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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고에 대해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는 가족들의 절규는 계속됐다. 어마어마한 비행기 사고에 대한 현지조사와 결과발표,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의 활동방해 등은 강산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반복됐다는 게 더욱 놀라울 뿐이다.

▲ KAL858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 차옥정 회장. 그의 남편 박명규씨는 사고난 비행기의 기장이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KAL858 사고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 회장 차옥정(68·KAL858 기장 박명규씨의 아내)씨의 말이다.

"가족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언론이 안 해줬습니다. 제대로 보도된 게 단 하나도 없습니다. 기자들이 모인 곳에 가족들이 가서 유인물을 뿌려도 안기부 직원이 인상 한번 쓰면서 '내놔' 하는 표정만 지어도 다 도로 돌려줍디다. 정말 실망했어요. 실제 우리 가족 중엔 강서경찰서에 끌려가 안기부 직원에게 협박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부 희생자 가족, 안기부 직원에게 협박 당해

차 회장의 얘기는 계속 이어진다.

"심지어 저희 집에 일본이나 독일 기자들이 찾아와서 이 사건을 취재하길래 제가 물어봤지요. 당신네 나라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들이 제게 말하기를 '비행기 실종 2시간만에 테러라는 소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고 그렇게 되묻더라고요. 그게 우리나라 언론과 정부의 태도입니다. 자국민을 보호할 정부와 바른 말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그 지경인 것이지요."

차 회장에 따르면 가족들이 궐기대회를 벌이면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태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YS나 DJ 같은 사람들도 모두 선거전에는 KAL858기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겠다고 했다가 집권 후에는 언제나 '나 몰라라'하는 게 상례였다고 한숨짓기도 했다.

김호순씨는 이미 사고가 발생한 뒤 2∼3일만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그때는 그런 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터진 어마어마한 테러사건입니다. 그것도 민간여객기가 북한 간첩에 의해 폭파한 대형사건이지요. 그런데 실종현지조사단은 10일만에 수색작업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전 이 사건의 배후엔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요.

김현희 사면을 앞두고 안기부 직원이 찾아와서 제게 묻기를 '이 정권을 인정하느냐' 그래요. 그게 무슨 말인지 저는 너무나 잘 알지요. 당시만 해도 안기부에 끌려가면 죽어서 돌아오는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안기부 직원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난 남편이 죽은 것도 너무나 억울하기 때문에 자살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 내용을 친척들에게도 연판장을 돌려놓아 다 안다, 고로 내가 죽으면 그건 당신네들 소행이라고 소리쳤지요. 그리고 나서 폭파됐다는 비행기를 찾아내라, 내 남편의 유품이라도 찾아내라고 그랬습니다."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 명단을 적어달라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에게 물었어요. 혹시 안기부 직원이 뭘 묻지 않느냐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그러더군요.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달라고 그랬다고."

감시는 지속됐다. 한 명뿐만 아니라 KAL858기 희생자 가족들의 동태파악은 기본적으로 하는 게 당시 안기부의 소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분개하는 부분은 가족들의 동의없이 '사망'처리했다는 점이다. 임옥순씨의 말이다.

"영화 <마유미>를 봐도 그렇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KAL858기의 폭파범 마유미(김현희)는 가련한 여인이므로 선처해줘야 한다는 내용이고, 이 비행기에 탔던 탑승자 가족들은 무식하고 교양없는 사람들로 그려지죠. 그 영화의 감독이 신상옥씨고, 제작비가 당시 돈으로 10억원이나 들었다는데 그 비용을 노태우정권 시절 황태자로 이름 날리던 박아무개가 댔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사건규명은 둘째고, 무조건 북한이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만든 테러라고 홍보만 했지요."

가족들은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해서도 깨끗하게 앙금을 털어 내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차옥정 회장의 증언이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살갗이 부드러운 여자"

"노태우 정권이나 YS까지도 왜 김현희를 싸고도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115명의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을 죽인 테러범인데 진상규명도 하지 않고, 아직까지 유품 하나, 비행기 잔해 하나 제대로 된 것 갖다 주지도 않고 무조건 그녀를 두둔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서교동의 한 교회에서 간증한다길래 가봤는데, 그날의 간증도 별 것 없었어요. 본인이 약을 먹었는데도 죽지 않은 것은 여기 와서 이렇게 일하라는 하느님의 뜻이었고,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며느리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것 딱 두 가집디다. KAL858기 사건 희생자 가족들이 던진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그냥 사라지려고 하던 걸 제가 꽉 붙들고 한 10분 정도 버텼지요.

그래도 삽시간에 안기부 직원들이 달려들어 떼어내려 했어요. 제가 그랬죠. '니가 무슨 간첩이냐? 바른 말 해라' 그렇게 말이에요.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어요. 그건 다름 아니라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으로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질이고 튼튼하다고 소개됐지만, 실제로 제가 끌어안아본 김현희는 상당히 부드럽다는 거예요. 살갗이 상당히 부드러운 여자였어요. 그렇게 김현희를 제 품에서 떼어낸 안기부 직원들은 까만 세단에 김현희를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졌지요. 가족들은 모두 그 교회에서 떨려 나왔고."

차옥정 회장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가 삼키는 분루는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도 한 가닥의 실을 잡듯 참혹한 것이었다. 그래도 단 한번 안기부와의 싸움에서 기가 꺾이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김현희를 끌고 오라고 그랬어요. 유일한 생존자이니 잘 알 것 아니냐고 말이에요. 그러나 단 한번도 우리와 대면시켜준 일이 없습니다. 김현희와 만나고 싶다고 하면 '국민권리 차원에서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럼 우린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까? 왜 우린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야 하고, 115명을 죽인 김현희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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