이사장이 학회장을 겸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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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웅 선생의 경우 지난 70년부터 2004년 1월, 향년 86세로 별세할 때까지 무려 35년간 이사장과 학회장을 겸직해 '후진 양성보다 장기 집권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봉원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은 "관례대로라면 김계곤 이사장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사장과 학회장을 모두 맡을 게 확실하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이사장과 학회장의 겸직 및 종신제'가 굳어져 한글학회가 발전하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부에선 김계곤 이사장의 대표성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이번 평의원회에서 이사 11명의 선임을 위한 투표에서 그는 득표수에서 5위에 그쳤다.

그동안 일부 평의원들과 한글운동단체들은 이번 총회에서 '한글학회 이사장과 학회장은 동일 인물이 맡지 말고, 학회장은 총회에서 평의원들이 직선으로 선발하며, 1회 단임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개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평의원회에서 임원 선출을 위한 회칙을 개정한 뒤 정기총회에서 직선제로 학회장을 선출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한글과한글학회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공동대표 송현, 이대로, 이봉원, 밝한샘, 김영명·이하 한사모)은 지난 6일 '한글학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 한글학회가 새 시대에 맞게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사모는 총회 당일, 한글회관 입구에 한글학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사모는 김계곤 명예 교수가 신임 이사장에 뽑히기 직전에 그를 방문, 임원 선출 방식의 개선을 간청했으나 묵살 당했다고 밝혔다.

13일 정기총회에서도 평의원인 김정수 한양대 교수가 '임원 선출에 관한 회칙 개정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한글 학회 평의원과 회원 여러분께'라는 문건에서 "학회는 참신한 인재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하고, 회원들의 능력과 정성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지도부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면서 '회칙 개정안'을 발의했다. 학회장을 총회에서 직선제로 뽑고, 연임을 하지 못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가 발의한 안건은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 평의원회에서 재청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정기총회에서는 한 명이 재청을 했으나 심의되지 않은 채 내년 총회에서 다루는 것으로 처리됐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회원 대부분이 속으로는 개혁안에 공감을 하면서도 사제 및 상하 관계로 얽혀 있고, 학회 선배들인 이사들의 눈치를 보다보니 적극 나설 수가 없다는 게 이유다.

특히 김계곤 이사장이 평의원회와 정기총회, 이사회에서 "관례대로 내가 학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후배들이 이의 제기를 하기가 어려웠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이사들이 자신들 중에서 학회장을 뽑아야 하는데 '내가 학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김계곤 이사장 앞에서 어떻게 이의 제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임원 선출 제도에 큰 문제가 있는만큼 총회에서 직선으로 학회장을 뽑을 수 있도록 회칙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정수 교수는 "김계곤 이사장이 (건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과 훈계만 늘어놓았다"면서 "같은 패거리들이 같은 부류의 인사들을 이사로 뽑다보니 한글학회의 개혁은 백년하청"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일부 평의원들은 사적으로 전화 통화를 할 땐 개혁에 동의하면서도 정작 회의장에서는 (선배 교수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일부는 회의 뒤에 슬그머니 다가와 '수고했다'고 인사만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은 "노인들이 후학들을 밀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앞장서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한글학회의 영향력이 점점 축소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글학회를 잊고 새롭게 국어운동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20여년동안 이사로 일하다 평의원으로 물러난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글학회는 100년의 전통을 지닌 최고 역사의 학회로서 그동안 한 일이 참으로 많지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혁신을 해야 한다"면서 "민족의 학회로서 모든 일을 타당성 있게, 객관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는 "한사모의 주장을 한글학회 집행부가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파국으로 치닫지 말고 한글학회를 개혁하고 힘을 합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한글학회의 김계곤 이사장 겸 학회장은 "이사장과 학회장은 업무 성격상 분리하기가 곤란하고, 최현배 선생과 허웅 선생도 별 문제 없이 이 방식대로 이끌어 왔다"고 반박했다.

김계곤 학회장은 "자꾸 이사장과 학회장 겸직에 문제 제기를 하고, 나이를 따진다면 최현배 선생과 허웅 선생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가당착에 빠진다"면서 "한글학회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한사모 회원들이 옆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그런 소리를 하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체적인 개혁 일정은 없지만 새 이사진에서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면서 "한사모의 건의 중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반영하기 어려운 것은 반영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계곤 학회장은 "서로 원수도 아닌 만큼 한사모와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풀겠다"면서 "개혁을 할 일이 있으면 차근차근 해결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12년간 한글학회 감사를 하다 이번에 이사에 오른 최기호 상명대 교수는 "개혁을 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이로 인해 분열된 모습을 보이면 곤란하다"면서 "내년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으므로 개혁안이 일부 수용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계곤 이사장의 연세가 적은 게 아니지만, 재단과 학회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 등으로 그 분이 학회장을 겸직하는 것 이외엔 대안이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13일 새로 구성된 한글학회 이사진엔 김차균(충남대 교수), 권재일(서울대 교수), 김승곤(건국대 명예교수), 리의도(춘천교대 교수), 김계곤(경인교대 명예교수), 최기호(상명대 교수), 김종택(경북대 교수), 배해수(고려대 교수), 하치근(동아대 교수), 이돈주(전남대 명예교수), 김석득(연세대 명예교수) 등 11명이 뽑혔다. 감사에는 오동춘(짚신문학회 회장), 조오현(건국대 교수), 명예이사에는 이강로(전 단국대 교수), 김용태(전 부산지회장)씨가 각각 선출됐다.

"시대와 처지를 정확히 읽지 못하는 김계곤 회장이 안타깝다"
이봉원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 인터뷰

▲ 이봉원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회 회장
- 한글과 한글학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13일 한글학회 정기총회에 앞서 한글회관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평의원들과 이사들에게 한사모의 의견을 얼마나 전달했습니까?
"이날 학회 앞에서 관련 단체들의 대표 12명이 참가하여 우리의 뜻을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정기 총회 석상에서도 여러 분들이 우리와 같은 주장을 하여 한글학회 역사상 처음으로 설전도 벌였다고 합니다.

내년 3월 정기총회 때 정관 개정 등 여러 안건에 대해 다시 논의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내년에는 틀림없이 민주적인 내용으로 정관이 변경되리라 봅니다."

- '한글학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한글학회는 학회 회원들만의 단체가 아니고, 민족의 단체, 국민의 단체입니다. 따라서 한글과 한글학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글학회의 문제에 대해 방관할 수가 없습니다. 올 한글학회 정기총회에서 좀더 발전적인 기틀을 마련하라는 뜻에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뜻이 제대로 관철되진 않았습니다."

- 한사모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한글학회 재단 이사장과 학회장을 한 사람이 겸직하지 말고, 정관을 시대 흐름에 맞게 민주적으로 개정하라는 것과, 한글을 사랑하는 일반 국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한글학회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한글문화협회를 활성화하여 한글문화운동을 좀더 활기차게 벌이라는 것이지요."

- 한글학회의 김계곤 부회장이 이사장과 회장을 겸직하는 것으로 13일에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사장과 회장을 모두 맡으면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까?
"첫째, 시대 흐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박정희 시대를 끝으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한 사람이 독선적으로 어느 단체를 운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둘째로, 한글학회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독선적인 운영을 계속 할 때, 능력도 있고 존경을 받는 다른 지도자들이 현 이사장 지도 체제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 회장을 평의원회 직선으로 뽑아 단임제로 하자고 건의를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사장은 원로가 맡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회장은 다수 회원에게 존경을 받고 한글 운동에도 적극적인, 좀더 젊은 분이 맡는 게 한글학회가 발전하는 데 유리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민주적인 제도로 총회에서 직접 회장도 뽑아야 하고, 또 학회장이 된 분도 1회 임기인 3년 동안만 학회를 위해 봉사하는 게 좋습니다."

- 한글학회도 좀더 젊은 인재들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견해지요. 어떻게 보십니까?
"첫째, 한글학회는 광복회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둘째, 한글학회는 이 나라에서 한말글운동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네티즌 같은 젊은 세대를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 김계곤 회장은 이번 성명서를 발표한 분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그 점이 그 분의 독점체제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시대와 처지를 정확히 읽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 한글학회를 어떤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고 봅니까?
"총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학문으로도 업적이 뛰어나고, 행정 능력도 있고, 시대 의식과 실천력이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 한글학회는 21세기 정보 통신 시대를 맞이하여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앞으로 한글학회가 어떻게 변화를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글학회라는 값진 브랜드 가치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최고의 권위와 실력을 갖춰 한말글연구와 운동에서 중심 기관이 돼야 합니다." / 신향식 기자

"참신한 인재 등용과 지도부의 지속적 갱신 체제 절실"
김정수 한양대 교수가 발의한 '한글학회 회칙 개정안'

한글학회 평의원과 회원 여러분께

주시경, 최현배, 허웅 세 큰 스승이 이루신 위업을 이어받고 우리네 한글과 한국말이 부닥치고 있는 오늘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한글학회는 참신한 인재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훤히 개방되어야 하고, 모든 회원들의 능력과 정성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지도부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학회의 두 가지 중요한 규칙을 다음과 같이(괄호 [ ] 안) 부분적으로 개정할 것을 동의합니다. 여러분의 냉철한 심의와 찬동을 호소합니다.

2004. 3. 13. 한글학회 평의원 김 정수 올림.

<한글학회 회칙> 개정안

"9. 이 회에는 다음의 임원을 둔다.
(1) 회장 1 사람
(2) 부회장 약간명
(3) 이사 11 사람(회장, 부회장 [포함 -> 제외함])
(4) 감사 2 사람
(5) 평의원 50 사람 안팎
이사와 감사는 평의원회에서 뽑고, 회장과 부회장은 [이사회에서 -> 총회에서] 뽑는다. 이사(회장, 부회장 포함)와 감사의 임기는 3 년으로 하며, 결원이 생긴 때에는 평의원회에서 뽑아 채우되 그 임기는 전임자의 남은 기간으로 한다. [회장은 연임할 수 없다].(보탬)
다만, 첫 평의원은 1988년도 정기 총회에서 뽑고, 그 운영에 대해서는 평의원회의 내규로 정한다."

<한글 학회 평의원회 내규> 개정안

"6. 이 평의원회에 결원이 생겼을 때에는 [이사회에서 -> 회원 10 명 이상이] 추천하되, [평의원회의 -> 총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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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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