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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이용 시민의 안전이 19년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멀리서 보면 서울교통공사는 번듯한 직장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시 지방공기업 승무원들의 노동 조건이 19년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꿔보고자 머리띠를 둘렀습니다. 투쟁을 시작하자 혹자는 '일할 사람이 차고 넘치니 배부른 소리 한다', '투쟁 그만두라'는 소리를 합니다. 저희가 과연 막무가내로 겨울 초입부터 세종로에서 풍찬노숙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매일 새벽 시장관사로 쫓아가 1인 시위를 하는 것일까요?
 
 시청정문 앞 기자회견
시청정문 앞 기자회견 ⓒ 박찬용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과 공사 측은 지난 10월 16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참석 하에 2019년 임금 및 단체협약과 노사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박원순 시장이 5년 전 '지하철 승무원의 계속된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약속의 일부분인 승무 분야 인력 증원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시와 공사는 19년 전 노동조건을 들이대며 승무 인력을 오히려 줄이라고 요구했으나 합의 과정에서 그 요구를 철회했습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는 돌연 합의를 부정하며 11월 16일부터 노동조합의 반발과 승무원들의 저항에도 19년 전의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강행했고, 서울시는 이를 용인했습니다. 그리고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지난 2일 사퇴에 앞서 106명의 승무 인력을 줄였습니다. 인력증원에 합의해 놓고 오히려 줄인 것입니다.
 
 시청정문 앞 1인 시위
시청정문 앞 1인 시위 ⓒ 박찬용

인력을 대폭 감소하면 어떻게 될까요? 열차 운행의 맨 앞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들의 업무는 개인 근무, 순환근무, 차상 근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매일 출퇴근 시간이 다릅니다. 매일 식사 시간이 다르고 잠자리도 다릅니다. 여기에 승무원 근무표는 열차운행계획(열차 시각, 열차 간격 등)을 바탕으로 교대 장소, 승무 준비, 장시간 운전 제한, 대기(휴식), 입출고 점검, 편승, 열차 감시 등의 '근무표 작성기준'에 따라 일일 총 열차운행시간(4006시간 49분)을 1333개의 1인 근무표(dia)로 나누어서 작성하는 까다로움이 있습니다. 

그중 운전시간 설정은 1인 근무표 작성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가 강요하는 노동은 가혹합니다. 지금처럼 승무원이 일한다면, 1일 근무시간 1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 형태가 35개 이상 발생하고, 4시간 가까운 장거리 운행이 50개 이상 증가하게 됩니다. 즉 취업규칙에 명시돼 있는 대기시간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며,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열차 운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7시가 넘어 퇴근하는 근무들이 발생하게 되고, 심지어 오후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일도 잦아집니다. 

불안정한 승무 시스템이 이뿐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올해 체결된 임단협 합의와 2007년의 노사합의를 무시하고, 서울교통공사는 일방적인 노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19년 전의 운전시간 기준으로 일일 승무 인력을 줄였고, 이에 따라 승무원들의 노동강도가 악화됐습니다. 안전운행에 전념해야 할 승무원들의 높아진 피로감과 불안은 결국 열차를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19년 전, 노동시간을 강요하는 것은 시민들의 안전도 19년 전으로 되돌아간 꼴이 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동은 삶의 보람이고, 기쁨이 되어야 하지, 불안이고 고통이어서는 안됩니다"라며 노동 존중 특별시를 선언했습니다. 노조는 객관과 합리성은 고사하고, 기본상식조차 한참을 벗어나 근로기준법도 위반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시대 역행에 언제까지 눈감고 용인할 수 없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안전운행에 전념해온 승무원들의 노동조건을 19년 전으로 더욱 악화시키는 행위를 규탄하고 투쟁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는 아닐 것입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노사합의를 부정하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강행한 노동조건을 원상회복 시키고, 오히려 승무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인력확보와 근무환경조성에 매진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작성한 박찬용씨는 서울교통공사노조 승무본부사무국장입니다.


#지하철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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