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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성도예 대표 길성씨가 갖 구워낸 이도차완을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일본인의 신앙 ‘이도차완’. 상당수 도예가들은 그럴싸하게 유약을 바르고 개구리알 같이 생긴 ‘매화피’(그릇 굽 부분에 생기는 결정체)를 만들어 함부로 ‘이도차완’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도차완’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수백년 동안 끊긴 맥을 잇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도차완’을 재현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400년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붙들려 간 도공들이 만들었던 그 그릇을 ‘부활’해 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도자 역사상’ 눈이 번쩍 뜨이는 일임에 틀림없다.

길성(57. 길성도예)씨와 그의 딸 기정(32)씨가 주인공이다. 25년간 충북 단양에서 도예작업을 한 길씨는 지난 5월 하동 진교에 ‘길성도예’를 만들고 ‘이도차완’을 재현해냈다.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옛 안심분교에 터를 잡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길씨가 먼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흙’ 때문이다. ‘이도차완’을 굽는 데는 ‘흙’이 가장 중요한데, 사진으로만 보고 듣기만 하던 ‘태토(몸흙)’의 비파색을 하동에서 찾아낸 것이다. 하동 진교는 옛날 진주목 관아였다. 일본 ‘이도차완’은 진주목 관아에서 생산되었다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길씨가 찾아낸 흙이, 400년 전 일본으로 붙잡혀 간 도공들이 쓰던 바로 그 흙이라는 것.

흙은 사질토 사용, 유약은 나무재와 규장석 섞어

▲ 해탈차완 / 구경 15.3~15.6cm, 높이 8.7cm, 무게 390g
ⓒ 오마이뉴스 윤성효
길씨가 찾아낸 흙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사질토인데, 돌이나 아무런 불순물이 들어있지 않다. 점토성이 약해 ‘성형’(그릇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 어렵다. 길씨는 “성형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반 정도만 완성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유약은 ‘회유’라는 자연 유약을 쓰는데, 나무재와 규장석을 섞어 쓴다.

길씨는 단양에 가마를 두고 있을 때부터 하동 흙을 사용해 그릇을 빚었다. 하동에 작업장을 만들면서도 구웠는데, 15가마나 된다. 한 가마에 300~400개의 작품이 들어간다고 할 때,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나온 작품들은 바깥으로 유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할 때 ‘이도차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인들의 혼을 속 뺀 ‘이도차완’의 진품을 보고 나서, 그는 자신감을 갖고 작품에 매진했다. 그가 본 진품은 ‘매화피’가 개구리알 모양이 아니었다. 뱀 허물처럼, 악어 등처럼 갈라진 것이었다. 그런데 길씨가 생산한 작품도 같은 모양인 것이다.

길씨는 홍익대 미대를 나왔다. 한때 신문사 기자와 그래픽 디자이너 생활을 했다. 70년대 도예가의 길로 들어섰고, 93년 작품전 이후 전시회를 열지 않고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유일하게’ 이도차완을 재현한 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보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오모도 센케’ 가문 초청받기도... 작품 이름까지 붙여

▲ 지장차완 / 구경 14.3~14.5cm, 높이 8.1cm, 무게 290g
ⓒ 오마이뉴스 윤성효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도차완’ 전문가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많은 큐레이터들이 있고, 이들이 진품을 가려내고 있다. 그는 올해 초 딸 기정씨와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 다도를 완성한 가문으로 알려진 ‘오모도 센케’에서 마련하는 신년다회에 초청을 받았던 것이다. 400년전 도공들은 붙들려 갔지만, 그는 당당하게 초청을 받았다.

일본의 이도차완 전문가들은 유명한 작품을 보면, 이름을 짓는다. 길씨는 유명 일본 다도 전문가들이 이름을 붙인 작품들이 많다. 일본 다도의 완성자인 ‘센노리뀨’의 둘째 아들로 ‘오모도 센케’를 대표하는 ‘이에모또’가 붙인 “신고려 이도다완 - 백운(白雲)”, ‘오모도 센케’ 가문의 예술품을 감정 관리하는 미학자인 ‘히사다 쇼야’가 붙인 “채운(彩雲)”이 그렇다.

길성씨와 딸 길기정씨는 내년 봄 일본 주요 8개 도시 순회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이도차완’을 재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신문방송사들의 취재 경쟁도 열을 올리고 있다. 도자기를 보는 눈이 깊지 않은 일반인들이 보아도 ‘매화피’ 등이 달라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한길아트)을 펴낸 작가 정동주씨는 ‘이도’의 뿌리를 추적한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우선 ‘관요’가 아닌 ‘민요’여야 하고, 진주 동남쪽에 위치하며, 14~16세기에 제작된 것이어야 한다”라고. 그러면서 정씨는 책에서 “‘이도’의 관건은 ‘태토’(몸흙)에 있다”고 했다. 정씨도 길씨가 쓰고 있는 흙이 400년 전 도공들이 쓰던 흙이라 보고 있다.

그는 길씨의 ‘이도차완’ 재현에 대해, “일본에 있는 ‘이도’를 재현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 시대 정신에 맞는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한 단계이다. 원형에 대한 고뇌를 거쳐야 한다. 재현은 자기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5월 흙 발견 뒤 하동으로 작업장 옮겨

▲ 일본 다도의 완성자인 센노리뀨의 둘째 아들로 ‘오모도 센케’를 대표하는 이에모또씨가 이름 붙인 "신고려이도다완-백운(白雲)".
ⓒ 오마이뉴스 윤성효
흔히 ‘이도’는 ‘살아 있는 그릇’, ‘숨 쉬는 그릇’이라 부른다. 길씨가 재현한 ‘이도차완’에 깊이 빠질 일본인들의 놀라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길씨는 딸 기정씨와 함께 삼복 더위도 잊은 채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 가마가 열리는 날 세상은 또 한번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길성씨에게 물었다.

- 언제 하동에 왔나?
"올해 5월이었다. 흙을 찾아 온 것이다. 이도차완의 재료인 흙이 여기에 있는데, 작품을 다른 곳에서 만들 수 없지 않나.”

- 이도차완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도자기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접근하고 싶어하는 게 이도차완이다. 일본의 대명물이어서가 아니라, 그릇의 맛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만큼 어려운 도전인데 누구나 덤벼든다. 나는 25년간 작업을 해 왔고, 분청과 청자, 백자를 다 끝낸 입장이다. 그동안 이도차완을 만들어 왔는데, 감히 외부로 유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볼 때 이도차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있다.”

- 어째서 자신감이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도차완을 만드는 사람 중에는 그 진품을 본 사람은 없거나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책자나 도록을 보는 정도였다. 이도차완의 진품을 보면, 진짜와 가짜를 알 수 있다. 나는 이도차완의 진품을 보고, 최근 그 흙을 찾아 빚어놓은 작품이 이도차완과 같다고 확신하고, 일본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 이도차완의 진품을 본 과정을 설명해 달라?
"비밀이다. 우리나라 박물관도, 개인도 진품이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외국에서 들어온 이도차완의 진품을 보았다. 극비리에 보게 되었다. 그것이 행운이었다. 20년 넘게 이도차완을 재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었다. 진품을 보고는 그 그릇의 특징을 알았다.”

- 이도차완을 굽는데는 어떤 특징이 있나?
"불이 절대적이다. 가스는 안되고, 반드시 나무가마를 해야 한다. 초벌구이를 하지 않는 그릇이다.”

- 이도차완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그 그릇의 고향은 어디냐?
“진주목 관아였다. 그러니까 진주 인근지역이다. 흙이 있는 곳이다. 하동은 옛날 진주목 관아였다.”

흙이 절대적... 점토질 성분 약해 ‘성형’ 어려움

▲ ‘오모도 센케’ 가문의 예술품을 감정 관리하는 미학자인 히사다 쇼야씨가 이름 붙인 "채운(彩雲)".
ⓒ 오마이뉴스 윤성효
- 어떤 흙인가?
“흙이 절대적이다. 보통 도자기는 두 세 가지 흙을 섞는데, 이 흙은 한 가지다. ‘비파색’을 띤다. 비파나무 열매의 색깔이 나는 흙이다. 산 위에 있다. 마치 걸려서 쌓아놓은 흙과 같다. 사질토인데, 굵기가 일정하고 돌이나 이물질도 전혀 섞이지 않았다. 다른 흙과 다르게 ‘성형’이 어렵다. 점토질 성분이 약하다.”

- 그 흙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공개할 수 있나?
“하동에 있다. 현재 위치에서 4킬로미터 거리에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밝힐 수 없다. 전국에 이도차완을 만드는 사람들이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 어떤 유약을 쓰느냐?
“‘회유’라 하는데 자연 유약이다. ’규장석‘에다 나무재를 섞어 쓴다.”

- 흙을 찾는 과정이 독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인데도 듣는 사람에 따라 우습다고 할 것이다. 마누라도 살아생전에 하고자 했던 일이었다.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어떤 느낌이 있었다. 23년 전 경주에서 작업을 할 때 보아두었던 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하동으로 와서 그 흙을 찾았다. 그런데 다행히 흙은 그대로 있었다. 불과 몇 미터 앞까지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그 흙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자신이 만든 이도차완은 어떤 특징이 있나?
“첫째, 밑받침 언저리에 있는 ‘매화피’를 보면 안다. 그릇 밑에 개구리알처럼 맺혀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것은 이도차완의 ‘대화피’와 다르다. 진품의 ‘매화피’는 유약이 말린 현상이 아니고, 뱀 허물이나 악어 등과 같이 갈라지거나 터지면서 생겨난 것이어야 한다. 유약이 응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태토’가 터지면서 말려가는 것이다. 둘째, 밑바닥을 만져보면 스폰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녹차 속의 ‘타닌’이 바로 배여드는 현상으로, 일본 이도차완은 한결같이 밑바닥이 검다. 내가 만든 작품도 그렇다.”

“이도차완은 막사발 아니다... 부활 내지 재현으로 봐야"

- 이도차완을 400년만에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과연 재현했다고 할 수 있나?
“우리나라에는 이도차완에 대한 전문가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진품을 본 적이 없다. 이도차완은 막사발이 아니다. 어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야말로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그릇이라면 그렇게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도차완은 특수한 성격의 그릇으로, 식기도 아니며 바닥에 마구 놓고 쓰는 그릇도 아니다. ‘부활’ 내지 ‘재현’이란 말을 한다.”

- 일본 전문가들의 반응은 어떤가?
“일본에는 이도차완과 관련한 많은 큐레이터들이 있다. 내 작품을 가져다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일본 이도차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오모도 센케’ 가문에서도 인정했다. 몇몇 작품을 보고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오모도 센케’ 가문으로부터 작품의 이름을 받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지만, 내 작품은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받아 왔다. 올해 1월 ‘신년다회’ 때 초청받아 다녀오기도 했다. 일본에서 인정받았다는 게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400년만에 부활해 놓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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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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