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 왔네 /천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 바래서 /만년에 서글픔 가눌 수 없구나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정약용(1762~1836)의 '하피첩에 부쳐'입니다. 하피첩의 정식 명칭은 '정약용 필적 하피첩(국립민속박물관 소장)'으로 현재 보물 제168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진에 유배중인 정약용에게 아내 홍씨가 치마를 보냈는데, 그 치마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당부의 글을 편지 형태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정약용의 여인들> 책표지.
<정약용의 여인들> 책표지. ⓒ 다산책방
정약용은 본처와의 사이에서 6남 3녀를 뒀는데, 이중 4남 2녀가 3세 이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막내가 죽은 것은 1802년. 포항 장기에서 유배 중이었다가 문초를 받고자 한양으로 압송된 후 다시 유배에 처해졌을 때였다고 합니다.

와중에 홀로 자식을 잃은 아내를 염려하며 아들에게 아내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요. 내 아내 그리고 너의 어머니가 아닌 '자식을 잃은 그 어미'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부탁할 정도로 아내를 향한 사랑이 매우 지극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자식들에게 편지로 삶과 관련된 것을 당부하기도 하고, 시집가는 딸에게 매조도를 그려줄 정도로 인자한 아버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피첩도 그중 하나이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인물입니다. 정조와 함께 개혁을 꿈꾼 인물, 불순한 정치 세력에 희생된 안타까운 실학자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피첩까지 몇 년 전에 발견되었으니 당연히 안팎으로 매우 모범적인 인물로 기억될 밖에요. 사실, 옛날 사대부가 남자들이 첩을 예사로 뒀다지만 정약용은 그런 관행들을 벗어난 삶을 살았던 인물로도 유명하죠.

그런데 <정약용의 여인들>(다산책방)이라니. 정약용에게 또 다른 여인들이 있었다는 건가? '별 내용 없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목을 끌려고 붙인 제목이 아닐까?' 싶어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론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읽으며 궁금한 내용을 작가 최문희씨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 하필 정약용을 소설화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정약용을 한두 줄로 짧게 설명하면? <정약용의 여인들>이란, 언뜻 '여인천하'란 단어가 함께 떠오르기도 하는 제목도 좀 궁금하고요.
"정약용은 타고 난 조건만으로 인간의 층위를 가르는 신분제도를 못마땅해 한 학자입니다. 평등과 존중을 박탈당한 백성들의 편에서 시대를 아파했고 개혁을 꿈꾸었던 실학자죠. 매우 진취적인 인물이죠. 한편으론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지아비이자 아버지였는데요. 그런데 실학자 또는 정조의 인물 정약용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아비이자 아버지인 정약용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약용은 소설 제목처럼 여인들에게 휘둘린 한량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목을 그리 한 것은 아내 홍씨를 비롯한 진솔과 초순이란 여인들을 통해 그리고 딸 홍연과 진솔과의 사이에서 낳은 홍임, 이 두 딸을 통해 정약용의 내밀한 인간적인 속내를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강진에 유배 당한 정약용을 최초로 품어 준 사의재 주모와 처녀 동상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기도 합니다. (2017.3.11)
강진에 유배 당한 정약용을 최초로 품어 준 사의재 주모와 처녀 동상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기도 합니다. (2017.3.11) ⓒ 김현자

- 워낙 유명하고 중요한 역사인물이라 인물 설정도 신중했을 듯합니다. 진솔이란 여인이 정약용에게 실제로 존재했던 아내 외의 다른 여인, 그것도 자식까지 둘 정도로 비중이 큰 존재인가요?
"<남당사 십육수>에는 글을 쓴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 곳곳에 스며 있는데요. 정약용이 쓴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죠. <남당사 십육수>를 읽다가 시에 나오는 강포의 여인, 그 지고지순한 여인의 사랑을 소설로 형상화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진솔이라는 캐릭터는 허구입니다. 그런데 강진포구의 표씨 딸이 <남당사 십육수>에 나올 정도로 정약용의 가슴에 아리게 배어 있다면, 소설 속 진솔과 같은 어떤 여인의 존재가 전혀 근거 없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요."

-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흠흠신서> 등, 주요 저서들을 썼다고 밝힌 책들이 많은데요. 해배 후 마재에서 집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때문에 정약용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좀 의아해 할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것이 맞나요?
"<목민심서>는 다산초당에서 초고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퇴고를 거쳐 유배가 풀리던 해인 1818년(순조 18년) 마재에서 완성했습니다. "

- 정조 재위 중에 정약용이 서학, 즉 천주교인으로 몰려 수감되었고, 그로 고초까지 겪자 정조가 서학을 멀리하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약용이 형수의 오라버니 되는 이벽의 천진암 강학회에 한두 번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서학에 대한 호기심일 뿐, 진산사건(제사를 모시지 않고 신주를 불태운 사건) 이후 배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상이 없는 자손이 있을 수 없다는 유교적 도덕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지요."

소설은 유배에서 풀린 정약용이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집 대문을 넘으면서 기뻐하는 것을 시작, 그로부터 18년 후인 1936년에 삶을 마무리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대개 위인들을 어떤 업적이나 사상으로만 기억하고 생각하려고 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업적이나 사상 등 때문에 훌륭한 위인인 그 역시 한편으로 우리처럼 숨 쉬고 사랑도 하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는 인간이란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정약용의 여인들>은 권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나이든 지아비이지만 어떤 여인에게든 마음 주는 것을 차단하려는 부인 홍씨의 품위를 잃지 않는 강짜와 사랑, 야생화처럼 헌신적이며 질긴 진솔의 사랑, 그리고 유독 더운 봄 한날에 화들짝 피었다가 제풀에 떨어지고 마는 꽃처럼 속절없이 향하게 되는 정약용의 초순을 향한 사랑, 그  틈틈이 실학자이자 유배자이며, 아버지이자 지아비인 동시에 사내인 정약용에 대해 들려줍니다. 

 정약용이 강진 유배 직후 머물렀던 사의재, 2017년 3월 11일 풍경입니다.
정약용이 강진 유배 직후 머물렀던 사의재, 2017년 3월 11일 풍경입니다. ⓒ 김현자

소설은 해배되지 못함에 대한 실망과 아내와의 사랑, 자식까지 낳을 정도로 뜨거웠던 유배지에서 만난 진솔이란 여인과의 사랑과 그렇게 낳은 딸에 대한 연민, 두 아들이나 제자들과의 살가운 대화, 하피첩을 만들기까지, 학문 외에 즐겼던 것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 들려줍니다. 이제까지 많이 알려진 지극히 학문적이며 정치적인 인물 이전에 지극히 인간적인 정약용을 느낄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해배 후 삶을 비중 있게 들려주는 것도 이 소설이 인상 깊은 이유가 될 것 같네요. 물론 어느 정도의 허구가 개입된 소설이지만, 정약용의 해배 후 삶은 대중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문교양서로 읽으면 지레 어려운 한 인물의 업적이나 행적은 물론 인간적인 삶을 쉽게 알게 하는 역사소설의 장점을 새삼 느꼈던 책입니다.

꺼당겼다. 허룩해지려는, 왁살스럽게, 나달거렸다, 여퉈둔 등, 잘 모르지만 살려 쓰면 좋겠다 싶은 우리말이 많은 것도 이 책의 특징입니다. 정약용이란 인물을 좋아하는 이유를 잘 표현해주고 있어 인상 깊게 와 닿은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을 전합니다.

"아버님은 늘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지요? 타고난 가난을 그 자체로 긍정하고 즐긴다는 안빈낙도와는 모순되는 삶의 방법이 아닐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구나. 공자의 제자 안회는 하루 한 끼니 보리죽을 먹어도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어. 세상을 원망하거나 가난을 한탄하지 않았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안회는 서른을 갓 넘은, 한창 나이에 죽었다. 물론 지병이나 유행성 질병으로 요절한 것일 수도 있겠지. 나는 영양실조에 근거를 두고 싶다. 본인 혼자의 죽음이라면 누가 탓하겠니. 하지만 낳아주신 부모가 있고, 아내와 아이가 있었을 게 아니냐?

굶주림을 가족에게 안겨줄 정도의 안빈낙도라면 그건 정신의 허영기가 아니겠느냐? 가장이라는 위치에는 가족에게 하루 세 끼니를 먹이고 겨울에는 솜옷을 입혀주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노동이 죄도 아니고 도둑질도 아닌데 양반의 체신이라는 한 조각 체면 때문에 부모와 자식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도 죄가 아닌가. 의식을 개조하기 전에는 이 땅의 백성들이 탯줄에 걸고 나온 가난을 물리칠 수 없을 게야. 나는 그것이 제일 한스럽다."(75~76쪽)

덧붙이는 글 | <정약용의 여인들>(최문희) | 다산책방 | 2017-01-25 | 정가 14,800원



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지음, 다산책방(2017)


#다산 정약용#다산초당(강진)#하피첩(보물 제1683-2호)#최문희#남당사 십육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