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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참여정부는 동북아경제허브의 양축으로 금융입국과 물류입국을 주창하고 있다. 논란은 있지만 물류입국의 방향성은 정당하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지리적 이점과 남북관계 및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대통령의 말대도 "부산항에 들어온 컨테이너가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와 몽골,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중심부로" 가는 물류의 대혁명도 꿈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먼길을 가려면 발 밑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물류현실은 어떤가? 물류입국을 추진하기 전에 도로운송이 붕괴될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세계최고수준의 물류비, 전근대적인 물류체계

교통개별연구원이 발표한 2000년 국가물류비는 66조7천억원으로 GDP의 12.8%에 해당한다.이 물류비 비중은 미국 10.1%, 일본 9.59%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기업에서 직접 감당해야하는 기업물류비를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매출액 대비 기업물류비는 2001년도에 11.1%로 가히 세계최고 수준이다. 1000원짜리 제품을 수출하면 111원이 물류비로 지출되는 것이다.

한편 물류비의 구성을 살펴보면, 전체 물류비중 수송비가 64.2%이고 수송비 중 94%가 도로운송비용이다. 즉 물류비의 압도적인 비중이 수송비이고 우리나라 수출입물동량의 거의 전부가 육상도로운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화물운송체계 : 지입제와 다단계 알선

문제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육상운송체계가 지극히 전근대적인 구조에 얽매어 있다는 것이다. 역대정부는 육상화물운송 산업의 대규모화, 직영화를 추진했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일정규모의 자산과 차량을 보유하고 체계적인 운송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에만 운송면허를 허가하던 정책은 그 의도와는 달리 음성적인 지입제를 양산하였고 마침내 97년에 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분리제정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이르러서는 지입제 자체를 합법화하기에 이르렀다.

물류의 대동맥이라 할 화물운송산업의 97% 이상이 영세지입차주겸 기사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5톤이상 사업용화물차량(일반화물차량)은 5대 이상을 보유하여야 등록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운수법인업체들은 이점을 악용하여 운송업은 도외시하고 번호판 장사와 지입료 수입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영세지입차주겸 기사들은 수천만원의 돈을 들여 차량을 구입하고도 차량의 소유권을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 운송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악덕운수업체들은 지입차주들의 차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의 파렴치한 행위를 일삼기도 하고 화물차량 지입사기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운수업체들은 차량번호판만을 발급해 줄뿐이고 화물운송 영업은 알선업체(운송주선업)에서 담당한다. 알선업체는 화주와 운송담당자(업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법적으로는 직접적인 중개 이상의 다단계 알선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관급 물자수송에서 조차 다단계알선이 관행화되어 있고 3-4단계의 다단계알선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A라는 화주가 100만원의 운임을 주고 의뢰한 화물을 운송담당자는 70만원 정도의 운임밖에 못받고 운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불법다단계 알선은 알선업자들의 중간착취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화주들에게 전가하게 된다.

전근대적인 지입제와 다단계 중간착취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물류입국은 요원하다. 물론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2005년부터 사업용 화물차량의 개별등록을 가능하게 하고 있지만 개별등록만으로 지입제와 다단계알선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비현실적인 에너지세제개편과 이라크 침공에 따른 유가상승이 한국의 도로운송을 붕괴시킨다.

도로 화물운송의 97% 이상이 차량 1대를 소유한 영세 지입차주겸 기사들에 의해 감당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 통제불능의 상태를 야기한다.

산업자원부는 '경유차량 사용억제와 에너지 효율성'을 내세워 '에너지세제개편'을 단행했다. 그 내용은 경유가격을 2006년까지 휘발유가격의 75%로 끌어올린다는 것이고 그 방편으로 교통세와 특별소비세를 연차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최근에는 경유승용차를 허용하면서 경유가격을 휘발류가격대비 85%까지 올려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휘발유차량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사업용 화물자동차의 경우이다. 우리나라 경유차량은 약 700만대이고 사업용으로 등록된 화물차량은 20만대 정도이다. 이 20만대의 사업용화물차량은 경유가격이 리터당 800원으로 돌파한 시점부터 경유가가 전체 운임의 30%를 넘어섰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예정에 따라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국제유가변동에 따른 3단계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제유가변동은 일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금의 여유가 없는 영세개별차주들의 경우 당장 경유가가 900원대에 달하면 운행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운행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또 2003년 7월 1일부터는 에너지세제개편안에 따라 다시 특별소비세가 올라가게 되면 국제유가변동과 상관없이 운행포기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그나마 2006년 6월까지는 인상된 경유가격의 50%를 정부에서 보전해 준다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산업의 동맥이라는 화물차량에 사용되는 경유에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대책없는 경유가 인상이 물류비를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도로화물운송을 붕괴시킬 지경에 이른 것이다.

소외된 물류의 동맥 :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한 노동현안의 하나로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자의 57%를 비정규직화 하였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OECD 국가 중 3위라고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에서도 제시하고 있듯이 강제적인 비정규직화, 비정규직화의 남용, 정규직과의 차별의 문제이다.

화물운송 지입차주겸 기사들은 이러한 비정규직의 문제의 전형이다.

화물운송 지입차겸 기사들은 대부분 '정규운전직'이었다. 노동운동의 불모지였던 화물운송분야에 노동조합들이 조직되기 시작하자 사업자들은 '위수탁', '차량불하'라는 이름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았다. 운송업계의 빅3라는 대한통운, 한진, 동부 같은 회사들은 직영노동자의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 보유차량이 1,000대가 넘는 대형업체들 중에는 직영노동자가 단 한 명도 없는 회사가 수두룩하다. 전형적인 비자발적-강제적 비정규직화이며 남용된 비정규직화이다.

정규직과의 차별도 극심하다. 일부 특수직종의 경우 지입차주 수입의 절대액에서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강도와 시간, 사후보장 등을 감안하면 수입면에서도 정규직에 비해 훨씬 떨어지고 아무런 사회보장이 되지 않는 극단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도급-하청 등 민사계약관계의 형식을 취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은 그 처지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데도 법과 제도는 나날이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운전경력 20년째인 김씨는 20년전 B회사에 입사하여 트랙터기사로 일했고 지금도 그 회사의 일을 하고 있다. 10년전 회사는 김씨에게 퇴직금을 담보로 강제로 차량을 불하했고 길바닥에 나앉을 수 없기에 차량을 인수하여 '수탁관리자'가 되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산재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도 적용되었고 안정적인 수입은 아니지만 열심히 움직이면 먹고 살만은 했다. 그런데 97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제정되고는 사회보험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김씨는 여전히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급여를 받지만 회사의 필요에 따라 노동관계법상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화물운송산업 종사자의 97%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참여와 협력을 통한 해결인가? 폭동적 저항인가?

억압이 있으면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2002년 5월 기름값, 고속도로통행료가 잇따라 오르고 고속도로휴게소들에서는 장사가 안되는 화물차량들의 진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일단의 트럭운전사들은 TRS단말기를 통하여 의견을 모아 100여대의 대형차량들이 집단적인 고속도로 저속운행시위를 벌였다.

결국 주동자급 2명이 구속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었지만 이들은 민주노총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연대(화물연대)로 조직되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화물연대 조합원은 1만명을 넘어섰다. 화물연대는 경유가격인하를 포함한 직접비용인하, 지입제-단단계알선 근절을 비롯한 육상운송체계의 개혁, 지입차주의 노동자성 인정의 3대 요구를 제기하고 정부당국과의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요구에 공감한 지입차주들의 동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5월경에는 5만 정도의 세력이 결집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물연대는 조직적으로 통제가능한 집단이다. 그리고 정부당국과의 협의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는 정부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경우, 둘째는 조직적 통제 밖의 개인이나 그룹의 폭동적 투쟁이 그것이다.

화물연대의 상급단체인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은 인수위 단계부터 정책제안을 통하여 정부당국와의 협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입차주들은 자기 소유의 대형차량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비용은 오르고 수입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들의 저항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도심이나 고속도로에서 차를 불질러버리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90년대 후반 유가인상에 저항한 프랑스, 이탈리아 트럭운전사들의 투쟁이 수개월에 걸쳐 유럽의 전체 물류를 마비시킨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류입국의 전망을 열기 위하여 수출입국 시대의 그늘에서 소외된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지입차주 문제를 관계당국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호희 기자는 화물노련 사무처장입니다.
kcwf.jinbo.net/hwam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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