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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4일 MMCA 서울관에서 전시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취지 등을 설명하는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2017년 7월 4일 MMCA 서울관에서 전시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취지 등을 설명하는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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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1943-)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서울관 제5·7전시실에서 10월 9일까지 열린다. 아시아에서 첫 전시로 1960년대부터 주요 작품 8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폴란드 우치, 프랑스 리옹, 뉴욕 르롱 등 6개국 미술관의 협조로 가능해졌다. 그의 전시를 파리 자신의 갤러리에서 연 적이 있는 '가브리엘 모브리' 관장은 간담회에 참석해 절대 대여가 불가한 작품이 어떻게 서울에까지 왔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다.

여기서 미술에 대한 기존개념을 버리고 확장된 미술개념으로 보면 작품 감상에 전혀 문제가 없다. 예컨대 독일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셉 보이스'가 발명한 '사회적 조각'같은 것, 이런 미술은 개인적 정서보다는 사회적 맥락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치적이고 관객 참여적이다. 그러나 문화적 요소가 훨씬 더 많이 녹아 있다.

이번 보디츠코 전시는 두 곳에서 열린다. 제5전시실에서는 회고전형식으로 이 작가의 70년대부터 연대별로 된 작품을, 제7전시실에서는 이번에 새로 발표한 신작을 볼 수 있다.

기존의 디자인에 의문을 던지는 작가

보디츠코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보디츠코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 보디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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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슈토프 보디츠코(K. Wodiczko)'는 1943년 2차 대전 중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 게토 봉기가 일어날 때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예술가가 되기에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시대는 너무 어두웠다.

당시 나치지배시절이라 이 항쟁으로 인해 그의 가정은 초토화되었다. 아버지는 유태인출신이라 강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숨어 살아야 했다. 1945년 나치가 항복하자 이후엔 소련이 폴란드를 통치하게 되면서 사상검증이 심해졌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보디츠코는 바르샤바 예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바우하우스, 울름조형대학, 러시아구축주의 세례를 받고 자랐고, 전위미술단체 '갤러리 포크살'에서 활동했다. 당시 폴란드는 우리의 60년대처럼 기술발전을 통한 경제부흥과 국가재건에 힘썼다. 그는 그런 국가주도적 과학입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거부감을 보인다.

제5전시실 모습. 전시장 한가운데 작가의 1971년 작품 '긴 수레'가 보인다. 오른쪽 상단에는 그 작품을 작가가 시연해 보이고 있는 장면도 보인다.
 제5전시실 모습. 전시장 한가운데 작가의 1971년 작품 '긴 수레'가 보인다. 오른쪽 상단에는 그 작품을 작가가 시연해 보이고 있는 장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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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5전시실에 가서 작품을 직접 보자. 1부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규제 간 긴장을 다룬 초기 기구로 만든 작품이고, 2부는 기구를 활용해 노숙인,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오브제작품이다. 3부는 가정폭력, 원폭피해자, 불법체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상작품이고, 4부는 비(非)전쟁 즉 반전사상이 짙게 깔린 설치작품이다. 

그는 독립된 존재로서 국가에서 강요하는 판에 박힌 이야기를 싫어했고 개인적 목소리와 주체성을 지키려고 눈과 귀를 가리는 '개인적 도구(1969)'를 만들어 시연한다. "거리를 우리의 붓으로"를 주장한 러시아혁명가 마야코프스키의 영향이다. 거기에 독일극작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와 삶의 긍정과 결단을 강조한 니체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1971년에 선보인 '수레'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가 만든 수레는 시대흐름과 반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대를 거꾸로 살아가는 한 시대의 예언자처럼 보인다. 이게 나중에 뉴욕에서는 '노숙인 수레(노숙차)'가 된다.

1973년에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외면하는 '자화상'을 발표한다. 결국 그건 자기 성찰을 거부한다는 의미다. 이런 걸 오히려 자기중심적이고 자아도취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이렇게 기존의 디자인개념이나 가치체계에 있어 의문(Interrogative)을 던진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행위

보디츠코 I '노숙인 수레'(위) 한 노숙인이 뉴욕 트럼프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 1988 ⓒ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자율방범차(아래)스위스 아트바젤 전시 때 찍은 사진. 이 기구작품은 '맥루한' 말하는 것처럼 몸의 연장으로서 약자를 보호하는 기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보디츠코 I '노숙인 수레'(위) 한 노숙인이 뉴욕 트럼프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 1988 ⓒ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자율방범차(아래)스위스 아트바젤 전시 때 찍은 사진. 이 기구작품은 '맥루한' 말하는 것처럼 몸의 연장으로서 약자를 보호하는 기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보디츠코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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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른 생각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의 몸짓은 위험해 보일 수 있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기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생계로 교편을 잡는다. 1980년 전반기부터는 뉴욕에 정착하고, 1988년에는 7만 명 달하는 뉴욕 노숙인을 보고 차량 프로젝트를 세운다.

노숙인과 상담을 통해 도난방지까지 되는 다기능 수레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당국은 대책도 없이 이걸 단속하자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이 작품은 나중에 하나의 전설이 된다.

보디츠코는 이렇게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을 그의 창작에 도입한다. 작가는 <노숙인 수레 프로젝트(1988)>라는 글에서 "뉴욕의 쉼터체계의 실패를 감안할 때 길에서 살면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적고 있다.

그는 1988년 '노숙인 수레' 발명에 이어 1991년 '자율방범차'을 내놓는다. 이 차는 노숙인의 도시공동체를 가능케 해 줬다. 올 6월 스위스 '아트바젤' 무제한전(unlimited)을 참관했을 때 이 작품을 봤는데 노숙인의 생활전선에 유용한 기구라는 걸 전혀 몰랐다.

보디츠코 I '대변인(마우스피스)' 1993, 프랑스 루아르 FRAC 소장. 핀란드 헬싱키의 거리에서 대변인을 시연 중인 퍼포머들. 마치 사이보그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가 강자를 보호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기구작품을 만들다 ⓒ 국립현대미술관
 보디츠코 I '대변인(마우스피스)' 1993, 프랑스 루아르 FRAC 소장. 핀란드 헬싱키의 거리에서 대변인을 시연 중인 퍼포머들. 마치 사이보그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가 강자를 보호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기구작품을 만들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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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구의 또 다른 장점은 사회적 소통기구로서 역할도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일반인이 함부로 못하게 하는 방어 장치도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을 말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90년대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건만, 거꾸로 브렉시트 시대와 트럼프 대통령시대를 맞아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또 그는 1990년대 투표권이나 발언권이 없이 폴란드 난민으로 살아본 경험을 통해 이들의 입장에 서서 스토리텔링 기기가 있는 '외국인 지팡이'와 '대변인'도 디자인했다. 당면하게 되는 소통과 차별문제를 방어하기 위해서다. 이 기구는 수신과 교신도 가능하고 이민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타인과 관계도 더 원활하게 해준다.

그는 이 시기에 예술가로서의 역할과 함께 교육자로서의 역할로도 사회에 참여한다. 1991년부터는 MIT공대에서 사회적 디자인을 강의하며 학자적 면모도 보인다. 지금은 하버드대학 디자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공영역의 건축과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200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폴란드 관 대표작가로 참가하기도 했다.

"나는 사진가이며, 산업디자이너이며, 미디어아티스트이며, 비평가이며, 역사가이며, 철학자이면서 정치가다. 그러난 그중 하나만은 아니다"라는 그의 발언에서 시각예술가로서 혹은 교육자로서 여러 활동과 참여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파사드를 활용한 영상 프로젝션

보디츠코 I '히로시마 프로젝션' 히로시마 미술상 수상 기념으로 열린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 돔에서 열린 공공 프로젝션 히로시마 프로젝션. 1999 ⓒ 국립현대미술관
 보디츠코 I '히로시마 프로젝션' 히로시마 미술상 수상 기념으로 열린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 돔에서 열린 공공 프로젝션 히로시마 프로젝션. 1999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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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가는 미디어아티스트로서 80년대부터 파사드를 활용한 영상 프로젝션을 해 왔다. 90년대에는 더욱 맹렬하게 이 작업에 정진한다. 여러 나라 난민, 이민자, 노숙인, 가정폭력 희생자 등 상처를 입고 억압을 당하는 이들을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기회를 준다. 일종의 공공설치작품이자 사회적 조각 혹은 사회적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작물에는 1999년 히로시마 미술상 수상작인 일본원폭과 관련된 '히로시마 프로젝션'이 있다. 여기서는 강둑에 영상을 비치는 방식이다. 내용에는 같은 원폭피해자이나 단지 한국인이라고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연의 고발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2001년 '티후아나 프로젝션'은 미국국경에 있는 멕시코 도시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가정폭력에 관한 내용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여성의 못 다한 사연을 미술관건물에 투사해 피해자 여성의 육성으로 듣게 하고, 그 진상을 사람들에게 낱낱이 알린다.

2006년에 그는 스위스 바젤 쿤스트뮤지엄 전면에 미등록 이주노동자(sans papiers)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2012년 벨기에 메헬렌 시청사 앞에서 서류 없는 불법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을 옹호하는 '메헬렌' 프로젝션을 발표한다.

전쟁하면 치를 떠는 반전주의자

보디츠코 I '전쟁근절을 위한 국제기관(파리개선문)' 프랑스 파리 가브리엘 모브리 갤러리에서 2010년 전시를 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보디츠코 I '전쟁근절을 위한 국제기관(파리개선문)' 프랑스 파리 가브리엘 모브리 갤러리에서 2010년 전시를 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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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가 반전주의자라는 건 자연스럽다. 이런 경향을 보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2001년 '9·11테러'이다. 이후 뉴욕은 구속과 탄압을 받는 자의 구조보다 훨씬 복잡한 서로를 감시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그 대책을 고민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에는 전쟁은 전쟁터에서 했지만 이제는 민간인이 사는 일상의 도시 공간에서 전쟁을 치르게 됐다"고 고발한다. 이런 일상공간이 실시간 감시체제가 되자 작가에게 어떤 깨달음이 온 것이다. 신체적 상처만이 아닌 심리적 피해가 큼도 부각시킨다.

더 나아가 아예 전쟁의 전멸을 꿈꾼다. 그는 파리 개선문과 같은 전쟁기념비를 없애야 한다는 전시를 파리 '가브리엘 모브리' 갤러리에서 열었다. 숭고한 희생이라며 전쟁을 미화하는 허위성도 고발한다. 2012년 연말에는 뉴욕 '유니온스퀘어'에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 참전군인의 비참한 증언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전 지구적으로 알린다.

신작, 촛불시민과 김구 등장

보디츠코 I '나의 소원(My wish)' 복합매체 2017
 보디츠코 I '나의 소원(My wish)' 복합매체 201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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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7전시실로 가보자. 여기 신작은 촛불집회가 동기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공공장소가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이 높다. 그런 걸 작품의 모티프와 내러티브로 삼았다. 2016년 5월 한국을 처음 왔고 그해 12월에 다시 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평화의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몸서리치게 외치는 걸 보고 공감한다.

2017년 3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출렁임을 감지하고, 적폐청산을 외치는 군중의 함성에 감명과 함께 영감을 받는다.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을 찾던 중 영문판 <나의 소원>를 보고 김구선생을 점찍어둔다.

"왜 김구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작가는 한국의 위인을 탐구하고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등도 훌륭하지만 한 분은 군주이고 한 분은 군인이라 마음에 차지 않았단다. 그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를 꼽았다. 그는 국가비전을 통일에 두었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의 건강과 행복, 삶의 아름다움에 그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란다.

'나의 소원'에서는 작가는 김구 선생의 입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해고노동자, 탈북 예술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귀화한 영화배우, 동성애 인권운동가 등 지금 한반도에 사는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대언한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공간에는 반듯이 문화적 행사가 같이 동반되고 그런 사건을 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과정도 민주주의 방식으로

2016년 12월 3일 광화문 촛불집회 장면 중 하나
 2016년 12월 3일 광화문 촛불집회 장면 중 하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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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가 또 한 가지를 강조하는 점은 그 과정이다. 작가도 시위에 참가해 지금은 복직이 된 쌍용 해고노동자도 만났고 그뿐 아니라 촛불시민과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태극기집회 사람과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단다. 왜 그랬을까? 그 생각에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그 방식도 가장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 '나의 소원'은 약 1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한국의 미디어작가와 스텝 등 13명이 동참했다. 이번 전시장에는 그 작업실도 소개된다. 아무튼 촛불이 한국정치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의 아이디어를 촉발시키는 이정표가 됐으니 놀랍다.

정치변화 이상으로 문화요인 중요

나는 작가에게 질의시간에 인류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이상적 공동체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작가는 대답은 단호하고 명쾌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향한 수평선으로 나가려면 꾸준히 노력과 실천이 따라가야 함을 먼저 전제로 한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생각을 추구하면서 정치적 변화만으로 부족하다. 항상 문화적 변화가 그 뒤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권리보장이 잘 된 법 규정이 있다고 해도 그게 이뤄지려면 정치변화 이상으로 문화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문화변화의 리더이기에 또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단다.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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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최근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작품화한 만큼 TV드라마처럼 대중의 이슈가 되었으면 한단다. 그래서 활발한 토론과 담론이 나오고 관객이 더 참여하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소회도 밝혔다.

끝으로 이번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을 보면 작품해설용 오디오가이드 물론 나왔다. 한국어는 탈북성악가 김가영이, 영어는 난민활동가인 재클린이 녹음했다. '릴레이토크' 및 워크숍 마련되었고 작가의 저서선집도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이번 도록에는 마리 관장과 보디츠코의 대담도 실려 있다. 마무리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상문화 속에 뿌리박힌 봉건적 논리와 사회체제에 도전해야 합니다. […]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종잇조각 같은 법만 남습니다. […] 교과서 집필을 하는 교육 관련자와 문화유산을 지키는 문화 관련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관객에게 소개하기도 전에 벌써 해외 세계적 미술전문사이트 '아츠넷(artnet)'는 정보를 취득해 지난 5월 말 선정한 '썸머 아트 프리뷰: 여행가 볼 만한 전시 19선' 중 하나로 소개되면서 이미 세계미술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참여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일시] 2017.07.05-2017.10.09
[전시장] 5, 7전시실 관람료 : 서울관 관람권 4000원
[관람시간] 월, 화, 목, 금, 일요일 : 오전 10시-오후 6시
수, 토요일 : 오전 10시-오후 9시(야간 개장 오후 6시-9시 무료 관람
[홈페이지] https://www.mmca.go.kr/main.do# 전화 02) 3701 9500



태그:#보디츠코, #비(非)전쟁, #김구의 '나의 소원', #촛불혁명, #사회적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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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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