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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 관련해 정부에 포상 신청된 천용근, ·한신광 부부.
항일 관련해 정부에 포상 신청된 천용근, ·한신광 부부. ⓒ 추경화
 
부부 항일투사가 발굴되어 정부에 포상신청되었다. 4월 12일 독립운동사료연구가인 추경화 충효실천운동본부 대표는 천용근(千溶根, 1897~1935년)·한신광(韓晨光, 1902~1982) 부부를 정부에 포상신청했다고 밝혔다.

또 추경화 대표는 그가 신청했던 구연욱, 박성오, 박학두, 진유관 선생이 올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게 되었다고 밝혔다.

추경화 대표에 따르면, 천용근 선생과 한신과 여사는 부부다 천용근 선생은 진주 봉래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 재학 중 한규상(건국훈장 애족장 추서)의 여동생 한신광 여사(동경여자대학 재학)와 결혼했다.

천 선생은 진주농업학교 제1회 졸업생인 김종범 선생을 일본에서 만나 함께 사상단체인 '일월회'와 '북풍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리고 천 선생은 와세다대학 졸업 후 진주 진명학원 강사로 일했고, 1927년 10월 신간회간사와 조직부 총무간사로 활동했다.

천 선생이 만주로 망명해 <신대륙사> 봉천지사 기자로 일하자 일본 경찰은 그의 '일월회' 가입을 문제 삼아 '배일 사상을 지닌 과격한 자'라 하여 체포했다. 천 선생은 엄중한 조사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혼절해 석방했지만, 1935년 3월 18일 만 38세 때 순국했다.

한신광 여사는 진주 3·1운동의 지도자인 오빠 한규상 선생의 약혼녀인 박덕실 여사(2018년 대통령 표창)와 함께 광림여학교 교사로 있다가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하다 2개월만에 석방되었다.

한 여사는 서울 동대문 부인병원과 광제병원 간호사로 근무 중 전국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자 위생 강연자가 되었고, 1924년 1월 26일 정종명 등과 조선간호사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는 1925년 동경여자대학 재학 중 천용근 선생과 결혼하고 재동경여자청년동맹을 창립해 여성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활동했다.

그는 1929년 12월 전국에서 학생시위가 전개될 때 학생들을 지도하고 일경에 피체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고 집행유예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석방되었다.

한 여사는 '신간회' 자매단체인 '근우회'를 창립할 때 동참하고 <근우> 창간호에 근우회의 재정문제에 대하여 기고했다.

그는 1945년 오빠 한규상이 적십자 병원장이 되어 마산으로 가자 함께 마산으로 내려가 마산시 부녀계장이 되고 1950년 5월 마산시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추경화 대표는 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독립운동을 벌이다 옥고를 치른 구연욱, 진주 3·1운동 때 북을 쳤다가 옥고른 치른 박성오, 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시위를 주도하다 집행유예를 받은 박학두, 부산 구포 3·1운동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진유관 선생이 이번에 각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고 밝혔다.

#천용근#한신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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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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