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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이 29일 오후 수원 유세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의 내용 일부를 악의적으로 인용해 노 후보를 공격했다고 한다. 거대정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의 인식과 시각이‘정말 이정도 밖에 안 되나?’하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실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남 대변인은 "노무현 후보는 자기가 쓴 자서전에서 '내가 견딜 수 없고 불안할 때 아내에게 손찌검한 적이 있다는 둥,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들에게 아내를 다루는 법을 강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조져야 돼. 밥상 들어달라고 하면 밥상 엎어버리고 이불 개달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질겅질겅 밟아버려야 돼'라고 썼다"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이것이 문제가 되면 노무현 후보는 또 말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젠 안 된다, 자기 손으로 자기가 아내를 때렸다고 썼다"며 "그래놓고 또 아내를 위해서라면 대통령도 포기할 수 있다는 거짓말도 했다는 둥 이 거짓말하는 노무현 후보를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현재의 노무현 마저 아주‘나쁜 남자’로 오해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물론 남 대변인이 노린 효과도 그것일 것이다.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부끄러웠던 과거를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은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남 대변인이, 인도인들은 물론이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으로 추앙받고 있는 간디의 자서전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간디는 자신의 저서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에서, 어린 나이에 결혼해 금욕을 실행할 때 까지 20여년간 정욕에 탐닉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은 물론이고, 아내에게 함부로 대하고 거칠게 굴어 수없이 아내를 눈물 흘리게 했던 졸장부 남편이었던 자신의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

남경필 대변인식으로 말한다면 간디는‘위대한 영혼’은 고사하고‘졸렬하고 지저분한 남자’밖에 못되는 셈이다. 남 대변인은 지금도 간디를 그렇게 ‘나쁜 남자’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싶어한다. 이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가를 배운다. 간디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제2의 예수’로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것도, 인간으로서 저질렀던 수많은 실수에 대해 가식 없이 드러내고 참회하며, 항상 더 낳은 도덕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자세 때문이다.

남경필의 주장대로라면, 간디는 졸지에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는 물론이고, 실질적으로 인도를 이끈 정치지도자로서 전혀 자격이 없었던 사람이 되고 만다.

어디 간디뿐이겠는가. 지난 2000년에 타계한 우리나라의 추양 한경직 목사도 그런 분이었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목회자로서 지난 92년에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상하기 한 그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나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협조한 경력도 있습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친일목사’로 부른다면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부끄러운 과거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그가 아름답고 깨끗하거나, 적어도 두 번 다시는 과거의 그와 같은 잘못을 번복하지 않겠다는‘공적 선언’인 셈이다.

남경필 대변인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상대당 후보가 대중을 향해 오래 전에 내놓았던 자서전 내용의 앞 뒤를 재단해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악의적 모략을 시도한 것은, 저열하고 천박한 인신공격에 불과하다. 물론 그런 행위는 자당의 이회창 후보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도의‘위대한 영혼’인 간디를 욕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수많은 양심적 인사들의 용기를 엿 먹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작 우리들이 문제 삼아야 할 점은,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속이고 부정하는 몰염치와 위선이다. 사실 우리 정치가 이토록 욕을 얻어먹고, 우리 정치인들이‘세상의 오염원’으로까지 비판을 받는 것도 양심을 내던지고 거짓과 위선을 밥먹듯 저지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언론들이 이른바 ‘짜라시’로 까지 욕을 얻어먹는 것도 자신들의 잘못을 단 한번도 고백하고 반성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남 대변인이 진정으로 우리사회의 위선을 싫어한다면 이런 문제나 지적하고 스스로 반성해야 옳다.

행여 남 대변인이 간디의 자서전을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면, 선거 판에 나서서 비방의 언어로 유권자들을 현혹하기 전에 집안에 들어앉아 조용히 일독해 볼 것을 감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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